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100조 복지시대의 한계 넘자”… 공익단체 자립 돕는 든든한 투자

서울시, 1000억원 조성해
공익단체 3곳에 융자 지원

에너지 나눔과 평화
고흥 발전소 운영수익 25%
송파구 에너지 빈곤층에 지원

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 조합
대출 어려운 창업자에게
담보없이 자금 지원

복지 100조 시대다. 올해 우리나라 복지분야 지출 규모는 97조4000억원. 2010년(81조2000억원)에 비해 20%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발표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빈곤율은 49.6%에 달하고, 소득이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부채는 올해 1246만원으로 1년 사이에 24.6% 늘었다. 이에 따라 복지정책의 한계를 뛰어넘을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투자(임팩트 투자)’가 떠오르고 있다. 사회투자기금은 투·융자를 통해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울시는 사회투자기금 1000억원을 조성했다. 이 기금을 위탁운영하는 한국사회투자는 사회적기업·협동조합·NGO프로젝트 등을 지원하는 중간기관에 자금을 융자하기 위해 공모사업을 벌였다. 1년 거치 2년 분할 상환이며, 이자는 내지 않아도 되는 융자 조건이다. 단,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으로부터 융자받은 금액과 같은 규모의 금액을 매칭그랜트로 마련해야 했다. 한국사회투자는 심사를 거쳐, 중간지원기관 협력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공익단체 3곳을 최종 선정해 총 60억원의 자금 융자를 결정했다. 선정된 단체는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와 ‘에너지나눔과평화’, ‘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 조합’이다. 하반기에도 ‘행복중심생활협동조합’이 3억원의 자금을 융자받아 매장을 확장하는 등 중간지원기관 협력사업은 ‘현재진행중’이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이 운용된 지 1년, 어떤 성과가 있을까.

1 에너지나눔과평화가 몽골 아르갈란트 지역에 풍력·태양광병합형 발전기를 지원한 현장. 2 행복중심생협은 22개 매장에서 친환경 가공식품을 3만명의 조합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3 신나는조합 창립 10주년 기념 그라민트러스트 교육연수 현장. /행복중심생활협동조합·신나는조합·에너지나눔과평화 제공
1 에너지나눔과평화가 몽골 아르갈란트 지역에 풍력·태양광병합형 발전기를 지원한 현장. 2 행복중심생협은 22개 매장에서 친환경 가공식품을 3만명의 조합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3 신나는조합 창립 10주년 기념 그라민트러스트 교육연수 현장. /행복중심생활협동조합·신나는조합·에너지나눔과평화 제공

◇사회투자기금으로 환경 문제 해결하고, 복지 사업도 확대한다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어 탄소배출도 줄이고, 수익금으로 에너지 빈곤층을 돕는다.”
에너지나눔과평화가 태양광 발전소의 이름을 ‘나눔발전소’로 지은 이유다. 2009년 에너지나눔과평화는 전남 고흥에 200㎾ 규모의 국내 최초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서울시 송파구가 3억원을 기부했고 15년 동안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수익의 25%는 송파구 관내 에너지 빈곤층에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2010년에는 경북 의성에 1000㎾ 규모의 1기 발전소를 추가로 설립했고, 지난해에는 송파구 관내에 나눔발전소 2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4기를 운영해 창출된 수익금 2억7000여만원은 송파구 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1400가구의 에너지 비용 지원에 사용됐다. 지난 9월에는 나눔발전소 2호의 운영수익 1500만원과 에너지나눔과평화의 운영기금 2300만원을 모아 몽골 아르갈란트 지역에 풍력·태양광병합형 발전기 2기를 지원하기도 했다. 안소영 송파구청 맑은환경과 팀장은 나눔발전소를 “환경도 살리고 에너지 복지 기금도 창출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공익사업”으로 평가했다. 지난달 11일, 송파구는 친환경 프로젝트의 성과를 인정받아 국제적인 환경상인 ‘인터내셔널 그린애플어워즈(IGAA)’에서 은상을 받았다.

한편, 나눔발전소 사업을 확대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발전소를 설립하는 시드머니(seed money)를 조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발전량에 따라 작게는 3억원(100㎾ 규모)에서 크게는 60억원(약 2700㎾ 규모)까지 투자비가 필요한 상황. 박성문 에너지나눔과평화 정책국장은 “각각의 나눔발전소는 특수목적법인(SPC) 주식회사로 설립해 운영을 맡았고, 지분의 100%를 비영리단체인 에너지나눔과평화가 보유하면서 공익적 목적으로 재투자하는 구조”라면서 “은행에서는 공익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대출 및 금융거래에 대한 제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사회투자기금을 통해 25억원의 자금을 융자를 받으면서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서울암사정수센터 등 4곳에 나눔발전소를 설립했다. 서울시 광진구, 구로구, 강동구 등에 9개의 발전소도 건설 중이다. 2009년부터 거의 매년 1기의 발전소가 지어진 것에 비하면 큰 성과다. 박성문 국장은 “공익적 목적에 맞는 금융기금이 올해 사업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중간지원조직 자금 지원… 사업 영역 확대에도 도움 줘

지난해 말, 20대 청년사업가 김지원(29)씨는 서울시 송파구에 커피전문점을 창업했다. 이전에도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담보가 없는 이상 대출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을 뿐이었다.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은 ‘신나는조합’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다. 김씨는 “사업계획서 작성, 실사, 면접 등의 까다로운 심사과정이 사업을 완성도 있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사후관리를 받으면서 전문위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사업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바리스타 교육 및 창업교육을 운영하고, 앤티크한 소품을 활용하면서 기존 카페와 차별성을 줬다. 지난 1년 동안 매출도 1.5배가량 늘었다.

신나는조합은 1999년부터 자활·자립의 의지가 있는 취약계층에게 무담보 소액대출 사업(마이크로크레디트)을 시작했다. 누적대출은 약 129억원으로 590여개의 대출업체를 발굴·지원하고 있다. 이성수 신나는조합 이사는 “세 번의 사업실패를 경험한 후 자살까지 생각했던 한 분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조합에 찾아왔는데 은평구에 국숫집을 창업하고 경영컨설팅을 받으면서 8호점까지 사업을 확장한 사례가 있다”면서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금융인데,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처럼 서민들을 위한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신나는조합은 특히 사회적기업·협동조합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사회적기업 4곳과 협동조합 3곳에 10억원의 자금을 연 2% 금리로 36개월간 균등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한 것이다. 이 중 PC·모니터 생산 및 설치업체인 ‘레드스톤시스템’은 전체 직원 18명 중 절반이 장애인(7명)과 탈북자(2명)인 사회적기업이다. 공간 부족으로 경기도 파주로 이전해야 해서 장애 직원들의 출퇴근이 고민이었지만, 여유자금이 생기면서 옆 사무실을 개조해 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노영한 신나는조합 마이크로파이낸스 팀장은 “일반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정상적으로 상환되면 끝이지만 사회적금융은 ‘돈’ 이전에 ‘사람’을 배려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김홍길 한국사회투자 사업관리팀장은 “간헐적으로 설립했던 나눔발전소가 서울 곳곳에 만들어지고,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위주였던 신나는조합은 사회적경제, 사회적금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공익활동의 영역이 넓어졌다”면서 “민간과 공공이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기금을 모으면서 생산적 복지 시대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평가했다.

김경하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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