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목)

“자립준비청년들 달래는 따뜻한 집밥 한 끼”

전국 각지서 매일 ‘밥집알로’ 찾아
식사하며 안부 묻는 네트워크 공간

“김치 좀 가져가.” “냄새 나고 들고 가기 힘들어요.” “냄새 안 나는 김치로 사뒀어. 가져가!”

서울 은평구 ‘밥집알로’에서 흔히 벌어지는 실랑이. 반찬 하나라도 손에 쉬어주려는 수녀와 이를 마다하는 자립준비청년의 귀여운 다툼이다.

밥집알로는 보육시설을 나와 홀로서기 중인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기쁨나눔재단이 지난해 1월 문을 열었다. 주택 3, 4층을 임차해 3층은 조리와 식사 공간, 4층은 휴게 공간으로 구성했다. 공간을 운영하는 신부와 수녀, 봉사자들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집밥을 준비해 청년들을 기다린다. 밥집알로는 직접 찾은 지난달 6일, 현관문을 열자 밥 짓는 구수한 향과 포근한 집안의 온기가 느껴졌다.

서울 은평구에 마련된 자립준비청년들의 공간 '밥집알로'.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서울 은평구에 마련된 자립준비청년들의 공간 ‘밥집알로’.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오후 4시 30분. 자원봉사자들은 오랜 세월 합을 맞춰온 듯 일사천리로 저녁밥을 준비했다. 오후 6시가 다가오자,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전북 전주, 경기 수원 등 각지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밥과 국을 뜨고 새 반찬을 접시에 담느라 정신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청년들은 밥을 먹으며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밥을 다 먹고도 거실에서 한참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이곳을 찾은 청년들은 20명이 넘는다.

밥집알로를 찾는 자립준비청년은 대부분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 출신이다. 밥집알로와 도보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보육시설을 퇴소한 청년들은 어려움이 생겨도 나이 제한 때문에 다시 시설로 돌아갈 수 없다. 퇴소한 청년들이 가장 쓸쓸할 때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때다. 혼자라는 현실이 문득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 유민상(21)씨는 “꿈나무마을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하다가 자립 후 혼자 지내면서 많이 외로웠다”며 “자립 초기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지만, 점점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져서 밥집알로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밥집알로의 운영을 맡은 박종인 신부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기댈 수 있는 ‘친정집’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밥집알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한 식탁에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식기는 은색 식판이 아닌 가정집에서 주로 쓰는 접시를 사용한다.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자립준비청년들은 한 식탁에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 식기는 은색 식판이 아닌 가정집에서 주로 쓰는 접시를 사용한다.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보건복지부 ‘2021년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에 따르면 보호종료 5년 이내인 자립준비청년 5명 중 1명은 연락 두절로 사후 관리망에서 벗어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밥집알로는 청년들이 어떻게 지내는 매개체가 된다. 밥집알로 운영을 돕고 있는 한 수녀는 “아이들이 퇴소하고 나면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려운데, 밥집알로라는 공간이 있으니 아이들이 아주 편안하게 온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밥집알로를 방문하는 청년들에게 ‘잘 지내니?’ ‘요즘은 뭐 하고 지내니?’ 안부를 묻는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청년들이 당장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함께 밥 먹는 시간이 늘면서 신부와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저녁을 먹으러 온다는 정다훈(23)씨는 임시개업 때부터 밥집알로를 방문한 단골손님이다. 정씨에게 밥집알로는 ‘상담소’다. 그는 “혼자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데, 자립준비청년은 혼자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사업 준비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6000만원가량 빚이 생겼다. 차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는 밥집알로에서 신부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 충남 천안에서 온 최사훈(24)씨는 “멀기는 하지만 가족이니까 주말마다 만나는 것”이라며 “서울에 가족 같은 지인이 많이 있어 잘 곳은 걱정 없다”고 말했다. 이어 “평일에는 대화 상대가 없어 굉장히 우울하다”며 “주말마다 밥집알로에서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밥집알로 부엌에서 봉사자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밥집알로 부엌에서 봉사자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밥집알로가 지금처럼 많은 청년을 만날 수 있는 데는 봉사자 역할도 크다. 처음 밥집알로가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메뉴는 김치찌개뿐이었다. 봉사자 수가 늘면서 메뉴도 다양해졌다. 봉사자는 하루 평균 4명으로, 동네 성당에 다니는 신자부터 기사를 통해 밥집알로를 접하고 멀리서 오는 봉사자까지 다양하다. 요리에 필요한 고기, 쌀 등 식재료는 후원을 받아 충당한다. 청년들에게 특식을 제공하고 싶다며 재료를 사오는 봉사자도 있다. 봉사자들은 청소와 설거지, 음식 준비를 하면서 청년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 재능기부를 하는 봉사자도 있다. 은퇴한 교수, 소아과 의사 등의 다양한 직업군의 봉사자들이 학습지원과 의료지원을 한다.

박 신부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해 상시로 밥을 제공하는 기관은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박 신부는 “다른 지역에도 밥집알로를 만들고 싶었는데,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지 않아 무산됐다”며 “밥집알로와 같이 자립준비청년들이 아동양육시설 퇴소 이후에도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경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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