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도심 속 ‘궁궐숲’, 생태공원으로 꾸민다

도시 정비대상 제외된 서울 궁궐숲
비영리 주도 숲조성 프로젝트 첫발
자원봉사자 참여로 시민참여 유도

영국 런던에는 8개의 왕립공원이 있다. 규모는 2000만㎡ 정도로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한다. 과거 왕족의 사냥과 연회에 쓰인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시민과 자연을 위한 도시숲이 됐다. 런던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간 왕립공원은 쉼터 역할을 하는 동시에 도심 속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탄소 흡수원 역할도 해내고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1세의 왕실 행사장으로 쓰이던 세인트제임스공원은 펠리컨를 비롯한 15종의 조류와 여우, 박쥐 등 포유류의 주요 서식지다. 켄싱턴궁을 중심으로 조성된 하이드공원과 켄싱턴가든도 꿀벌, 딱정벌레 등의 곤충과 야생 조류를 연결하는 생태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왕립공원 켄싱턴가든에서 자원봉사단 ‘프렌즈오브더로열파크스’ 소속 시민들이 도시숲 정비 활동을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더로열파크스(The Royal Parks)’는 자원봉사 조직을 꾸려 2017년부터 왕립공원을 운영·관리 해오고 있다. /더로열파크스
영국의 왕립공원 켄싱턴가든에서 자원봉사단 ‘프렌즈오브더로열파크스’ 소속 시민들이 도시숲 정비 활동을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더로열파크스(The Royal Parks)’는 자원봉사 조직을 꾸려 2017년부터 왕립공원을 운영·관리 해오고 있다. /더로열파크스

런던의 왕립공원이 생태공원으로 자리잡는 데는 비영리단체 ‘더로열파크스(The Royal Parks)’의 역할이 컸다. 영국 정부는 1851년 왕립공원 운영권을 이양받은 이후 줄곧 관리해왔지만, 2010년대 들어 예산 부족 등으로 운영 부실 문제가 일어났고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더로열파크스로 관리 주체를 이관했다. 단체는 ‘프렌즈오브더로열파크스’라는 자원봉사단을 꾸려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고, 지난해에는 그리니치공원에서 왕립공원 복원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4년 동안 800만파운드(약 130억원)가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에서는 관광객이 훼손한 왕립공원 전경 회복과 함께 탄소 흡수를 위한 산림녹화, 야생동물 서식지 복원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비영리 주도의 도시숲 조성 사업이 첫 발을 내딛었다. 대상지는 서울 궁궐 내에 있는 이른바 ‘궁궐숲’이다. 서울 5대 궁궐인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에 각각 숲이 조성돼 있지만, 궁궐숲은 법적으로 도시숲이 아니라 ‘도시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리되지 않았다.

지난 9일 서울 창경궁 내 궁궐숲 가꾸기 캠페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재단법인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등과 함께 지난 3월부터 ‘비법정 생활권 녹지’로 분류된 궁궐숲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지난 9일 서울 창경궁 내 궁궐숲 가꾸기 캠페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재단법인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등과 함께 지난 3월부터 ‘비법정 생활권 녹지’로 분류된 궁궐숲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재단법인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와 공동으로 지난 4월부터 창경궁 율곡로 일대에서 ‘궁궐숲 가꾸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궁궐숲 관리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산은 매년 2억원씩 3년간 투입된다. 박찬열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창경궁 숲은 연간 5.7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대기오염물질 164.3kg을 저감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환경 가치를 화폐로 따지면 연간 2억5000만원 규모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잡초 제거 활동을 진행했다. 지난 봄에 심은 나무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정원사 손정희(50)씨는 “궁궐숲의 가치에 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점이 늘 아쉬웠다”며 “여러 시민들이 함께 바꿔 나가면 창경궁 숲의 생태환경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창경궁 내 숲 면적은 총 10만㎡에 이른다. 이 가운데 율곡로 권역 8000㎡를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맡았다. 프로젝트 첫해인 올해는 나무 심기와 잡초 제거 등 여덟 차례 활동이 진행된다. 쪽동백 등 밀원수를 포함해 나무 355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서지영 서울그린트러스트 코디네이터는 “영국의 더로열파크스의 경우 10년 단위로 궁궐숲 조성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이번 창경궁 숲 가꾸기 사업을 시작으로 장기적 관점의 궁궐숲 관리 체계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백승훈 인턴기자 poja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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