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함께한 봉사와 나눔이 노사 교류의 장이 되었어요”

기업 간 노사공동나눔협의체 UCC 베트남 다문화 가족 위한 봉사 활동

KT…양국 가족 화상 상봉

분당서울대병…원현지 가족 무상진료

농어촌공사…빈곤가정에 지원금 전달

SH공사·장애인고용공단…한국문화체험전

“이게 꿈이야, 생시야!”

화면으로 대화하던 딸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아버지 후안 반 마잉(66)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8년 만에 처음 보는 딸의 얼굴. “내 손으로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주선해놓고, 딸을 먼 타국 땅 고생길로 보낸 것 같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 국제전화비가 턱없이 비싸 한국으로 전화도 걸 수 없었던 아버지 마잉씨는 셋째 딸의 얼굴을 화면으로라도 볼 수 있다는 말에, 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 또다시 차로 8시간, 그 긴 여정을 한걸음에 달려왔다. 딸 후안 티 항엠(36)씨 역시 가족을 보러 임자도에서 베트남까지 3000여㎞를 날아왔다. 항엠씨는 그새 몰라보게 야윈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항엠씨 가족이 깜짝 상봉을 이룬 건 KT와 KT노동조합 덕분이다. 노사가 함께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친정 방문을 돕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로, 올해 4년째다. 호흡을 오래 맞춰온 경험 때문인지,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항엠씨 부녀의 깜짝 상봉 행사도 몇마디만 나누고도 척척 이뤄졌다. 한국과 베트남에 있는 양 바로 옆 서로 다른 건물에서 화상통화를 나누던 부녀가 깜짝 만남을 가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 변환 KT 홍보실 과장은 “전문가처럼 ‘작전’ 속도가 빨라, 놀라우면서도 조마조마했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UCC(11개 기업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기업 간 노사공동 나눔협의체) 회원사인 KT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 간 화상 상봉을 진행하는 모습. /KT 제공
UCC(11개 기업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기업 간 노사공동 나눔협의체) 회원사인 KT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 간 화상 상봉을 진행하는 모습. /KT 제공

항엠씨 외에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 40명은 지난 20일부터 5일 동안 화면으로 베트남 가족을 만났다. 한국에 있는 여성들이 13개 KT지사에서 화상통화 시스템에 접속하면, 하노이 KT지사에 초청된 베트남 가족들과 화면으로 만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화상 상봉을 한 베트남 여성은 200여명, 베트남 현지 가족은 1200여명에 달한다.

사실 KT노사가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활동을 펼치게 된 계기는, 2011년 기업 간 노사공동나눔협의체(이하 UCC·Union Corporate Committee)가 창립하면서다. UCC는 K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분당서울대병원 3곳이 노사 공동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다. UCC 조직에 가입한 각 사 노사 구성원들은 동등하게 8시간 의무 봉사가 권장되며, 이들이 기부한 월 1000원 이상 기금으로 조직이 운영된다. 지금까지 5년 동안 UCC에 가입한 기업은 장애인고용공단, 한국수력원자력 등 총 11곳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나 참여한 인원만 노사 직원 7만여명 이상, 운영 기부금도 더불어 커졌다. 올 하반기엔 지방은행 7곳이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상태다. 최장복 KT노동조합 UCC봉사단장은 “대규모 인력과 재원에, 특히 각 기업이 가장 잘하는 특색을 살린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CSR’이 이뤄지면서 지속적이고 효율성 높은 사회공헌 활동을 이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UCC의 대표적인 사회공헌이 베트남 다문화 가족을 위한 봉사활동이다. 국내 국제결혼 가운데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들이 중국 국적의 여성들보다 많아지면서, 이들의 사회 적응이 다문화 가정의 사회적 안정과 직결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일이다. 특히 매년 여름,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뤄지는 현지 사회공헌 활동에는 각 사의 특성이 모두 반영된다. KT 노사는 두 나라 간 화상 상봉 지원을, 분당서울대병원 노사는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현지 가족에게 무상 진료를 해준다. 올해는 KT, 분당서울대병원 이외에 한국농어촌공사의 현지 농촌 지역 빈곤 가정에 지원금 전달, SH공사와 장애인고용공단의 한국 문화체험전 등 11개 기업이 동참했다.

“이 약 꼭 챙겨 드세요.” 화상 상봉을 기다리는 베트남 현지 가족들의 대기실 공간 한편에 마련된 임시 진료실. 정세영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손으로 약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판 띠 루(61)씨는 벌써 통역 전부터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병원이 많지 않아 진료를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값어치 있구나’ 새삼 느끼죠.” 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베트남 현지 가족들의 진료 봉사활동에 참여한 이유다. 그러나 정씨는 올해 오지 못할 뻔했다.

최근 메르스 사태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베트남 현지 의료봉사 활동에 제동이 걸린 것. 병원 노조는 4년간의 활동을 직접 동영상으로 만들어 병원 경영진을 설득했고 양측이 머리를 맞댄 끝에, 200만원어치 약과 전문 의료진 2명 등 5명이 베트남에 올 수 있었다. 정씨는 “노사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눔’이 노사 교류의 장(場)이 되고 둘 간의 분위기를 바꿨다”고 UCC 활동 덕에 사뭇 달라진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지속적인 봉사활동 덕에 외부 통제와 절차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베트남 정부 역시 마음을 돌렸다. 최장복 단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UCC의 베트남 현지 봉사활동을 취재하려는 국내 언론사들은 외교부 공무원과 동행하며 일일이 간섭 받고 저지당하기도 했다”며 “4년째 활동하며 UCC 회원사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서, 올해부터는 언론 취재나 봉사활동을 하는 데 훨씬 자유롭도록 배려해줬다”고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항엠씨 부녀의 상봉 장면 등을 베트남 국영방송이 직접 촬영해 뉴스에 보도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신현옥 KT경영지원실장은 “11개 기업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UCC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에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해 이와 같이 뜻깊은 활동이 확대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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