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못난이 농산물’로 지구를 살린다

[인터뷰] 정한석 예스어스(YES US) 대표

‘못난이 농산물’은 농산물 표준규격에서 벗어난 등급 외 농산물을 가리킨다. 맛과 영양은 일반 농산물과 다르지 않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팔리지 못한다. 모양, 색깔, 크기 등이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농산물은 국내 전체 생산량의 10~30% 정도다. 최대 5조원 규모의 농산물이 매년 도로 땅에 묻힌다.

멀쩡한 농산물이 그냥 버려지는 것도 아깝지만 버려진 농산물이 땅속에서 썩으면서 토양을 오염시키고 메탄 등 온실가스를 내뿜는다는 점도 문제다. 먹지 않는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토지·물·노동력이 낭비되고, 버려진 농산물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정한석 예스어스 대표. /예스어스
정한석 예스어스 대표. /예스어스

‘예스어스’는 못난이 농산물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이다. 판로가 막힌 농산물은 대개 버려지거나, 모양을 따지지 않는 잼·주스 등의 가공공장으로 팔려간다. 예스어스는 농산물을 가공공장보다 20% 비싸게 구매한 뒤, 시세보다 20% 이상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윈-윈’하는 구조를 만든다. 지난달 26일 정한석 예스어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쇼핑몰이나 마트가 늘고 있습니다. 예스어스는 어떤 차별성이 있나요.

“예스어스는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뿐 아니라 ‘판로 잃은 농산물’도 판매합니다. 상품성이 떨어져 밭을 갈아엎어야 할 위기에 놓인 작물들을 농가로부터 공급받아 판매하고 있어요. 이때 농가의 수익을 일정 수준 보장해줍니다. 판매 수익이 수확에 들어가는 인건비보다 낮을 때 밭을 갈아엎는 일이 벌어지거든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술이 어디에 적용되는지 궁금합니다.

“MBTI(엠비티아이)에서 이름을 따온 ‘먹비티아이’ 테스트라는 게 있는데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이 쓰입니다.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해 정기구독 서비스인 ‘어스박스’ 꾸러미에 들어갈 채소와 과일, 그리고 레시피까지 인공지능이 제안해줍니다. 고객의 취향, 구매 내역 등을 분석해 더 적합한 상품 꾸러미를 조합하는 것도 인공지능이 수행하고 있어요.”

-2021년 11월 론칭 이후 1년 반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거래 농가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농업 쪽에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으니 쉽지 않았죠. 그런데 ‘예스어스와 함께하면 수익도 보장되고 괜찮더라’ 하는 입소문이 돌면서 더 많은 생산자와 함께할 수 있게 됐죠. 지금은 생산자님이 다른 생산자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지자체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해요. 거래하는 농가 규모도 아주 영세한 곳부터 영농조합 단위까지 다양해요.”

-못난이 농산물 소비가 실제로 환경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판로가 마땅치 않으면 결국 밭을 갈아엎는 게 현실입니다. 과수원 같은 경우는 과일이 땅에 떨어져 썩고, 나무가 죽도록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이 작물들이 썩으면서 탄소가 배출돼요. 못난이 농산물 1g이 폐기되는 과정에서 평균 1.65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더 정확한 배출량, 예를 들어 ‘당근 1개가 버려졌을 때 나오는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농산물을 포장하고 유통하는 데도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요. 포장과 유통 단계에서 환경을 위해 신경 쓰는 것이 있나요.

“어스박스 꾸러미의 경우 상자, 포장재, 냉매 모두 친환경 소재를 쓰고 있어요. 사실 제일 어려운 부분입니다. 비용은 비용대로 들어가고, 일회용 포장재에 비해 효율도 떨어지고요. 그래서인지 고객님들의 클레임이 주로 배송 관련해서 들어와요. 최대한 신경 써서 상품 품질에 이상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스어스의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 정기구독 서비스 ‘어스박스’ 구성. /예스어스
예스어스의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 정기구독 서비스 ‘어스박스’ 구성. /예스어스

-환경 보호뿐 아니라 식량 안보, 농가 소득 보전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비즈니스인 것 같습니다. 혹시 정부 지원은 따로 없나요.

“정부 지원은 따로 받는 게 없어요. 지원이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풀필먼트 시설(재고관리·포장·배송 등 물류 과정 전반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시설)에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는 국내 스타트업은 거의 없거든요. 정부에서 시설을 대여해 업체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전국 곳곳에 있는 농산물 산지유통센터(APC)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지역에서도 영향력 있는 기업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내 대기업들, 지자체와 함께 ESG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 구내식당을 담당하는 업체에 저희 못난이 농산물을 납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워낙 규모가 큰 업체이다보니 못난이 농산물 이슈를 더 넓게 홍보할 수 있었죠. 충청북도와 함께 ‘못난이 김치’를 판매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판로 확보가 어려운 배추를 수확해 충북 김치 공장과 연결해 저렴하게 판매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국산이고, 저렴하고, 사회적 의미도 있고요. 앞으로도 다양한 기업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채소·과일뿐 아니라 육류, 해산물 관련한 환경 이슈도 심각하죠.

“육류나 해산물은 축산이나 양식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합니다. 농·축·수산물 업계에 ‘자발적 탄소시장’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고, 감축량만큼 마일리지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거죠. 예스어스도 농산물 영역을 넘어 식품 생산과 유통업 전체의 탄소 절감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못난이 농산물 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지금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30~40%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어요. 바꿔 말하면 그만큼 엄청난 규모의 부가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죠. 일회성 기사나 홍보가 아닌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스어스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사회적 공감대가 먼저 생겨야 하고 정부와 언론, 다른 기업들도 함께해야 효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김채운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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