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르포] 시리아 난민 아동 ‘마즌’과 ‘빌랄’ 이야기

6월20일 ‘난민의 날’ 기획

“텐트촌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가 가장 좋아요. 작년에 4학년이었고, 원래는 이번에 5학년이 됐어야 하는데…. 지나가는 버스만 봐도 속상해서 눈물이 나요. 그러면 엄마도 울어요.”

지난 5월 31일(이하 현지 시각) 레바논의 베카(Bekaa)주.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에서 13살 마즌(Mazen)을 만났다.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인 마즌은 올해부터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다. 한 살 아래 여동생 에흐다도 마찬가지다. 통학 교통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간다. 마즌의 엄마가 감자 농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받는 일당은 50센트(약 650원). 통학 버스비는 하루 20센트(약 250원)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12년째 이어지면서 난민 아동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만성 재난’의 상태로 돌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난민들을 받아준 레바논에도 문제가 생겼다. 레바논 인구는 약 600만명. 이 중 시리아 난민이 200만명이다.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포용한 레바논에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난민들의 상황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 5월 28일부터 6일간 월드비전과 함께 레바논 곳곳을 돌며 만성적·복합적 위기에 빠진 시리아 난민 아동 문제를 취재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레바논 베카 지역의 시리아 난민 텐트촌에서 인터뷰한 마즌(13) 가족. 엄마가 감자 농장에서 일해 받는 일당은 50센트다. 마즌과 동생 에흐다는 통학 교통비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인터뷰 내내 울었다. /베카=레바논월드비전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레바논 베카 지역의 시리아 난민 텐트촌에서 인터뷰한 마즌(13) 가족. 엄마가 감자 농장에서 일해 받는 일당은 50센트다. 마즌과 동생 에흐다는 통학 교통비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인터뷰 내내 울었다. /베카=레바논월드비전

아무도 모른다

마즌 가족이 시리아 알레포를 탈출한 건 2012년이다. 사방에서 터지는 포탄들을 피해 어렵게 국경을 넘은 가족은 감자와 포도, 올리브가 생산되는 레바논의 대표적인 농업지대 베카에 도착했다. 마즌이 2살 때 일이다.

베카의 난민 대부분은 ‘ITS’(Informal Tented Settlements)라 불리는 비공식 텐트촌에서 산다. 3~5개 텐트가 모인 곳도 있고 100개 넘는 텐트가 마을을 이룬 곳도 있다. 난민들은 집세를 내기 위해 텐트촌 인근 농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한다.

마즌의 엄마는 텐트촌에서 아이 넷을 키우며 농장 일을 한다. 땅주인에게 내야 하는 집세가 월 20달러, 발전기 주인에게 내는 전기료가 20~25달러, 정부에 내는 쓰레기 처리 비용이 15달러. 매월 고정비만 60달러가 든다. 마즌 엄마가 농장 일로 버는 수입은 한 달 평균 7달러(약 9000원) 정도다.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베이루트로 갔지만 거기도 일자리가 없어서 돈을 보내주지 못할 때가 많아요.”

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너무 적다. 이 가게, 저 가게 다니며 사정해 외상으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얻는다. 빚이 계속 늘어난다. 월드비전, WFP(세계식량계획)등에서 주는 물품이나 생계비로 버티는 상황이다.

시리아 난민 아동 마즌이 텐트촌 안에서 엎드려 공부하고 있다. /베카·아카르·트리폴리=레바논월드비전
시리아 난민 아동 마즌이 텐트촌 안에서 엎드려 공부하고 있다. /베카=레바논월드비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마즌을 감자 농장에 데려간 적이 있었어요. 일을 못한다며 농장주가 아이를 밀치고 때렸어요. 아이가 넘어지면서 코와 입속으로 흙이 잔뜩 들어갔어요. 화가 나기도 하고 너무 슬펐어요. 살기 위해 우리가 지난 11년간 어떤 고통을 참아냈는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마즌의 엄마는 그날 이후 아이를 농장에 데려가지 않는다. 소망은 하나뿐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 가는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 엄마는 한 번 더 신을 믿어본다. “저는 고아였어요. 교육을 받지 못했죠. 자식들만큼은 꼭 공부시키고 싶었어요. 신이 허락한다면, 어쩌면 내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겠죠.”

레바논 인구 약 600만명 중 시리아 난민이 200만명을 차지한다.
레바논 인구 약 600만명 중 시리아 난민이 200만명을 차지한다.

