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한번 품에 안기면 떨어지지 않으려 해 적어도 20분은 안아줘야 해요”

문상호 기자의 입양아 일시 보호소 현장 르포
신생아부터 생후 16개월까지 43명 아기를 보육사 19명이 3교대로 돌봐
입양·위탁가족 줄면서 대기 기간 늘어나 애착 관계 형성 늦어 성장 어려움 겪을 수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태어난 조국의 가정에서 자라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국제입양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국내외에 명확하게 보여주는 계기로 삼겠다.”

지난 2013년 5월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서명식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며 정부가 입양특례법을 개정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현수군 사망사건’〈더나은미래 3월25일자 D4면〉을 두고 입양을 둘러싼 문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터져 나오고 있다. 문상호 더나은미래 기자는 입양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 입양대기아동 일일보육사로 일하며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문 기자는 15개월 된 딸을 둔 아빠다. 편집자 주


문상호 기자(가운데)가 보육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입양대기아동들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문상호 기자(가운데)가 보육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입양대기아동들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몸 상태는 건강하시죠? 감기에 걸리지는 않으셨고요?”

지난 3월 28일 오전 8시 50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에 있는 동방사회복지회 영아일시보호소에 들어가기는 까다로웠다. 이곳은 친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입양대기아동이 위탁가정을 찾기 전 임시로 머무르는 공간이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신생아를 곧바로 보호소로 데려왔지만,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입양숙려제(출생 최소 7일 이후 입양 동의를 하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나면서 자택·사무실·산후조리원 등에서 이곳으로 아기를 보낸다고 한다. 문을 열자 새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43명의 아기는 ‘사랑방'(20명) ‘슬기방'(13명) ‘믿음방'(10명) 등 3개 방에 나뉘어 있었다. 사랑방은 갓 태어난 신생아나 건강이 좋지 않은 아기를 위한 방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이 매일 회진을 하고 일반인은 방 안으로 출입할 수 없다.

기자가 찾은 곳은 ‘슬기방’으로, 생후 3~5개월 아기들이 머무른다고 했다. “응애, 응애” 들어서자마자 새별(가명·2개월)군이 울기 시작했다. 급히 다가가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목을 받치고 품에 안으니 금세 얌전해졌다. 하지만 침대에 내려놓자, “히엑히엑” 소리를 내더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17년째 이곳에서 일한 김정숙 보육사는 진땀을 흘리는 기자를 보고 “적어도 20분간은 안아줘야 한다”며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니까 한번 품에 안기면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고 충고했다. 새별이의 울음소리에 서너 아기가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4명의 아기를 달래고 몇명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자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43명의 아기를 돌보는 보육사는 4명뿐. 19명의 보육사는 4명씩 3교대로 조를 이뤄 24시간 내내 아기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나마 적게는 3명, 많게는 5~6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있어 큰 보탬이 된다고 한다.

◇2년째 새 부모 못 만난 대기아동 늘어나는 일시보호소의 풍경

동방사회복지회 영아일시보호소의 전경.
동방사회복지회 영아일시보호소의 전경.

분유를 먹이고 있는데, ‘꺅~’ 하는 소리와 함께 장난감 기차를 미는 현석(가명·16개월)군이 들어왔다. 일시보호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석군은 “맘마, 맘마” 소리와 함께 씩씩하게 걸어다녔다. 기자를 보더니 씩 미소를 지었다. 현석군이 머무는 곳은 ‘믿음방’이다. 이곳은 다른 방들과 달리 허리춤 높이의 유아용 안전문이 입구에 설치돼있고 바닥에는 폭신폭신한 고무 매트가 깔려 있었다.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 유아용 동화책을 갖고 노는 10명의 아이를 보자, 순간 이곳이 ‘영아일시보호소’인지 헷갈렸다. 한 자원봉사자 또한 “일시보호소에 신생아만 있을 줄 알았는데, 두 발로 걷고 심지어 말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6개월 넘게 일시보호소에 있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장난감이나 교재, 유아복을 구비하고 있어요. 아기들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부모를 일찍 만나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김혜경 동방영아일시보호소 소장의 말이다. 일시보호소에 믿음방이 생긴 건 작년부터다. 원래는 6개월 이상만 되면 위탁가정으로 아기를 보낼 수 있었는데, 입양도 줄고 위탁가정도 줄면서 아기들을 받아줄 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입양대기아동은 출생 후 5개월간 국내입양을 진행한 뒤 입양이 되지 않을 경우 해외입양을 병행할 수 있다. 2013 보건복지 통계연보에 올라온 국내외 입양아동 수는 2011년 2464명에서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2012년에는 1880명으로 급감했다. 입양이 늦어지자, 위탁가정에서 입양대기아동을 키우는 기간도 길어졌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주요 3개 입양기관의 2012년 입양아동 대기 기간은 평균 20개월로 밝혀졌다.

이런 와중에 입양대기아동을 돌보는 또 하나의 축인 위탁가정 수도 점점 줄고 있다. 김혜경 소장은 “입양대기아동을 떠나보내는 상실감이 너무 커 위탁을 그만두시는 분, 큰 아이들을 장기간 돌보다 몸이 상해 활동을 중단한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위탁 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도 크다. 작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공개한 자녀 1인당 월평균 양육비는 118만9000원이지만, 홀트아동복지회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회계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양육 지원금은 월 55만2820원으로 양육비의 절반에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2006년 350여명에 달하던 활동 위탁모 수는 지금은 220여명으로 감소한 상태다. 김태경 과장은 “신규 위탁가정을 발굴하기 위해 단체에서도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선경 총무는 “작년 겨울에 이곳 일시보호소에서 1년을 맞이한 7명의 아동을 위해 처음으로 합동 돌잔치를 열었다”면서 “입양 과정이 장기화될수록 아이들이 부모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바른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걱정이 많다”고 했다.

◇입양대기아동 돌봐주는 위탁가정 점차 줄어들어

“어느새 17년이 됐네요. 토·일요일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경조사나 설·추석 명절에도 참석 못 하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그래도 가여운 아이가 많아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한 아이는 조금만 힘을 주면 똥이 샐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아요. 똥을 싸면 다리를 쭉 펴서 아픔을 표현하는데, 그런 걸 보면 안쓰럽죠. 그래도 잘 키워서 국내입양을 하면 정말 좋아요. 입양아동을 내 아이처럼 대해주는 부모들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뻐요.”

김정숙 보육사의 말이다. 9시간의 일일보육사를 마치고 오후 6시쯤 일시보호소를 떠나기 전, 침대에 누워있던 하율(가명·3개월)군을 찾아갔다. 끙끙대던 아이는 순간 기자의 손가락을 살포시 움켜쥐었다. 문득 ‘이 아이들을 위해 손을 뻗어주는 누군가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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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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