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희망 허브] 방과 후 2시간, 아이들 미래를 바꾸다

교육 받기 어려운 중학생에게
대학생 강사가 방과 후 교육
삼성 ‘드림클래스’ 3년 들여다보니…

10명 안팎 소규모 그룹 과외식 운영
특목고·자사고 등 우수 학교 진학

전담 교사·학부모 힘 모아 운영 돕고
대학생 강사는 인생 멘토 역할까지

월요일 오후 3시, 인천 부평구의 청천중학교. 남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종소리에 맞춰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들뜬 얼굴로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계단을 거슬러 오른 15명이 3층 복도 맨 끝 교실로 하나둘 입장했다. ‘드림클래스’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3학년 A반 학생들이다.

“오늘은 교재 10쪽 복습할 차례지? 수희랑 은영이, 지난 시간 숙제 해 왔어?” “그럼요. 당연히 해왔죠!” “선생님, 사실 은영이는 안 해왔어요 (웃음) .” “뭐어? 거짓말하면 혼난다.”

장현서(21·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3년) 강사가 김은영(가명·15·청천중 3년)양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자 교실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지난 시간에 배운 영어 문법 ‘to(투) 부정사’ 복습이 시작되자,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문제 풀이 시간에는 강사의 발걸음이 더 바빠졌다. 아이들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주다 보니, 학생 15명만으로도 교실이 꽉 찬 느낌이다. 이날 2시간 내내 그룹 과외식 집중 강의를 진행한 현서씨는 올해로 3년째 청천중학교를 찾은 드림클래스의 베테랑 강사. 매주 두 번 혜화동에서 인천까지 아이들을 만나러 온다. 왕복 3시간이 넘는데도 이 수업만큼은 빠뜨리지 않는다.

삼성드림클래스 캠프는 방학 중 읍·면·도서지역 중학생에게 20박 21일의 대학 캠퍼스 합숙을 통해 150시간의 영어·수학 학습과 더불어 음악회 감상, 스포츠 관람 등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은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2015 드림클래스 겨울 캠프 수업. /삼성사회봉사단 제공
삼성드림클래스 캠프는 방학 중 읍·면·도서지역 중학생에게 20박 21일의 대학 캠퍼스 합숙을 통해 150시간의 영어·수학 학습과 더불어 음악회 감상, 스포츠 관람 등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은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2015 드림클래스 겨울 캠프 수업. /삼성사회봉사단 제공

“한 반이 10명 안팎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돼 한 명, 한 명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이제는 어제 누구랑 싸웠는지, 앞으로 어떤 학교에 가고 싶은 지까지 하나하나 저에게 털어놔요.”

수업이 끝나자 몇몇 학생은 집 대신 면학실로 걸음을 옮겼다. 2년간 꾸준히 드림클래스를 수강하면서 공부해온 친구들끼리 스터디그룹을 결성, 함께 자습을 해온 것. 이지은(가명·15, 청천중 3년)양은 “방과 후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은양은 교내 반 배치고사에서 전교 15등을 할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러시아어를 전공해 무역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뒤에는 전교 3등까지 성적이 올랐다. 1학년 때 드림클래스 수학 선생님으로 만났던 김한솔(21·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강사의 영향이 컸다. 한솔씨가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SNS를 통해 사제의 정을 이어가고 있다.

복도 끝, 한 교실 앞을 지나자 ‘드림클래스 운영실’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강사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더 좋은 수업 환경을 만들고자 학교 측이 배려한 공간이다. 그곳에는 수업을 마친 대학생 강사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었다. 이날 이뤄진 드림클래스 수업 진행 상황, 강의 구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중이었다.

