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0일(화)

[혁신의 목격자] 어느 탈북민 창업자의 부고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임팩트투자를 하며 울음을 터뜨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6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소셜벤처 제시키친(Jessie Kitchen)을 설립한 고 제시킴(김정향) 대표 영정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안경을 벗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제시키친의 임팩트 투자자라는 사실에 나는 슬픔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임팩트 투자자가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인연은 아산나눔재단이 통일한국 비즈니스를 주도할 탈북 창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아산상회’(ASAN SANGHOE)에서 예비창업가와 액셀러레이터로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제시킴은 ‘한반도를 잇는 음식! 잃어버린 한식의 반쪽을 소개한다’라는 비즈니스 컨셉으로 국내외 누구나 친숙한 음식을 통해 통합과 연합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했다. 때마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만난 분들과 ‘손실이 발생해도 괜찮은’ 윤리적 투자(ethical investing)를 처음 시도하기 위해 개인투자조합을 만들었던 때였다. 탈북민 여성 창업가가 시작한 제시키친은 국내 최초의 윤리적 투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2020년 10월, 창업자와 동일한 수준의 위험을 감내하겠다는 의미로 스타트업 투자에서는 흔하지 않는 보통주(equity) 투자를 진행했다. 제시킴은 탈북민 여성 창업가가 임팩트투자를 받은 국내 첫 사례라며 너무나 행복해했다.

다문화가족이라 통칭하는 결혼이민자·귀화자가 30만명이 넘는 것과 비교해, 탈북민은 현재 3만명 내외로 창업생태계 관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MYSC에 탈북민 창업가 육성과 임팩트투자는 2011년 설립 때부터 주요한 영역이었다. 제시키친을 포함해 탈북민 사회적기업 1호였던 ‘메자닌아이팩’,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요벨’ 등 3개 기업에 보통주 투자를 진행했다. 조성하려 한 ‘탈북민 창업가 임팩트투자 펀드’는 출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3개 기업 투자는 안타깝게도 현재까지의 탈북민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국내 최다 기록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지난주 복잡한 마음 그대로 아시아 최대의 임팩트투자 네트워크 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전 세계 1300여 명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모여 3일간 임팩트투자의 현재와 미래를 나누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MYSC가 몇 달 전부터 준비한 세션의 주제는 ‘Breaking Barriers and Building Bridges: Fostering Inclusion in Impact Investing’이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산하 테마섹 트러스트(Temasek Trust)의 임팩트투자 부문 센터(CIIP),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제레미 린(Jeremy Lin)의 패밀리오피스(JLIN LLC), 영국에 기반을 두고 한국에서도 활동을 시작한 임팩트 벤처캐피털 심산벤처스(Simsan Ventures)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심산벤처스는 향후 20년간 나이, 인종, 성별, 국적, 종교 등 다양한 관점을 가진 1만명의 벤처캐피털리스트(심사역)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주자, 난민, 탈북민 등의 배경을 가진 심사역이 없으면 자본시장과 벤처캐피털이 해당 영역으로 유입되긴 어렵다. JLIN LLC의 매니징디렉터 로버트 킴은 패널 토의에서 “임팩트 투자자는 투자 외에도 우리의 시간과 관계를 창업자 개인에게 충분히 쏟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시킴의 영정 사진 앞에서 내가 느낀 부끄러운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명확한 질문이었다. 탈북민 창업자인 요벨의 박요셉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줬다. “이북에서 태어나 이남에서 창업을 통해 자립하려는 도전은 경제적, 정서적, 사회적 독립을 위한 적절한 공동체적 지원 없이는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이를 지원해 줄 공동체의 부재는 정향이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공동체 지원이 필요한 건 비단 탈북민 창업자뿐일까? 숱한 사회환경적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임팩트 비즈니스의 창업가와 창업팀에게 임팩트 투자자가 그동안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의 임팩트투자 여정에 어떤 역할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깨닫게 해준 제시킴 대표의 영면을 기원한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