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학대받는 아동 놓고 중앙정부·지자체 책임 떠밀어

아동정책조정위원회, 6년 만에야… 돈줄 쥔 기재부 요지부동
보건복지부 종합 대책 발표했지만 예산 알맹이 빠져 있어
신고 의무자 교육·가해 부모 상담 민간 위탁 기관 부담만 가중
예산 지자체마다 들쑥날쑥 지방 이양 후 학대 아동 141명 사망

지난 2월 28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제5차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회의였다. 2007년 제4차 위원회 이후 6년 만이었다. 이날 위원회에는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 이복실 여성가족부 차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등 아동 관련 단체의 장관 및 아동 분야 민간 전문위원 10명이 참석했다.

굿네이버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굿네이버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보자”는 자리였다. ‘예산’ 문제가 제기되자 자리는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민간위원 측에서 “(아동예산이) 지방으로 이양된 이후 지난 10년간 아동 141명이 학대로 숨졌다”며 “아동학대 사안의 경우 중앙으로 국고 환수해서 아동보호전문기관 개수도 늘리고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기관당 3억원씩 최소 100곳 정도로 300억원의 국비를 아동학대 분야로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현오석 기재부 장관은 “지방으로 이양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며 “아동이 학대로 사망한 수가 지방으로 이양해서 더 많은지 아닌지는 데이터를 갖고 와서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박하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2015년 ‘노인’과 ‘장애인’ 예산은 국고 사업으로 환수되는 데 반해 아동예산이 지자체 사업으로 남은 데 대한 이유를 묻자 현 장관은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는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 국고 환수가 맞지만, 지역의 ‘학대받는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전문기관을 왜 그 지역이 아닌 국가에서 맡아서 해야 하느냐”고 하고선 일정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 장관이 자리를 뜨니 ‘예산’과 관련한 더 이상의 토론이 어려워졌다. 1시간 반가량 회의가 끝난 후 복지부 관계자는 “아동학대를 국고 환수하려고 해도 기재부와 전혀 말이 안 통한다”며 “실무진 차원에서 논의할 때 기재부가 요지부동이란 말은 들었는데 장관까지 나서 확고한 입장을 밝히니 쉽지 않겠다”며 볼멘소리를 했다는 후문이다.

국내 아동보호전문기관 47곳 실태 전수조사
국내 아동보호전문기관 47곳 실태 전수조사

◇당장 ‘법대로’ 할 여력 없어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열린 2월 28일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예방 종합대책’을 확정했다며 곧바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경찰관이 즉시 개입해 수사하고,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 퇴거·접근 금지 조치를 실시하며 친권행사도 일시적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에 대한 교육도 강화한다고 했다. 하지만 ‘더나은미래’가 전국 47곳 아동보호전문기관(지자체 운영 3곳 제외)을 전수조사한 결과 현장 반응은 싸늘했다.

“법 만들면 집행은 결국에 사람이 하는 거 아닙니까? 신고 의무자들의 신고 의무를 강화해서 과태료 500만원까지 부과한다는데 그러려면 신고 의무자 대상으로 수차례 사전 교육도 해야 한다고 하죠. 검사가 학대 아동 부모에게 ‘상담’을 명령할 경우에는 전문가를 새로 고용하든 다른 기관에 맡기든 상담도 해야 하죠. 이건 다 누가 합니까. 추가 지원이 없으면 결국 기관만 부담이 가중되는 거죠. 안 그래도 상담원 한 명당 1년에 신고받는 건수가 수십 건인데, 그럼 이제 (학대 아동) 사례 관리는 언제 합니까.”(A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당장 특례법 시행되고 나면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사법경찰이랑 5분 내 같이 출동하라는데 경찰이야 전국에 촘촘한 망이 있지만 지금 기관 수에 이 인력으로는 말이 안 돼요. 신고 현장 가는데만 2시간 이상씩 걸리는 곳도 태반인데요. 법이 잘 만들어졌어도 당장 ‘법대로’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데, 기관들 법적 책임만 물리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됩니다.”(B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정부 지원 부족하고, 신고 의무자 의무만 강화

민간에서 위탁 운영 중인 47곳의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의 분노가 큰 데는 이유가 있다. 지자체에 따라 많게는 운영예산의 50% 이상을 민간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부담해왔기 때문이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우리는 복지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국가가 맡아야 할 아동 대상 범죄를 막고 아동의 인권을 지켜내는 준사법적 성격이 강한 기관”이라며 “학대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피해 아동을 위한 심리치료도 병행해야 하고, 상담원 교육도 해야 하는 등 매우 전문성을 요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2005년 사회복지사업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서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자체에서 운영된다. 중앙정부 사업은 70~80%를 국고에서 지원하지만, 지방 이양 사업은 예산의 70% 이상을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 지자체의 예산이나 의지에 따라 기관 수나 관할 범위, 업무량 등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 예산에 달렸다 보니 매년 한 푼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쓸개며 간이며 다 빼놓는 일도 빈번합니다. 시도 공무원 만나서 운전도 해준다는 관장님들도 있어요. 2005년 지방으로 이양된 이후로 예산이 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인데, 어느 지자체가 선뜻 나서서 새롭게 기관 설립해서 매년 몇억원씩 들이붓겠어요. 국고 보조로 환수되지 않는 한 기관 증설이나 인력 확충은 거의 불가능해요.”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의 말이다. 중앙정부에서 담당했던 2005년까지만 해도 6년 만에 전국에 39개 기관이 설립됐지만, 지방 이양 이후엔 10여년 동안 10개 남짓 늘었다. 이 때문에 아동 인구 32만4000명인 전라남도에서는 3곳에서 상담원 20명이 근무하지만, 비슷한 아동 인구(32만2000명)를 보유한 광주광역시는 2000년에 문을 연 아동보호전문기관 한 곳에서 7명의 상담원이 일한다. 천안에 있는 충남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경우 8명의 상담원이 세종시·천안시·공주시·아산시·서산시 등 10개의 시군을 포괄하다 보니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데만도 최대 4시간까지 걸린다.

민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이럴 바에는 아예 정부 위탁사업을 포기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주선영 기자

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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