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학생·학부모·선생님이 매점 주인… 사회적협동조합, 학교를 바꾸다

교육문제 해소 노력하는 사회적경제조직
사회적협동조합 들어선 영림중학교 매점
바른 먹거리 제공하고 매출은 학교 환원
성북구·명지대가 협업한 ‘봉제야 달려라’
대학생 디자인한 옷 영세업체 통해 유통
저소득층 과외해주는 ‘착한공부프로젝트’
대학생·기자·교수 등 재능 기부 함께 해

“우리 학교는 ‘안 보내고 싶은 학교’ 중 하나였어요. 이사 가는 집도 많았죠. 근데 협동조합이 생기고 많이 바뀌었어요. 학부모와 교직원의 소통이 잘되는 학교, 안전한 먹거리가 있는 학교라고 소문나면서요.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제 이사 갈 일 없겠다’는 얘기도 자주 들어요.”

김윤희(45) 이사장의 말이다. 김 이사장은 서울 구로동에 있는 영림중학교에서 교내 사회적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이 학교에 사회적협동조합이 생긴 건 2012년 10월. 계기는 단순했다. 학부모회가 학교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에 매점에서 간식을 사왔는데, 과자나 빵 등이 너무 부실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제과제빵 브랜드 제품뿐이었다. 매점 측은 “수익이 안 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용돈이 적고 일찍 하교하는 중학생의 특성 때문에 매점 주인 입장에서 원가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점 주인이 두 손 털고 나간 자리에 사회적협동조합이 들어섰다. 당시 학부모 회장이었던 김 이사장이 학부모·지역생협 활동가·교직원 등 32명을 모아 만들었다. 생협에서 만든 바른 먹거리가 매점을 채웠고, 거기서 나온 매출은 학교에 환원됐다.

사회적 경제 분야에선 사교육도 차별이 아닌 평등의 기회가 된다. 드림메이커인터내셔널의 ‘착한공부프로젝트’ 현장
사회적 경제 분야에선 사교육도 차별이 아닌 평등의 기회가 된다. 드림메이커인터내셔널의 ‘착한공부프로젝트’ 현장

“마진이 작아 이익은 크지 않지만 매점 임대료로 지불되는 돈(연 660만원)은 오롯이 아이들 복지를 위해 쓰이죠. 교장선생님도 조합원인데 매달 총회에 직접 참가합니다. ‘선풍기를 교체하고 책을 샀다’는 등 아이들 복지에 쓴 비용을 다 확인시켜 주세요.” 영림중 사회적협동조합은 현재 매점 운영 외에도 구로 지역 학생들을 위한 ‘협동조합 강사 양성’ 사업도 진행 중이다.

경기 성남의 복정고는 학생들이 주축이다. 매점 협동조합 ‘복스쿱스’를 운영하는 304명의 조합원 중 학부모·교직원의 수는 10여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학생들의 발언권이 세다. 조합 이름도 학생들이 직접 정한 것. 협동조합 이사로 활동 중인 박선하(18·복정고 3년)양은 “매점에서 판매되는 물품 전부가 시식회를 통해 학생들이 결정한 것”이라며 “외진 곳에 있는 신생 학교라 학교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았는데, 스스로 복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커지고, 학생들 간의 유대관계도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학교협동조합은 함께 결정하고 실행해보는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전인교육'”이라며 “좋은 모델만 제대로 갖춰지면 가장 빠르게 복제·확산될 수 있는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협동조합 섹터에서 매우 기대가 큰 영역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영림중학교의 매점 전경, 이 학교의 매점은 학부모와 학생, 교사를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다.
영림중학교의 매점 전경, 이 학교의 매점은 학부모와 학생, 교사를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다.

