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시니어 사업 뛰어든 지 1년 만에… 공공기관 납품하고 해외 러브콜도 받아요”

유한킴벌리, 소기업 활성화 지원사업

커피추출기와 텀블러 합친 ‘이피쿱’
약초를 티백으로 ‘이풀약초협동조합’ 50가지 디자인 돋보기 ‘이플루비’
시니어 대상으로 제품 만든 기업들 “컨설팅·자금 지원이 성장 계기 됐죠”

“국내 시장도 진출해보지 못한 작은 기업이 어떻게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거죠?”

“제품 개발에 필요한 과정이 한두 개가 아닌데, 네트워크도 없고 역사도 짧은 기업이 어떻게 성공한 겁니까?”

지난달 유한킴벌리의 ‘소기업 비즈니스 활성화 지원사업’ 설명회 현장에서 소기업 대표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이 사업은 시니어 대상 서비스나 생활용품 제조에 뛰어든 1년차 이상 소기업을 지원하는 유한킴벌리의 대표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 가치 창출) 사업이다. 지난 4년 동안 총 22개 소기업이 발굴돼 최대 7000만원의 사업 자금과 시장 조사, 컨설팅을 지원받았다. 난생처음 만든 제품으로 공공기관 납품시장에 진출한 협동조합, 매출 1억원의 청년CEO가 이 사업을 통해 탄생했다. 과연 어떤 ‘유리구두’ 덕분에 이들은 ‘신데렐라 소기업’으로 재탄생했을까.

유한킴벌리의 대표 CSV ‘소기업 비즈니스 활성화 지원사업’을 통해 시니어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 ① 이풀약초협동조합의 생산자 조합원이 재배 한 친환경 약초. /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② 원두와 물만 부으면 텀블러에 바로 드립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이피쿱의 폴 텀블러. /이피쿱 제공 ③ 동과 보석으로 세공한 이플루비의 디자인 돋보기. /이플루비 제공
유한킴벌리의 대표 CSV ‘소기업 비즈니스 활성화 지원사업’을 통해 시니어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 ① 이풀약초협동조합의 생산자 조합원이 재배 한 친환경 약초. /이풀약초협동조합 제공 ② 원두와 물만 부으면 텀블러에 바로 드립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이피쿱의 폴 텀블러. /이피쿱 제공 ③ 동과 보석으로 세공한 이플루비의 디자인 돋보기. /이플루비 제공

◇이피쿱, 누구나 쓰기 쉬운 ‘유니버설 디자인’ 텀블러

노동자협동조합 ‘이피쿱(epcoop)’이 올해 3월 출시한 ‘폴(Pourall) 텀블러’는 텀블러와 커피 드리퍼를 결합시킨 제품으로, 어르신도 쉽게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제조업 ‘초짜’들이 커피 추출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이병욱(29) 감사가 처음 설계한 모델은 크기만 30cm를 훌쩍 넘겼다. 고민하던 이들에게 유한킴벌리의 지원사업 소식이 들려왔다.

“지원사업이 유니버설 디자인(장애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설계) 생활용품을 대상으로 하는 점이 와 닿았어요. 어르신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면 누구나 편히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봄,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피쿱은 수행 기관인 ‘함께일하는재단’의 도움을 받아 심층 패널조사(FGI)에 돌입했다. ‘휴대성이 떨어진다’ ‘분리·세척이 불편하다’ ‘추출 시간을 지키기 어렵다’ 등 3시간에 걸친 FGI 결과는 이피쿱의 기존 모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업지원금 3500만원으로 기존 추출기의 몸통을 휴대가 쉬운 텀블러로 바꾸고, 이중 캡을 씌웠다. 뚜껑에 종이필터를 끼우고 원두와 물만 부으면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한 것이다. 김이준수(41) 이사장은 “시작 단계라 절대적인 매출 수준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대비 매출이 300%나 성장했다”고 말했다.

폴 텀블러는 현재 마포 희망키움샵, 사회적경제 온라인쇼핑몰 함께누리몰 등에서 판매 중이다. 이피쿱은 올해 폴 텀블러 리뉴얼 버전 제작에도 돌입할 계획이다.

