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사회적 가치와 자립… 두 토끼 이렇게 잡았죠

영국 혁신 사회적 기업 탐방

후원 수입은 단 20%, 바이크워크스
기부받은 폐자전거 수리해 판매하고
사이클링 이용한 직장內 팀빌딩 진행
작년 매출 26억 중 80%를 비즈니스로

150명 예술인의 공간, 아웃오브블루
16년 전 17억 조성해 매입한 ‘드릴홀’
대출금은 전시·공연장 대여 수익으로
입주 예술가들, 주민에 年450개 강좌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 중 어느 쪽이 우선인가?”

사회적기업가들이 늘 고민하는 질문이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시행 이래 설립된 사회적기업 중 상당수는 정부의 인건비 지원에 기대 운영됐다. 최근에는 각종 사회문제를 혁신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혁신형 사회적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역시 자립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자립하기에 충분한 수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할까? 사회적기업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오랜 영국에서는 이 질문에 “가능하다”고 답하는 곳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주임교수 장종익) 연구팀은 지난 2월 8~16일 영국 런던과 에든버러 사회적경제를 탐방한 현장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도 창출하는 사회적기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전거 문화 확산을 위해 신규 사업을 끊임없이 개발해내는 ‘바이크워크스'(Bikeworks), 과감한 자산 투자로 예술 지원 활동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 ‘아웃오브블루'(Out ot the Blue)가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 주


 

1 바이크워크스는 올해 ‘올 어빌리티 프로그램’을 런던 전역으로 확산 시킬 예정이다. 2 바이크워크스의 짐 블레이크모어 대표.
1 바이크워크스는 올해 ‘올 어빌리티 프로그램’을 런던 전역으로 확산 시킬 예정이다. 2 바이크워크스의 짐 블레이크모어 대표.

런던 동쪽의 ‘베스널 그린'(Bethanal Green) 지역은 신흥 금융 중심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바로 옆이지만 개발에서 소외된 가난한 동네다. 지하철역 인근임에도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스산한 길을 따라가다 굴다리 밑을 지나면 ‘바이크워크스’ 매장 간판이 보인다. 설립자이자 상근 대표인 짐 블레이크모어(40)는 “금융가 직장인과 저소득층이 교차하는 이 지역이 사회적기업에는 딱 좋은 위치”라고 말했다.

매장 안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각종 자전거가 전시돼 있고 의류, 공구, 소품까지 빼곡히 진열돼 있다. 그중 안쪽 가운데 나란히 세워진 자전거들이 폐자전거를 기부받아 수리한 ‘재사용품’이라고 했다. 지하에는 자전거 수리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수리 전문가, 사이클링 강사 등을 양성하는 교육도 이뤄진다. 뒤편 창고에는 보기 드문 독특한 자전거들이 있다. 휠체어 자전거, 손으로 굴리는 자전거, 삼륜 자전거 등이다. 장애인 대상 교육에 사용되고 일반 사이클링 교육 중에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용도로 이용된다고 했다.

블레이크모어 대표는 바이크워크스의 핵심 가치를 ‘자전거·사이클링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활동적으로,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것’이라고 했다. 주된 사업 부문 중 하나가 ‘폐자전거를 기부받아 수리해 재판매’하는 것인데, 노숙자, 장기실업자, 재소자 등을 수리 전문가와 강사로 훈련시켜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다. 현재 바이크워크스 직원 중 4명이 노숙자 출신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익숙한 모델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회적기업이 있다. 다만 바이크워크스의 차별성은 그 모델을 다양한 사업으로 만들어 온 데 있다. 2014년 바이크워크스의 매출액은 150만파운드(약 26억원). 직원 20여명의 작은 기업으로서는 상당한 규모다. 무엇보다 이 중 80%가 ‘비즈니스’를 통해 나왔고, 20%만 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폐자전거 재판매 등 소매를 통한 매출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 최근에는 자치구와의 계약을 통해 ‘지역 청소년 비만 예방 사이클링 교실’ ‘뇌병변·자폐 어린이 자전거 교실’ 등을 펼치는 것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바이크워크스는 주민 건강에 관심을 가진 자치구들에 적극적으로 새 교육과정을 제안하고, 계약을 따낸다. 스스로 자기 자전거를 수리하기 원하는 직장인, 여성 등에게 특화된 교육과정도 꽤 비중 있는 수입원이다. 노숙자 및 장기실업자 대상 교육과정에는 정부의 고용 연계 지원금이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업 대상 프로그램이다. ‘자전거 친화적인 사무실 컨설팅’을 통해 직원들이 자전거 통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사이클링을 매개로 한 ‘직장 내 팀빌딩(team building)’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이다. 초기에는 기업 단위로 컨설팅 의뢰를 받았다면, 최근에는 사무실이나 팀 단위 컨설팅이 많다. 이는 자연스럽게 ‘팝업 바이크워크스’라는 서비스 개발로 이어졌다. ‘찾아가는 자전거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일정 단위 소비자들이 요청하면 찾아가서 제품 판매, 수리, 컨설팅, 사이클링 교육까지 실시하는 내용이다.