청천중학교는 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대학생 강사와 수강생, 교장, 담당 교사, 학부모 서포터가 한자리에 모여 인사하는 드림클래스 개강식을 진행한다. 학기 중에도 아이들의 성적 변화, 교우 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담당 교사와 대학생 강사가 끊임없이 나눈다. 두 달에 한 번씩 교사와 대학생 강사가 함께 식사를 하는 간담회 자리도 마련된다. 학교와 대학생 강사 간 소통이 원활하다 보니 아이들의 출석률은 98%에 달한다. 성적도 올라 2013년에는 외국어고, 지난해에는 국제고 합격생을 배출했다. ‘드림클래스를 수강하고 싶다’며 자원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어 추가 반 개설까지 논의 중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운영될 수 있겠느냐’며 반신반의했던 교사들도 이젠 피부로 느껴지는 아이들의 변화에 드림클래스를 적극 지지하게 됐다.

김기탁 청천중학교 드림클래스 담당 교사는 “보호자의 그늘 밖에 있는 아이들,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던 학생들이 드림클래스를 통해 방황하지 않고 학교 안에서 기회를 얻고 있다”면서 한 학생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드림클래스를 통해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학생이 있습니다. 부모님 없이 큰아버지 가족과 지내던 친구였죠. 방과 후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운동장이나 근처 공원을 배회했습니다. 같이 살고 있는 동갑내기 사촌에 비해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다 보니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였죠. 그런데 드림클래스에 들어가더니 반에서 5등까지 성적이 오르고, 방과 후 면학실 공부도 시작했어요. 대학생 강사의 관심과 드림클래스에서 사귄 친구들 덕에 교우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아이의 얼굴 표정이 환해지는 걸 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학교·학생·강사·학부모 간 활발한 피드백… 드림클래스 시스템 다져

2012년 3월 첫발을 뗀 드림클래스는 가정 형편 등으로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중학생에게 대학생 강사가 방과 후 학습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삼성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이다.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영어·수학을 가르치고, 대학생을 강사로 선발해 리더십과 봉사 정신을 키워주며 장학금도 지급한다.

지역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도 세분화했다. 교통이 편한 대도시의 경우 172개 학교에서 매주 2회 2시간씩 ‘주중교실’이 운영된다. 중소 도시 13개 학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 4시간씩 총 8시간에 걸쳐 ‘주말교실’을 진행하고, 읍·면·도서지역 학생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20박 21일간 합숙하며 학습과 진로 특강, 문화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방학 캠프’를 지원받는다. 이렇게 지난해까지 드림클래스를 통해 중학생 3만1542명과 대학생 8807명이 만났다.

드림클래스가 진행되는 전국 185개 학교에는 매 수업 진행 사항을 모니터링하는 ‘학부모 서포터’가 학교별로 한 명씩 활동하고 있다. 학교장 추천을 통해 선발된 학부모들은 매주 1~2회 드림클래스 수업에 참여해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수업 전후 학생 및 대학생 강사들과 면담을 하고, 상담 일지도 작성한다. 그 과정에서 학교·학생·강사·학부모 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논의된 내용은 삼성 드림클래스 사무국으로 전달돼 매년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삼성드림클래스 관계자는 “‘학생이 많아서 강사 혼자 교육하기 부담이 된다’며 분반을 요청하거나, 상담을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 방식을 전해주시는 학부모 서포터들 덕분에 매년 프로그램을 보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별도로 지급되는 비용 없이 모두 자원봉사로 진행되는데도, 학부모들의 관심이 뜨겁다. 3년째 학부모 서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안오숙(71)씨는 “평소 학부모들이 수업에 직접 참여해 학교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을 직접 만나거나 발전 방향을 제시할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운데, 드림클래스는 열려있다”면서 “간식을 사오거나 수업 후에도 함께 고민을 나눌 정도로 학생과 대학생 강사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에 애정을 가진 학부모 서포터가 대다수”라고 덧붙였다.

