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상처 보듬어 줄 전문가가 필요해요

아동학대 예방, 국가·민간 협업 방안은?
학대 신고·조사 업무 많아… 가족 기능 관리 어려운 경찰
현장 조사엔 국가 역할 강화… 상담·치료, 민간 기관 전담해야
서울시, 공공·민간 협업 구축 중

지난 6개월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8632건이다. 작년 대비 무려 2500건이나 급증했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특례법)’ 시행 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신고를 받고 난 후,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함께 현장 조사를 실시한 횟수는 5768건. 1년 전 380건에 비해 15배나 증가했다. 아동학대 상담 경찰은 3300명(지구대 경찰관 제외)에 달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수는 7분의 1에 불과하다. 쏟아지는 현장 조사로 인해 정작 학대받는 아동을 위한 상담과 치료는 소홀해지고 있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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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특례법과 아동복지법 시행으로 아동보호 체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 시점이 왔다. 학대 아동 보호를 위해 국가와 민간이 어떻게 역할을 서로 분담해야 할지 단계별 전략을 세우고 준비해나가야 한다.”

지난달 30일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년 굿네이버스 아동정책포럼, ‘아동보호체계 개선 방안’의 주제 발표를 맡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날 포럼은 국내외 아동보호 체계를 연구·분석한 교수진뿐만 아니라 복지부, 법무부, 경찰청,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 민관이 함께 모여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교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내에서 현장 조사와 사례 관리를 분리·운영(1단계) ▲공공과 민간의 현장 조사와 서비스 전담 인력 확충 및 전문 서비스 모듈 개발(2단계) ▲공공과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협력 체계 구축(3단계) ▲공공의 현장 조사와 민간의 전문 서비스 이원화 확립(4단계) 등 아동보호 체계의 단계별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다. 포럼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아동 복지가 공공성이 요구되는 서비스인 만큼 아동학대 현장 조사 기능은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가족 서비스 기능을 민간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전담해 각각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며 의견을 함께했다.

지금까지 국내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창’과 ‘방패’를 모두 쥔 특이한 형태였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공권력인 경찰과 함께 출동해 현장 조사를 했다가, 이후에는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과 부모를 위해 상담하는 역할도 함께 해온 것이다. 10년간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일해온 상담원 A씨는 “두 얼굴의 야누스 같았다”고 표현했다. A씨는 “학대 부모와 신뢰를 쌓고 상담·치료를 진행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상담원 얼굴만 보고 자녀와 분리시킬 거라 오해해 도망가고 상담을 거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 당사자인 가족의 기능을 강화해주는 서비스는 전체의 2.6%에 불과했다(복지부·중앙아동보호 전문기관 2014).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 본부장은 “아동학대 신고 후 평균 1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부모와 아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담해야 하는데, 쏟아지는 현장 조사 업무 때문에 가족 서비스를 강화할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전국의 아동학대 상담원 수는 총 638명. 상담원 1명당 약 1만5000명에 달하는 아동학대 사건을 커버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올해 말까지 아동보호 전문기관 인력을 총 840명으로 충원하는 대신 모든 기관이 현장 조사와 사례 관리(부모 및 아동의 교육·상담·치료와 모니터링) 업무를 분리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현장 조사는 공공에서, 사례 관리는 민간에서 담당하는 미국식 모델을 도입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현장에선 걱정이 태산이다.

지역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관장은 “현장 조사와 사례관리 업무가 분리되는 것은 적극 찬성이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 한 곳당 서울 면적의 최대 3배에 달하는 5~6개 시군을 평균 9~12명의 상담원(인력 충원 시)으로 관리하는 지역들은 ‘도저히 두 팀으로 나눌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한다”면서 “지방은 평균 2시간, 특히 섬은 최대 5시간 걸려 현장 출동을 하니 조사하러 가면서도 다른 신고 전화가 오는 경우가 다반사다”고 토로했다.

한편, 공공과 민간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아동학대 관리 인프라를 보완하려는 시도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는 2012년 아동학대 사례 관리만 전담하는 서울시동남권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립했다. 당시 서울 지역의 학대 피해 아동은 부모와 분리되는 비율이 41%로, 타 지역(2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기존 공무원 조직인 서울시아동학대예방센터(서울시아동보호전문기관)는 신고 및 현장 조사 등을 맡고, 서울시동남권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동남권아보전)은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상담을 하기로 역할을 나눴다. 한경숙 서울시아동학대예방센터 팀장은 “예전엔 현장 조사를 나갈 때마다 인력·재정적 여건 때문에 ‘과연 내가 이 아이를 충분히 케어할 수 있을까’란 불안감에 시달렸다”면서 “이제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 기관이 생기다 보니, 지난 2년간 우리 기관이 담당한 6개 지역의 학대 재발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전미선 동남권아보전 관장은 “8년 전 다른 지역에서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 ‘자꾸 집에 찾아오면 아이와 함께 뛰어내리겠다’며 협박하던 학대 부모를 지난해 다시 만났다”며 “자녀에게 대학생 멘토를 붙여 학습 지원을 하면서 신뢰를 쌓으니 어머니가 먼저 ‘도와달라’며 찾아오셔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고, 첫째는 검정고시에 붙어 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3년 동남권아보전의 심리 상담·치료 등 서비스 제공률은 특히 학대행위자 및 부모에 대한 치료가 전국 대비 약 10배 높은 수준으로, 현재 상담원 1명당 평균 26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관리하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아동학대 보호 서비스와 아동·가족 지원 서비스를 분리·운영하고 각각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내 병원, 동주민센터, 무한돌봄센터, 경찰서, 사회복지협의회, 청소년수련관 등 지역 내 다양한 기관들과 연계해 학대 아동의 사후 보살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사회 기관 담당자들은 기관장의 교체나 지침 변화 등으로 인해 협력관계가 언제라도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있는 만큼 정부 및 지자체에서 이러한 연계 시스템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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