2024년 5월 14일(화)

가해자 80%가 부모, 피해 아동 66%가 다시 집으로… ‘아동학대 사례 관리’ 필요한 이유

가정 내 학대, 환경적 요인 복합 작용
법적 처벌 외에 교육기관·이웃 등
주변 환경 변화시켜 치유 도와야

지난 9일 서울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사무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이성우(가명·4)군이 김준일(가명·35) 상담사를 발견하자 곧장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자로 착각할 만큼이나 친밀한 모습이었다.

김씨가 처음 이군을 만난 것은 올해 봄, 동네 주민이 경찰에 이군의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면서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은 아버지의 강요로 네 사람분의 빨래·청소 등 가사 노동에 시달렸고, 둘째 딸과 이군은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를 때마다 어두운 밤거리로 쫓겨나야 했다.

“심리검사를 해보니 아버님의 자살 지수가 무척 높게 나타났습니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는 놀이 치료, 아버님께는 양육 지도와 미술 치료를 실시했어요. 이틀에 한 번 가정방문과 상담도 진행했습니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지 않고 끝까지 양육하려 했던 일 등 아버님 안에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계속해서 일깨워 드렸어요.”

굿네이버스 제공
굿네이버스 제공

병원,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지역의 보건·복지 서비스와 이군 가족을 연결하는 것 역시 김씨의 몫이었다. 이군 가족을 후원할 만한 지역 기업체를 수소문해 경제적 도움도 받게 했다. 그렇게 7개월이 흐른 후, 바뀔 것 같지 않았던 이군의 가정에 변화가 시작됐다. ‘아이들과 같이 죽을 생각도 했었다’고 고백했던 이군의 아버지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렸다. 소리를 지르는 등 삼남매의 문제 행동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혼 후 연락을 끊었던 이군의 어머니는 최근 김씨의 연락을 받고 삼남매와 함께 가족 캠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동학대 48%는 ‘중복학대’… 악순환 끊는 사례 관리 필요

이군과 같은 장기적 ‘아동학대 사례 관리’는 재발을 막기 위한 필수 조치다. 아동 학대의 특징 중 하나는 재발이 많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1만27건 중 가장 많은 학대 유형은 중복 학대(48%)다. 2순위인 방임(18.6%)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아동학대의 80%가 부모에 의해 행해지고, 피해 아동의 절반 이상(66.5%)이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현실이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다른 복지 서비스와 달리, 아동 학대 사례관리는 아동의 안전·생명과 직결되고, 학대의 재발을 막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정 내 아동학대의 경우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법적 처벌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환경이 변화될 수 있게끔 주변이 도와야 합니다. 교육기관, 학원, 이웃집 등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함께 아이를 어루만지도록 돕는 모든 과정이 바로 아동학대 사례 관리입니다.”

미상_그래픽_아동학대_폭력당하는아동_2015

◇상담원 권한 강화 필요…통합 모델도 개발 중

하지만 ‘아동학대 사례 관리’를 하기에 현실은 열악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상담원 부족. 미국 일리노이주의 경우, 아동가족 서비스 소속국 상담원의 업무량을 12사례로 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담원 1인당 맡고 있는 아동 사례가 연평균 57.7건이나 된다.

원가정으로 복귀한 아동을 돌보기는커녕,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 처리에도 급급하다. 우리나라 상담원은 현장 조사는 물론, (아동학대 여부) 사례 판단, (학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등) 조치 결정, 사건 처리 지원, 아동 학대 예방교육 및 홍보, 기타 행정업무 등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아동학대 처벌법 시행 이후에는 응급조치 경과 보고서, 학대 행위자 관련 의견서 등 필요한 서류 작업도 더 늘었다.

아동학대 가해자나 보호자가 상담원의 개입을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에 이명수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지난달 20일 아동학대 행위자의 협조를 의무화하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아동학대 행위자의 상담·교육·심리 치료 참여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생긴다.

국내 학대 피해 아동 보호 서비스를 주도해온 ‘굿네이버스’는 지난해부터 통합적 아동 학대 사례 관리 모델을 연구 중이다. 김정미 본부장은 “보다 효과적이고 촘촘하게 학대 피해 아동과 그 가정에 대한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라고 설명하면서 “올해 일부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시범 적용을 마치고 2016년에 1차 결과 보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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