쓰레기 줍는 아이들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 취약성 평가 2022′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 가정의 90%가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 월세와 식료품비를 감당하지 못해 빚을 지고 있다고 답한 가정은 94%에 달했다. 지난 4년에 걸쳐 진행된 레바논의 경제 붕괴가 시리아 난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9년 시작된 경기 침체, 코로나19 팬데믹, 2020년 베이루트 폭발 사건 등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레바논의 물가는 3년간 400% 치솟았다.

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아동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세핀(Josephine) 레바논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베카 난민 텐트촌의 아동들은 농작물을 심거나 수확하는 일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고, 도시에 사는 난민 아동은 쓰레기를 주워 팔거나 노점상에서 채소나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일부 아동은 건설 현장에서 무거운 돌을 운반하거나 높은 곳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트리폴리의 빈민가 '다라위시' 풍경.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쓰레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베카·아카르·트리폴리=레바논월드비전
트리폴리의 빈민가 ‘다라위시’ 풍경.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쓰레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트리폴리=레바논월드비전

실제로 레바논 도심 곳곳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는 난민 아동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일고여덟 살짜리부터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까지 커다란 자루를 등에 지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다. 대부분 남자아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로 꼽히는 트리폴리(Tripoli)에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디마(Dima) 레바논월드비전 트리폴리지역 코디네이터는 “구걸하는 아이들은 100% 시리아 난민”이라며 “텐트촌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와서 구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스(Hans) 레바논월드비전 회장은 “난민 아동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교육 중단’이라고 했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아동 노동’이, 여자아이들에게서는 ‘조혼(child marriage)’이 교육 중단과 맞물려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레바논 내 시리아 아동 100만명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언젠가 내전이 끝나면 시리아를 재건해야 할 아이들이기에 역량을 기를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것보다 두려운 것

지난 30일 레바논 북쪽 끝에 있는 아카르(Akkar)주에서 시리아 난민 아동 빌랄(15)과 모함마드(13) 형제를 만났다. 아이들은 월드비전이 만든 ‘에듀케이션 센터’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센터에 공부하러 오는 게 너무 좋아요. 학교에서 이해하지 못한 걸 자세히 배울 수 있어서 도움이 돼요. 지질학도 좋고, 수학도 좋아해요.”(빌랄)

“학교에서는 레바논 사람과 시리아 사람을 차별하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센터에는 그런 차별이 없어요. 그리고 안전해요.”(모함마드)

아카르의 '에듀케이션 센터'에서 인터뷰한 빌랄(15)과 모함마드(13) 형제. "가장 두려운 건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베카·아카르·트리폴리=레바논월드비전
아카르의 ‘에듀케이션 센터’에서 인터뷰한 빌랄(15)과 모함마드(13) 형제. “가장 두려운 건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카르=레바논월드비전

올해 1월 레바논월드비전은 ‘하다사’라는 지역 NGO와 함께 빈 건물을 빌려 에듀케이션 센터를 오픈했다. 200명의 아동이 이곳에서 수학, 과학, 아랍어, 불어를 공부한다. 통학 버스도 제공한다. 조지(George) 레바논월드비전 아카르지역 프로그램 매니저는 “센터의 목표는 아이들의 성적 향상”이라며 “레바논 공교육에서는 성적이 20점 만점에 10점을 넘어야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센터에서 매일 출석 체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동 노동이나 조혼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빌랄과 모함마드는 오전에 센터에 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학교에 간다. 형제의 가장 큰 걱정은 가족 아홉 명의 ‘생활비’다.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형제는 재활용 쓰레기 줍는 일을 하고 있다. 둘이 같이 열심히 주우면 하루에 1.5달러를 벌 수 있다. 빵 3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빌랄은 “힘들게 모아놓은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 적도 있고 괴롭힘을 당하거나 맞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맞는 것보다 두려운 건 돈이 없어서 결국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센터가 문을 닫지 않으면 좋겠어요. 변호사가 돼서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싶어요.”

취재에 동행한 권정화 한국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은 “만성 재난이 된 시리아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에 또 다른 재난이 더해지는 복합 위기 상황에서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지원은 효과가 없다”면서 “특히 난민 아동의 경우 나라를 재건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영양’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했다.

샤르벨(Charbel) 월드비전 사업성과관리총괄은 “난민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레바논과 시리아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앞으로의 인도적 지원에서는 ‘사회 통합’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듀케이션 센터에서 시리아와 레바논 아동을 함께 지원하는 것도 사회 통합 차원이라고 했다. 한스 회장은 “난민에만 초점을 맞춘 지원이 아니라 ‘난민이 속한 사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화합하며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루트·베카·아카르·트리폴리=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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