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음악으로 치매 노인과 그 가족들 웃음 되찾아 주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저소득 치매노인 지원사업
국내 치매 인구 56만여명 지난 5년간 34%나 증가… 아직 복지 사각지대 놓여
즐겁게 음악교육 받으면 다른 활동 소화 능력 좋아져
활기찬 일상생활 도와 가족들도 안심하고 맡겨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신곡실버문화센터 ‘쑥부쟁이’ 방에 둥글게 둘러앉은 백발노인들이 목청을 높인다. ‘한삼(윗옷 소매 끝에 흰 헝겊으로 길게 덧대는 소매)’을 이리저리 펄럭이는 할머니, 소고를 신명 나게 두들기는 할아버지의 조화는 투박하지만 흥겹다. 이남영(가명·68) 할머니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자, 김자분(가명·87) 할머니는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박하나 음악치료사(㈔국제음악치료사협회)가 “얼씨구절씨구 차차차!”라는 노랫말에 맞춰 노인 두 명을 지목하자, 정확한 박자로 “차차차!”를 외친다. 여느 경로당의 여흥 같지만, 여기 모인 노인들은 모두 경증 치매 환자다. 매주 한 번씩 진행되는 음악치료 수업은 즐겁고 역동적이다. 박하나 음악치료사는 “치매 어르신들이 음악을 통해 인지능력을 높이고, 관계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라며 “현재 5회째 진행하고 있는데, 처음에 경직되고 소통도 힘들었던 것에 비해 표정이나 감정 표현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했다. 배승룡 신곡실버문화센터 관장은 “즐겁게 교육을 받고 나면, 다른 활동을 소화하는 능력도 높아지고, 가정에서도 편안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신곡실버문화센터에 모인 경증 치매 노인들이 간단한 악기를 두드리며 음악치료 수업을 받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신곡실버문화센터에 모인 경증 치매 노인들이 간단한 악기를 두드리며 음악치료 수업을 받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의정부 지역의 노인종합복지관인 신곡실버문화센터에 경증 치매 노인을 위한 주간보호센터 ‘쑥부쟁이’가 생긴 건 작년 6월.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의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등급 외 치매 노인 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등급 외 판정을 받은 지역의 치매 노인 10명을 돌보고 있다. 배승룡 관장은 “치매 어르신들은 가정에서 부양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지역사회가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1~3등급 치매 노인은 건강보험공단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등급 외 치매 노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예산은 없었다. 배 관장은 “쑥부쟁이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3등급 경계선 바로 아래에 있는 분들이지만 가족들의 부양 부담은 중증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정효경 의정부시청 노인복지과 계장은 “지역사회 내에서 등급 외 치매 노인 서비스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지만 한정된 재원 탓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린 부분이 있다”며 “지역의 복지기관이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의 공공사업으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간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의 치매 노인 인구는 56만여명으로, 지난 5년간 34.2%나 증가했다. 노인 총인구의 9%에 달하는 수치다. 정부가 ‘제2차 국가치매관리 종합계획'(2013~2015)을 수립,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치매 노인의 복지 사각은 여전히 크다. 등급 외 노인 환자들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집계한 치매 인정 환자 36만7453명 가운데, 등급 외 판정을 받은 치매 노인은 42%(15만4084명)에 이른다.(2013년 8월 31일 기준) 이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지난해부터 등급 외 치매 노인 지원사업을 진행, 전국 복지시설 및 치매지원센터 12곳에 주간보호시설을 꾸릴 수 있는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배승룡 관장은 “경증 치매 환자들이 방치돼 악화되면 결국 국민세금으로 이들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치매로 인한 연간 총 진료비는 지난 5년간 5배 넘게 증가했다.

부양 부담에 허덕이던 가정의 회복 효과도 크다. 치매 노인의 한 부양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30년을 살던 동네 입구를 헤매고, TV 켜는 법을 잊어 보채기 일쑤였다”며 “가족들이 늘 지치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신곡실버문화센터 쑥부쟁이에 아버님을 맡기고 있는 이윤옥(가명·54)씨는 “치매에 걸린 아버님 때문에 가족 모두 답답한 상황을 헤어나올 길이 없었는데, 쑥부쟁이에 다니고 나서는 미리 나가서 복지관 차량을 기다릴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되찾으셨다”며 “덩달아 우리 가족의 건강도 회복됐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열린 등급 외 치매 노인 ‘기억키움학교’ 개소식은 재단의 사업이 서울시로 확산되는 것을 알리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재단의 활동을 지켜본 서울시에서 사업 취지에 동감, 서울시 25개구에 설치된 치매지원센터에 이를 적용시키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송자 서울시치매센터 국장은 “현재까지 정부나 서울시는 치매 환자의 선별검사 위주로 사업을 진행해왔지만 등급 외 치매 환자를 위한 서비스 요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며 “올해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재단사업 모델을 성동구와 서대문구 치매지원센터에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서울시 타 지역으로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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