◇이풀약초협동조합, 시니어 입맛 사로잡는 초심듬뿍 약초 티백

한국생약협회에서 약초 농가의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s·농산물우수관리제도) 인증을 20년 가까이 담당해온 노봉래(53) ‘이풀약초협동조합(이하 이풀)’ 이사장이 협동조합을 세운 이유는 하나다. 정직하게 재배한 약초가 값싸고 굵직한 중국산 약초들에 밀려 설 자리를 잃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증 심사를 하러 가면 농가에서는 ‘친환경이면 뭐해!’라고 투덜거렸습니다. 한약의 원료로 쓰이는 약초는 싸고 질 낮은 것일수록 이문이 많이 남으니, 도매상에서 통 사가질 않는 거죠. 이런 불합리한 유통 구조를 깨고 싶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약초를 소포장해 팔기도 하고, 약초학교를 열어 소비자 교육에도 나서봤다. 하지만 작은 협동조합이 거대한 유통구조를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예 약초의 소비 패턴을 단순하게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노 이사장의 아이디어는 ‘차(茶)’, 바로 약초 티백이었다.

“약초를 집에서 직접 달여 마시려면 품이 많이 들어요. ‘삶거나 끓이지 않고 간단하게 우려먹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한킴벌리의 소기업 지원사업에 신청했습니다.”

지원사업에 선정됐지만, 첫 3개월은 쳇바퀴 돌 듯했다. 조합원이 생산하지 않는 우엉차, 마테차 등 인기 제품에 자꾸 눈길이 갔다. 함께일하는재단은 우왕좌왕하고 있던 이풀에 윤형근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상무 등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했다.

“이풀의 경쟁력은 ‘정직한 원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더군요. 그 결과 조합원이 생산한 도라지, 차조기잎 등으로 만든 차 2종류를 개발했습니다.”

12포 한 상자에 1만7000원이라는 가격에도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국임업진흥원 등 공공기관 납품을 시작으로 롯데백화점 강남점의 친환경 식품매장 ‘농부로부터’ 입점도 타진 중이다. 유한킴벌리 지원사업 동기인 이피쿱이 운영하는 카페 ‘스페이스 류’는 이풀의 차를 메뉴에 포함시켰다.

“험난했던 제품 개발 과정을 겪으며 시장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든든한 시니어 사업자 친구들도 생겼고요. 이풀에 유한킴벌리 지원사업은 성장의 계기 그 자체였어요.”

◇이플루비, 시니어에 아름다움 더한 디자인 돋보기

“학교에 다닐 때 내내 공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1000원이 생기면 이 돈으로 재료를 살지, 김밥을 살지 고민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윤혜림(30) 이플루비 대표는 학교 과제로 ‘돋보기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국제 주얼리디자인 공모전’ ‘제1회 평창 관광기념품 공모전’ 등에서 수상 행렬을 이어갔지만, 생계는 늘 어려웠다. 돌파구를 찾던 그녀는 2012년 12월 창업을 결심했다.

“저희 부모님이 돋보기를 쓰시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돋보기를 사용할 때 나이 들었다는 것을 크게 느낀다’고 하시더라고요. 전시회를 할 때마다 ‘이렇게 예쁜 돋보기가 제품으로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유한킴벌리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플루비는 첫 제작비로 3000만원을 지원받고, 50개 디자인을 완성했다. 돋보기 렌즈 가장자리에 동(銅)과 보석 장식을 덧댄 목걸이, 독서용 문진(文鎭) 돋보기 등 용도도 제각각이다.

결과는 눈부셨다. 3개월 만에 매출 1억원을 달성했고, 이탈리아·미국·일본·중국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9월에는 비엠시스·리움 등 유한킴벌리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동료 사업가들과 ‘도쿄 국제 기프트쇼’에 공동 참가할 계획이다.

“얼마 전 맹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분을 뵌 적이 있는데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런 돋보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니어에게 좋은 제품이 시니어에게만 좋다는 건 오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앞으로는 지팡이나 안경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더하는 시니어 주얼리 브랜드를 키워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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