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업무 시간에 색소폰 불고, 쉬는 날은 그룹홈 봉사… 회사, 변했네

예술, 기업 문화를 바꾸다
악기·미술강좌 마련한 넥슨 – 직원 30%, 예술 교육 참여… 부서 간 벽 없애 협력 효과
아이들과 문화 체험하는 태광 – 미술 작품 만드는 시간 갖고 후기 공유로 정기후원 이어
1인1악기로 음악회 여는 제닉 – 매주 연습해 복지관서 공연… 직원 적응·소비자 신뢰 상승

지난 9월 2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15평 남짓한 ‘사운드고’ 녹음실 현장. ‘더놀자 밴드’ 단원들은 제10회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연주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트럼펫, 색소폰, 트롬본 등이 어우러져 풍성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정식 뮤지션이 아니다. 넥슨 컴퍼니(NEXON COMPANY·이하 넥슨) 직원 15명으로 구성된 빅밴드다. 2011년 밴드가 결성될 당시, 생전 처음 관악기를 다뤄본 이들이었다.

“회사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어요.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색소폰, 카메라, 캔버스를 들고 다녀요. 상사 분들 책상 위에도 스케치북, 색연필이 놓여 있고요. 점심때나 퇴근 직후 지하 회의실에 가면 여기저기서 악기 연주 소리가 나고, 직원들이 모여앉아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회사가 아니라 대학 동아리실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예요.”

‘더놀자 밴드’ 단장을 맡고 있는 이홍우 넥슨 커뮤니케이션센터 법무실 실장의 말이다. 그는 “내년 초 완공될 넥슨 신사옥에는 밴드 연습실, 미술 공동 작업실 등 포럼 공간이 따로 마련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9월 26일, 제 10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무대 공연을 준비중인 ‘더놀자 밴드’의 모습. /정유진 기자
지난 9월 26일, 제 10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무대 공연을 준비중인 ‘더놀자 밴드’의 모습. /정유진 기자

◇임직원 문화예술 교육… 소통 늘고 조직 분위기 달라져

넥슨은 2011년부터 한국예술종합대학 산학협력단(아르꼼)을 통해 임직원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넥슨 포럼’을 시작했다. 소묘·스케치·아크릴·재즈 밴드·디제잉(DJing) 등 미술, 음악, 인문학, 체육 전반에 걸친 강좌를 개설했다. 예술강사 섭외, 악기 구매, 작업 비용 모두 넥슨이 부담한다. 직원들은 자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직접 만들었고, 10명으로 구성된 ‘넥슨 원정대’는 사전 교육·훈련을 통해 지난해 11월 히말라야를 트레킹하고 돌아왔다. 매주 2회 중장거리 자전거 라이딩 훈련을 거친 직원들은 국토 종단을 하고, 참가 비용을 적립·기부하기도 했다. ‘넥슨 포럼’은 업무 시간 중에도 진행된다. 이슬기 넥슨 기업PR팀 대리는 “실장, 팀장님들이 포럼에 적극 참여하다 보니 직원들이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업무시간으로 인정돼 부담도 없다”면서 “히말라야 트레킹이나 국토종단 라이딩도 별도의 휴가 없이 다녀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서별 소통도 늘어났다. 김혜리 넥슨 인사총무실 복지지원팀 사원은 “개발팀·추진팀·지원팀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직원들 부서가 다양하다 보니, 밴드 연습을 함께하면서 타 부서 업무나 애로사항을 이해하게 됐다”면서 “업무 협조 요청도 수월해졌고, 협력 프로젝트 결과도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승우 개발3본부 마영전라이브1팀장은 “지난겨울 ‘마비노기 영웅전’ 게임을 업데이트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었다”며 뿌듯함을 전했다. 현재 넥슨 직원 1500명 중 총 400여명이 넥슨 포럼에 참여했다. 권도영 넥슨 인재개발팀 팀장은 “문화예술 프로그램 규모를 앞으로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장품 제조업체 ㈜제닉은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권장하는 ‘1인 1운동’ 캠페인을 시작했다. /㈜제닉 제공
화장품 제조업체 ㈜제닉은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권장하는 ‘1인 1운동’ 캠페인을 시작했다. /㈜제닉 제공