◇대학도 뒤질세라… 사회적 경제와의 교류·협력 줄 잇는다

학교를 바꾸고,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학교 내에 협동조합이 생길 뿐 아니라 대학 안팎으로 사회적기업·협동조합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한다. 지난달 말 손을 맞잡은 성북구 협동조합 ‘봉제야 달려라’와 명지대 사회적기업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가 대표적인 예다. ‘봉제야 달려라’는 지난해 10월 성북구 보문동 인근에 있는 영세 봉제업체 11곳이 모여 만든 생산자 협동조합. 권여명 이사장은 “대학에서 1만명 이상의 의상디자이너가 배출됐지만 대부분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우리 같이 조그만 공장에선 자체적인 디자인을 만들지 못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대학생들이 디자인을 하면 우리가 만들고 유통하는 방식으로 함께 활로를 뚫고자 했다”고 말했다. 양측은 ‘바치다(BACHIDA)’라는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 온라인 쇼핑몰이나 외부 판매망 등을 확충하며 시장에 나설 태세를 갖춰가고 있다.

대학에 사회적기업 관련 교과목이나 전문가 과정을 개설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2011년에 중앙대학교 상경학부(사회적기업과 혁신),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기업사회공헌과 사회적기업) 등에서 관련 교과과정 개설을 시작했으며, 지난해와 올해도 경남대·단국대·서울시립대 등이 동참했다. 성균관대·부산대·한양대 등은 사회적기업 ‘리더과정'(1년)을 운영하고 있다. 정재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교육관리 팀장은 “대학에 사회적기업 관련 교과목이나 ‘전문 과정’이 생기면 사회적 경제 분야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좀 더 체계적인 인재 양성의 교두보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 사회적경제센터에서 열린 ‘제4차 사회적경제 토크 콘서트’에선 교육 평등을 추구하는 기업가, 교사, 학생들이 모여 열띤 논의를 펼쳤다.
지난 2일 사회적경제센터에서 열린 ‘제4차 사회적경제 토크 콘서트’에선 교육 평등을 추구하는 기업가, 교사, 학생들이 모여 열띤 논의를 펼쳤다.

◇저소득층엔 과외를, 대학생엔 멘토를… 청년 사회적기업도 활발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달려온 청년 그룹인 ‘점프’와 ‘공신닷컴’의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소셜벤처도 탄생했다. 지난 5월 강남구 청년창업지원센터에서 ‘청년 사업가 육성 기업’으로 선정된 ‘드림메이커인터내셔널’이다. 2011년부터 2년간 남미 파라과이에서 코이카(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일했던 이의환(30) 대표는 “학생들 꿈이 자본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착한공부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겉모습은 여느 대학생 과외와 비슷하다. 주 2회 ‘일대일’로 만나 국·영·수 등을 가르친다. 하지만 교육비(15만원)는 시중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역 종교 단체가 추천한 저소득층 학생에겐 그마저도 받지 않는데 전체 학생 중 30%가 이에 해당한다(현재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부하는 학생들은 100명 정도다). 이 돈은 저개발국에 재투자된다. 이 대표가 2009년부터 봉사활동을 해온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 ‘쁘레이덤낙’에 학교를 짓기 위해 수익의 일부가 적립되고 있다. 오는 11월부턴 학생 한 명당 ‘영양실조 치료식 미니팩'(유니세프)을 저개발국에 전달하는 ‘1+1’프로모션(총 300포)도 진행한다.

과외를 하는 대학생은 말 그대로 ‘봉사’다. 일대일 과외를 해도 손에 쥐는 건 교통비 정도. 그런데도 1년 만에 200여명의 대학생이 참여했다. 비결이 뭘까. 이의환 대표는 “과외비 대신 인큐베이팅을 해준다”고 했다. “스터디 그룹을 짜주고, 사무실 공간을 활용해 그들이 언제든 모여 공부할 수 있게 해줘요. 필요한 멘토들도 붙여주고요. 현재 유학준비반, 독서토론반, 영어 프레젠테이션반 등이 운영되고 있죠. 2주에 한 번씩은 정기 세미나도 엽니다.” 인큐베이팅에 활용되는 전문 인력도 100% 재능 기부로 참여한다. 이 대표는 “뜻이 있는 사람일수록 돈이 아닌 가치로 움직이더라”고 했다. “브라이언 킴(Brian Kim)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IT 기업 부사장이면서 삼성·LG·버버리 같은 기업에서 영어 강연을 해주세요. 몸값도 세죠. 저희 영어 관련 강좌는 그분이 맡고 계십니다. 이 밖에도 작가, 기자, 교수 등의 전문가들이 함께해요. 모두 타인의 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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