학생과 대학생 강사 모두 성장할 수 있도록 삼성그룹 임직원들도 머리를 맞댔다. 삼성인력개발원은 드림클래스 강사 역량 강화를 위한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리더십 강의를 포함해 수업 중 지켜야 할 에티켓과 매너, 청소년 이해 등 각 분야 대내외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드림클래스를 거쳐간 선배 대학생 강사의 우수 사례를 공유해 실제 강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별 토의 시간도 마련됐다. 대학생 강사 선발을 위해 삼성전자 인사 담당자들이 직접 인성검사와 면접에 참여하고 있고, 영어·수학 교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범강의 테스트도 추가했다. 이달부터는 내부 관리 시스템을 보완해 모바일로도 학생 출결 관리, 성적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관리 시스템 내부에 학교별로 대학생 강사·전담 교사·학부모 서포터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했다. 이젠 온라인상에서도 드림클래스 이해관계자들이 자유롭게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장현서 드림클래스 대학생 강사가 청천중학교 3학년 A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신영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장현서 드림클래스 대학생 강사가 청천중학교 3학년 A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신영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4년째 지속한 사회공헌의 임팩트… 성적은 물론 꿈을 찾은 학생도 많아

올해 4년 차에 접어든 사회공헌인 만큼 드림클래스의 사회적 가치도 커지고 있다. 드림클래스 1기생 중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 벌써 대학에 진학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 대전 둔원중에서 1년간 드림클래스 강의를 듣고 대전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정은진(20)씨는 올해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은진씨는 “당시 드림클래스 수학 선생님이 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카이스트 학생이었다”면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4~5년 앞서 밟은 선배에게 듣는 조언은 내 꿈을 키우는 커다란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내신 관리에 어려움을 겪던 엄지영(20)씨는 1년간의 드림클래스 수업을 통해 경기북과학고에 진학했고, 올해 성균관대 공대생이 됐다. 화공과로 진학해 연구원을 꿈꾸는 지영씨는 “그 전에 먼저 드림클래스 강사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육에 방점을 찍다 보니 수학 능력 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까지 드림클래스 수강생 중 특목고 91명, 자율형사립고 81명, 마이스터고 108명이 진학하는 결과를 냈다. 안산 상록중학교에서 3년간 드림클래스를 수강한 최지윤(가명·16)양은 올해 경기외고에 입학했다. 지윤양은 “선생님이 이메일로 꾸준히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를 해주시고, 실전처럼 면접 예행 연습도 준비해 주셔서 외고 입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얻어가는 것은 성적뿐만이 아니다. 지윤양과 함께 상록중에서 드림클래스 수업을 듣고 상록고등학교에 진학한 박수원(가명·16)양은 아직도 강사들과 메신저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 이들에게 드림클래스 선생님은 ‘영어·수학 과목 강사’를 넘어선 삶의 멘토다.

“요즘도 혼자 공부를 하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 선생님께 보내요. 그럼 선생님이 그때그때 확인해서 문제를 풀어주시니 참 좋아요. 만나면 맛있는 것도 잘 사주시고요.”

3년간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의 우정도 아이들에게는 큰 지지 경험이 된다. 적은 인원이 일주일에 네 번씩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듣다 보니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보다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밖에 없다. 지윤·수원양 역시 단 한 번도 같은 반인 적이 없었지만, 드림클래스 교실에서 친자매처럼 서로를 독려하며 중학 시절 3년을 함께했다.

“반 친구는 1년마다 바뀌는데 지윤이는 저와 3년을 같이했잖아요. 사실 초등학생 때는 공부에 흥미도, 욕심도 없었는데 1등인 친구와 붙어다니면서 저까지 모범생이 됐죠. 참을성과 책임감도 생겼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은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고생을 좀 하는데, 저는 지윤이랑 3년 내내 도서관에 다닌 덕분인지 힘들지도 않고 적응도 쉽더라고요.”

삼성사회봉사단 장인성 전무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도 중요하지만, 성실하고 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들이 사회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게 고교 장학금 등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부평=권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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