◇임직원 문화예술 교육에 사회공헌을 접목하다

문화예술이 기업을 변화시킨 사례는 또 있다. 태광그룹은 한 달에 한 번, 특별한 만남을 준비한다. 그룹홈 아이들과 태광그룹 임직원들이 함께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9월 29일 토요일 오전,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주변은 카메라를 든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 파란 하늘, 서울역사박물관 옆 경희궁의 모습 등을 꼼꼼히 촬영했다. “이제 우리가 찍은 사진으로 퍼즐 맞추기를 해볼까?” 검은색 도화지 위에 사진들을 겹쳐 붙이자, 포토 콜라주 작품이 완성됐다. 임병욱 태광산업 신소재사업단 마케팅실 차장은 “매달 아이들과 함께 미술 작품을 완성해가면서 가로막혔던 장벽이 허물어진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 인형, 클레이 가면 등 다양한 미품이 만들어졌다.

지난 9월 28일,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서 태광그룹의 예술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9명의 그룹홈 아동들과 태광그룹 24명 임직원이 함께 했다. /정유진 기자
지난 9월 28일,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서 태광그룹의 예술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9명의 그룹홈 아동들과 태광그룹 24명 임직원이 함께 했다. /정유진 기자

태광그룹은 지난해 그룹홈 15곳을 선정, 팀별로 그룹홈을 매칭해 봉사를 시작했다. 각 부서의 봉사 리더가 그룹홈 시설장에게 직접 연락해 팀원들과 함께 자유롭게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사회공헌팀은 매달 봉사를 신청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룹홈 소식과 주의사항을 나눈다. ‘봉사 조끼 착용 안 하기’ ‘홍보용 현수막 제작 안 하기’ ‘아동 얼굴 사진을 외부에 노출 안 하기’ ‘단체 기념사진 안 찍기’ 등 그룹홈 아동 인권을 위한 사회공헌 원칙들을 공유한다. 직원들은 올해부터 사회적 기업 ‘삼분의이’와 함께 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성지현 태광그룹 사회공헌 담당자는 “직원들이 그룹웨어에 봉사 후기를 공유하면서, 본사 직원의 70%가 그룹홈을 정기후원하는 등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천영아 태광그룹 화섬방 영업팀 사원은 “형·누나처럼 평소에도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편하게 지낸다”면서 “매달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아 오히려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예술경영으로 기업 인지도 높이고, 우수 인력 몰려

화장품 제조업체 ㈜제닉은 2010년부터 문화경영을 선포하고 ‘1인 1악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제닉 서울사무소 직원 60여명은 클래식 기타·플루트·통기타 등 악기 하나를 선택해 배우고 있다. 매주 2시간씩 모여 연습하고, 복지기관을 찾아가 재능기부 음악회를 열고 있다. 레슨비와 악기 구입 비용의 50%를 회사가 지원한다. 박재희 제닉 홍보팀 과장은 “연습 시간, 봉사 기관 등 모든 프로그램을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한다”면서 “신입 직원들이 회사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제닉의 전 직원은 매주 2시간씩 악기를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제닉 제공
㈜제닉의 전 직원은 매주 2시간씩 악기를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제닉 제공

제닉은 금연·금주를 실천하는 회사다. 담배·술 대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권장하는 ‘1인 1운동’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 5월엔 직원들이 4대강 국토 종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유현오 제닉 대표는 “중소기업은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것과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문화 경영을 통해 직원의 만족도가 올라가니 기업 인지도도 함께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양효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 문화나눔본부장은 “최근 문화예술을 통한 기업의 긍정적인 변화가 늘고 있다”면서 “문화예술과 사회공헌의 결합은 향후 기업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시스템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재중 아르코 예술나눔부장은 “기업과 문화예술단체를 연결해, 문화예술을 통한 다양한 나눔·봉사 프로그램 기획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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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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