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에마 왓슨이 퍼트린 윤리적 패션 ‘신드롬’ 우린 왜 안되는 걸까

몰라서 못하는 한국의 윤리적 소비
배우 에마 왓슨 비롯해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해외유명 디자이너들…
한국은 소비자 70%가 공정무역 모른다고 답해 비싸고 품질 못 믿겠다는…
제품 디자인·질 높이고 유통 구조도 확대시켜 윤리적 소비 쉽게 하는 생태계부터 만들어야

지난 2010년 친환경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인 ‘피플트리(People Tree)’의 봄·여름(SS)콜렉션이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영화 ‘해리포터’의 여주인공 역으로 유명한 에마 왓슨이 ‘피플트리’의 모델로 등장했기 때문. 에마 왓슨이 착용한 100% 유기농 면으로 제작된 옷, 바나나 섬유로 만든 모자, 사탕 포장지로 제작한 목걸이 등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에마 왓슨은 피플트리 디자인 전 과정에 고문 역할을 했고, 모델료도 받지 않았다. 그해 여름엔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피플트리 생산자들과 함께 옷을 제작해보기도 했다. 이는 영국 젊은 층 사이에서 윤리적 패션이 대중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챈루(Chan Luu)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도 윤리적 패션 캠페인에 뛰어들었다.

2010년 영화배우 에마 왓슨(가운데)이 모델 겸 디자인 고문으로 참여한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피플트리(People Tree) 봄·여름 컬렉션 화보 사진. /피플트리 제공
2010년 영화배우 에마 왓슨(가운데)이 모델 겸 디자인 고문으로 참여한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피플트리(People Tree) 봄·여름 컬렉션 화보 사진. /피플트리 제공

◇구매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 사는 한국 소비자

국내에도 ‘피플트리’처럼 제품을 윤리적으로 생산·판매하는 곳이 있다.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g:ru)’는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손수 만든 의류와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그루 생산자들은 친환경 재배 농법을 쓰기 때문에 암을 유발하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름다운가게 ‘에코파티메아리’는 찢어진 가죽 점퍼 등 버려진 재료를 재활용해 지갑, 가방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움직임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윤리적 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011)에 따르면 ‘공정무역(Fair Trade)을 모른다’고 답한 소비자가 약 70%에 달했다. 반면 영국 소비자들은 절반 이상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한다’고 했고, ‘공정무역 인증 제품을 신뢰한다’는 소비자도 90%에 달했다. 두 나라의 소비자 인식이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정무역 제품이 소비자의 눈과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없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에도 에마 왓슨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윤리적 패션을 대중화하는 기폭제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선입견도 문제다. 국내 소비자의 약 83%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품질을 믿을 수 없다(30.6%)’ ‘생산·유통 과정이 의심스럽다(31.9%)’ ‘단순한 소비 활동에 너무 부담스러운 의미를 부여한다(39.2%)’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이다(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는 “공정무역 도입 초창기에는 ‘품질이 떨어져도 도와주자’는 호소가 많은 등 가격이 다소 비쌌지만, 이제는 직거래를 통해 불필요한 유통 마진을 줄임으로써 같은 품질의 제품과 비교해봐도 공정무역 상품이 결코 비싸지 않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모바일로 기업의 윤리성 평가하고, 제품 구매하는 외국 소비자들

해외에는 윤리적 소비를 장려하는 다양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이 많다. 영국의 윤리기업협회(Ethical company organization)는 2011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더굿쇼핑가이드(The Good Shopping Guide)’을 제작했다. 세계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환경·인권·동물 복지 등을 기준으로 윤리적 기업 점수와 순위를 매기고, ‘좋은 제품, 나쁜 제품, 추한 제품’ 등으로 분류해놓았다. 호주에서는 주요 매장의 윤리적 지수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 ‘숍 에시컬(SHOP ETHICAL)’이 활용되고 있다.

기업의 윤리성을 감시하는 비영리단체나 기관의 활동도 활발하다. 영국 옥스팜은 2005년 유니레버를 찾아가 제품 생산 공장의 윤리성 평가 및 실사를 제안했다. 유니레버는 “잘못된 점을 찾아 개선하고 싶다”면서 흔쾌히 승낙했고, 옥스팜과 함께 평가 기준을 만들었다. 18개월 동안 옥스팜은 유니레버 공장들을 찾아가고 생산자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유니레버의 근로 환경과 임금 조건 등을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계약직 근로자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유니레버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윤리적 소비’ 가능한 생태계 조성해야

윤리적 소비를 확산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윤리적 소비자라고 해서 무조건 윤리적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단순히 ‘착한’ 상품이란 점에 기대기보다는 일반 제품과 겨뤄도 손색없는 세련된 디자인과 질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를 매료시켜야 한다는 것. 이미영 그루 대표는 “올해 백화점에서 기획 판매를 했는데, 판매가 매우 잘 돼서 입점 제의까지 받았지만 수수료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면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통 구조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리적 생산을 추구, 이를 실천하는 사회적기업 ‘참신나는옷’ 문정열 대표는 “국내 작은 봉제 공장 중에서 우리처럼 4대 보험, 주5일 근무제, 안전한 근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손꼽힌다”면서 “생산자들이 원단을 나르고, 단추를 달고, 다림질을 하는 전 과정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소비자들도 자연스레 윤리적 생산을 하는 기업에 눈을 돌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소비자들에게 윤리적 생산·판매를 하는 가게를 소개하는 지도를 제작한 신혜숙 ‘바이왓유빌리브(www.bwyb.net)’ 대표는 “지도를 만들다 보니 윤리적 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대형마트보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소비자에게 홍보할 수 있는 매체나 루트가 제한적이더라”고 했다. 소비자의 눈과 귀를 여는 ‘생태계’가 마련되면 ‘윤리적 소비’는 자연히 확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유진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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