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왜 화장실 삼남매는 살고 송파 세 모녀는 떠나야 했을까

송파 세 모녀 자살로 돌아본 2011년 화장실 삼남매 사건과 반짝 복지
아버지에 의해 방임된 채 공원서 노숙했던 삼남매 방송 촬영이 물꼬 터주자 곳곳에서 도움…
사건 이후 일제조사 통해 지원 4005건 이뤄졌지만 절반 이상 반짝 관심 그쳐 복지…
결국 생활고에 세상 등진 송파 세 모녀 비극 벌어져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으로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자, ‘시계추를 2년 전으로 되돌린 것 같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화장실 삼남매 사건’ 때도 똑같은 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 실시했다는 것이다. 2011년 4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공원 화장실에서 노숙하는 아빠와 삼남매가 소개됐다. 새벽 3시에 공원에서 라이터를 가지고 놀거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모습,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장면들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이들은 모두 주민등록이 말소됐고, 막내는 출생신고조차 안 된 상태였다. 방송 후 반향은 컸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실태 파악을 주문했고, 복지부가 한 달여 동안 특별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더나은미래’는 화장실 삼남매 사건 전후를 취재해, 송파 세 모녀 사건의 실패를 부검해보는 계기를 마련키로 했다. 편집자 주


전문가들은“사회적인 이슈가 돼야 반응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DB·뉴시스
전문가들은“사회적인 이슈가 돼야 반응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DB·뉴시스

“학교에 보내지 않는 애들이 있다며 신고가 들어왔었어요.”

화장실 삼남매가 사회 안전망에 처음 걸린 건 방송 1년 전쯤이었다. 신고가 접수된 곳은 서울 성북구 동선동의 ‘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최윤용 대외협력팀 대리는 당시 기록을 토대로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이 고모 집에 살고 있었는데, 학교를 안 가니까 주변에서 방임으로 신고한 거예요(중학교까지는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도 교육적 방임에 해당된다). 확인해보니, 당시 38세이던 아버지는 6년 전 사업이 망해서 은둔 중이었고, 9세(남), 10세(남), 13세(여) 삼남매를 고모가 거두고 있었어요. 모두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고, 막내는 출생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더라고요.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삼남매의 방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었다

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은 ‘명백한 방임’이라고 판단하고 개입에 나섰다. 삼남매의 주민등록을 살리고 학교에도 보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재활도 필요했고, 이 가정을 기초생활수급권 대상자로 지정해 정부의 지원을 받게 할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와 고모는 기관의 개입을 거부했다고 한다. 최 대리는 “아빠가 피해망상 증세가 있었는데, 기관이 개입하면 무조건 애들을 뺏긴다고 생각했는지 만나주지 않았다”며 “문도 열어주지 않고 피하기만 했던 나날이 한 달간 계속됐다”고 했다. 홍창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대외협력팀 팀장은 “아동보호기관으로 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국가 예산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지원해줄 수 있는 체계가 있지만, 그렇게 피하기만 하는 상황에선 우리가 강제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자, 기관에서는 불시에 방문해 아동들이 위험한 경우라면 아버지와 격리시켜야겠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최 대리는 “초강수이기는 한데, 아주 위급하다고 생각되면 구청장 등의 허가를 받아 강제 분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집을 찾았을 땐 이미 늦었다. 아버지가 삼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것. 이후 연락은 두절됐다. 가출·실종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주민등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방송 전파를 타지 않았더라면…

사라졌던 가족은 10개월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송 카메라를 통해서였다. 한 달여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방송 촬영이 이뤄지자, 마음을 바꾸고 대화에 임했다. 시급했던 주민등록과 출생신고 문제가 해결되니,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이들은 서울시의 ‘일시보호소’를 거쳐, 장기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초등학교에도 재입학했다. 아버지는 지역 쉼터에 거주하며, 노숙인다시서기센터를 통해 직업 재활도 할 수 있게 됐다. 6월엔 조건부 기초생활수급권(일을 하면서 수급비를 받는 것)이 승인됐다. 8월에는 사랑과행복나눔재단(현 영산조용기자선재단)으로부터 보증금을 지원받아 온 가족이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삼남매는 전학 후 인근 지역아동센터에 등록해 방과 후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이후 성북아동보호기관의 사례관리는 종결됐고 3~6개월 단위로 모니터링만 이뤄지고 있다). 그해 12월에는 ‘망상증세’가 있었던 아버지에게 심리치료가 지원됐고, 2012년 초에는 이지웰가족복지재단으로부터 생계비와 의료보험 미납금을 지원받았다.

아이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부터 6년간이나 이어졌던 노숙과 방임이 10개월 안에 모두 해결된 것이다. 홍창표 팀장은 “방송이 물꼬를 터주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모든 기관들이 협력해 도왔다”며 “사실 이렇게 잘 풀린 사례는 드물다”고 했다. 누군가 방송국에 이들을 제보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들은 “혼자서는 절대 감당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홍 팀장은 “한 가정을 일으키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한 기관에서 돌봐야 하는 사례가 1년에 1인당 40~50건이다보니 제대로 집중하기 어렵다”며 “특히 아동복지 예산을 지자체에서 담당하다보니 어떤 지역은 예산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어느 지역에서 사느냐에 따라 복지 혜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삼남매’와 ‘세 모녀’…관심의 차이로 갈린 결과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이 ‘시스템’이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책이나 시범사업이 내려오는데, 대부분 이미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했다. 김지영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장은 “사회복지는 시스템이 아닌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이뤄지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심이 너무 행사성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지난 7일,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상시적인 발굴·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사회복지 인력의 권한을 확대해달라는 내용의 대정부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지속적인 관심’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어서다.

화장실 삼남매 사건이 발생한 후 복지부의 일제조사를 통해 발굴돼 지원받은 건수는 총 4005건이었는데, 이 중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한 지원은 1186건이었다. 긴급복지, 지자체 지원, 민간 후원 등의 지원 또한 ‘반짝’에 그쳤다. 그리고 2년 후, 송파에선 또다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자살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