바이크워크스의 올해 목표는 ‘올 어빌리티 프로그램’을 런던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것과, ‘팝업 바이크워크스’의 활성화다. 향후 계획은 바이크워크스 모델을 복제해 다른 지역에 전파하는 ‘프랜차이징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폐자전거 수리 재판매 사업의 비중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블레이크모어 대표는 “(폐자전거 수리 재판매는) 순이익이 점점 줄어드는 부분이라 기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 말은 다른 사회적기업들을 위해 요청한 조언과도 연결된다.

“사회적기업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이 늘 먼저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면 소셜 임팩트는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1 아웃오브블루에서 진행하는 예술 공연의 한 장면. 2 아웃오브 블루는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1 아웃오브블루에서 진행하는 예술 공연의 한 장면. 2 아웃오브 블루는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런던이 국제도시 이미지라면, 에든버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의 고색창연한 도시다. 1940년대부터 이어져 온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한데, 2000년대 들어 이 세계적인 예술 축제의 주요 파트너로 부상한 사회적기업이 있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현 개최 장소인 ‘아웃오브블루 드릴 홀’을 운영하는 ‘아웃오브블루’다.

이곳의 룹 훈(57) 매니저는 가운데가 3~4층 높이로 확 트인 실내를 보여주며 “예전에 군인 훈련 장소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안쪽을 빙 둘러 작업 공간과 사무실들이 있는데 여기에 미술 작가, 음악가 등 80여 팀이 저렴한 임차료로 입주해 있다. 건물 외부 여러 장소에 입주한 예술가들까지 포함하면 아웃오브블루는 예술가 총 150여명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기업 모델도 국내에서 여럿 찾아볼 수 있다.’아웃오브블루’의 남다른 점은 바로 이 ‘드릴 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 베를린 등 유럽의 예술 도시를 경험하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에든버러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1994년 아웃오브블루를 설립했는데 처음에는 비어있는 시 소유 건물을 싸게 임차하는 방법만 취했어요. 3년 후쯤 우리 소유 건물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이들은 100만파운드(약 17억원)를 조성했다. 이 중 건물 매입비 65만파운드(10억원)는 전액 대출이었다. 물론 사회적금융이 발달해 있어 낮은 이자로 빌릴 수 있었다. 이 밖에 복권기금, 스코틀랜드 예술 진흥 기관의 지원금, 정부 지원금 등을 합쳐 1999년 지금의 드릴 홀을 탄생시켰다. 아웃오브블루는 스코틀랜드에서 대출로 건물을 매입한 첫 사회적기업이 됐다.

이 공간을 소유함으로써 아웃오브블루의 ‘모두에게 예술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는 미션은 날개를 펼쳤다. 넓은 홀은 공연장, 전시장, 교육장, 클럽, 영화관, 벼룩시장 등으로 사용되고 지역 주민, 청소년 등이 공연 리허설을 위해 빌릴 수도 있다. 실내 안쪽의 카페는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청소년들의 직업훈련장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아웃오브블루 수입의 원천이다. 그 덕에 건물 매입을 위한 대출은 지난 15년여 동안 거의 갚을 수 있었다.

이 공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술가와 주민을 연결 짓는 것이다. 입주한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예술 강좌를 연간 450여 개 열고 주민 5000여명이 여기 참여한다. 그 밖에도 연간 50여 회 예술 공연과 이벤트가 개최되고, 미술 전시가 12회 열린다. 연간 9만명이 라이브 공연, 영화 상영회, 낭독회, 비디오 아트, 무용, 코미디 공연 등을 즐기고 있다.

훈 매니저는 “만일 우리가 이 건물을 사지 않았다면 이 지역은 지금까지 주택지였을 것이고, 예술가들은 공간을 찾지 못해 타지로 나갔을 것”이라면서 “이 장소는 주민들의 삶과 건강, 문화생활에 영향을 줬으며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예술가, 젊은 사회활동가들은 철학과 아이디어, 유머를 가지고 있지만 재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주변 자원을 잘 활용하고 확고한 비즈니스 플랜을 사업계획서로 표현할 줄 알아야 사회적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바이크워크스와 아웃오브블루는 이렇게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영국 사회적기업 환경이 국내와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장종익 한신대 교수는 “영국의 사회적기업들이 자립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사회적금융, 자선 기관, 정부 정책 등이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업을 밀어주는 ‘생태계’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다”면서 “한국의 공공 섹터도 사회적경제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려면 직접 지원보다는 궁극적인 ‘생태계 조성’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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