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아끼고 아낀 기부금, 작은 비영리 지원에 씁니다”

[인터뷰] 우창원 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안구와 각막을 기증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2월 설립됐다. 김 추기경 선종 1주기에 출범한 재단은 국내외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한 모금과 소규모 비영리 단체를 지원하는 배분 사업을 목적 사업으로 하는 법정기부단체로 자리 잡았다. 모금기관이 법정기부단체로 등록하려면 총 지출 금액의 80% 이상을 기부금 배분지출액으로 써야 하고, 관리·운영비를 기부금 수입의 10% 이내에서 써야 한다. 민간 모금기관 중에 법정기부단체로 등록된 곳은 바보의나눔이 유일하다. 법정기부단체지만 정부 지원금은 받지 않는다. 천주교 교구의 지원금도 일절 받지 않고 오직 모금으로 운영비를 마련한다.

재단의 살림살이는 우창원(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맡고 있다. 2016년 사무총장을 맡은 이후 올해로 8년째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에 있는 바보의나눔 사무실에서 우창원 사무총장을 만났다. 그는 “재단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엄격한 기준의 법정기부단체로 등록한다는 것”이라며 “운영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나눔을 실천하다 보면 또다시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기부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바보의나눔 사무실에서 만난 우창원 사무총장은 올해로 8년째 재단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그는 “조용히 제 역할을 하는 작은 단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게 재단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외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투명하게 운영한다는 건 회계상 오류 없다는 뜻도 있지만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정말 필요한 곳에 지원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외부 지원금이 들어오면 그게 쉽지 않습니다. 천주교 교구의 지원금을 마다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이유로 받지 않아요. 김수환 추기경께서 자화상에 쓴 ‘바보야’라고 쓰신 것처럼 재단을 ‘바보처럼’ 운영하는 거죠(웃음).”

―성직자로서 공익재단의 살림을 꾸리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초기에는 모금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색했어요. 큰 단체 대표나 사무국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더라고요. 더군다나 신부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업계의 흐름이라든가 관계를 이해하는 데 꽤 어려웠어요. 용어도 낯설었고요. 특히 회계가 어려워서 총장직을 맡은 초기에 학생처럼 공부도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신부라는 것 때문에 믿고 맡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려움이 있지만 응원해 주는 분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바보의나눔’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공모배분사업이다. 매년 7~8월 재정 지원이 필요한 단체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11월 이사회에서 이듬해 지원 단체를 선정한다. 지난 1일 재단에서 발표한 ‘2024년 바보의나눔 파트너단체’는 총 143곳이다. 2012년 첫 공모배분사업으로 20억원 규모로 72개 단체를 지원한 이후 매년 단체 수를 늘려 10여 년 만에 2배로 키웠다.

―지원 단체를 ‘파트너’로 표현하더군요.

“배분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 파트너 단체라고 부릅니다. 지원 서류를 쓸 때부터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재단에 물어보라고 합니다. 별도의 설명회도 하고요. 어려운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려고 하기 때문이죠. 배분사업에서 단체들이 접수하기만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소식을 듣고 좋은 일을 하는 단체라고 하면 저희가 먼저 연락해 지원하라고 알려주기도 해요. 지원하는 단체와 받는 단체 간에 형성될 수 있는 갑을 관계를 애초에 방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재단의 원칙이 곳곳에 녹아 있는 모습입니다.

“적은 금액일지라도 꼭 필요한 부분을 찾아 지원합니다. 이주민 산모에게 출산보조금을 준다든가 취약 계층에 이불을 지원하는 일도 연말이면 합니다. 난방비 지원은 많이 하는데 이불을 지원하는 곳은 거의 없거든요. 소규모 단체들을 위한 역량 강화비도 지원합니다.”

―소규모 단체에 집중하는 이유가 뭔가요.

“중요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원은 전혀 못 받는 단체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모배분사업 대상의 약 70%를 소규모 단체로 선정하고 있어요. 내부 기준으로 직원 10인 이하, 세입 5억원 이하를 소규모 단체로 봅니다.”

―비영리 활동가들의 아지트인 ‘동락가(同樂家)’도 바보의나눔이 지원하는 공간이죠.

“대림산업 이준용 명예회장으로부터 기부받은 종로구의 주택을 ‘동락가’라는 이름으로 꾸며 비영리단체와 활동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열었습니다. 다음세대재단이 동락가를 운영하고 있죠. 소규모 단체들이 업무를 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행사도 열 수 있는 공간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라고 들었습니다.”

―기부자마다 저마다 사연이 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몇 년 전에 집을 판 돈을 기부한 부부가 있었어요. 사회생활 시작할 때 월급 2만원을 받으면 1만8000원을 저축했대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건물을 샀는데 엄청 올랐다는 거예요. 그분들 말씀이 ‘거저 받은 돈이라 다시 내놓는다’고 해요. 봉투에 순금 반지를 넣어 온 사람도 있고요.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가득 담아와서는 저금통은 다시 돌려달라는 분도 계십니다. 다시 채워온다고요. 그렇게 내주는데 어떻게 함부로 쓰겠습니까.”

우창원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을 반복했다. 우 총장은 “올해 정기 기부자도 줄고 전체적인 모금액도 많이 줄었는데 코로나 이후 여파가 올해 나타나는 것 같다”며 “기업도 가계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지만, 이 시기를 이겨내는 힘은 나눔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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