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집에 가도 기다리는 건 남보다 못한 ‘학대 부모’

아동 재학대 원인과 해결책
문제는 부모 – 학대 행위 인정 않고 폭언·폭력·위협으로 일관… 치료·예방교육도 거부해
학대 부모 해결책은 – 50시간 상담받는 대만, 취업제한 5년 두는 미국
한국은 강제 조항 없어
지역 유관기관 뭉쳐… 교육·지원 역할해야

2008년,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 신고가 들어왔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집안에는 각종 오물과 쓰레기가 가득 쌓여 악취가 진동했다. 이웃 주민들은 ‘쓰레기집’이라며 근처에 가길 꺼렸다. 아이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 온몸에서 냄새가 났다. 엄마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지 않았고, 위생·학습 등에도 무관심했다. 오랜 방임 속에서 박인현(가명·17)군은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고, 박소현(가명·15)양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청소 서비스와 부모의 심리치료를 지원하려 했지만, 엄마는 “집안일에 간섭하지 말라”며 완강히 거부했다.

이듬해 사건이 발생했다. 이혼 후 박양을 키우게 된 엄마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세 사람이 한 방에서 생활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이라며 교육과 상담을 요청했지만, 엄마는 이를 거부했다. 2010년 박양은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 학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엄마가 박양의 심리 상태에 관심이 없고, 전문기관의 치료와 상담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대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아동은 치료를 받고 가정에 돌아가서 다시 학대를 받는다. 학대 가해자가 상담과 치료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대 행위자가 바뀌지 않으면 아동 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학대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아동은 치료를 받고 가정에 돌아가서 다시 학대를 받는다. 학대 가해자가 상담과 치료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대 행위자가 바뀌지 않으면 아동 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가정으로 돌아가 학대받는 아이들

국내에는 박양처럼 아동 학대가 재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전국 4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 학대 신고 건수 중 재학대 신고는 2007년 957건에서 2011년 1325건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전체 1만건 중 13%가 넘는 수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현장조사와 상담을 끝낸 이후에 다시 신고된 아동 학대 사례만 해도 978건에 달한다.

아동 학대를 하는 부모의 치료와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는 대부분 가정(86.6%)에서 부모(83.1%)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20년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한 한 상담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학대예방교육이나 심리치료, 가족기능 강화 서비스 등이 필요한데, 부모들은 참여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면서 “기관의 상담과 치료를 거부하던 부모가 아동을 강제로 데려갈 때마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학대’와 ‘훈육’을 혼동해, 자신의 학대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정미 경기도중앙아동보호관장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를 팬티만 입혀 아파트 앞 복도에서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책을 들고 오랜 시간 서 있게 하는 등의 행위는 ‘훈육’이 아니라 ‘학대'”라며 “부부싸움 중 폭언·폭력에 자녀들이 그대로 노출되거나, 아이들에게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강요하는 행위, 아이를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행위, 아이의 머리를 강제로 자르는 행위 등이 모두 정서 학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학대 부모의 교육·상담·치료 의무화해야

전문가들은 아동 학대 또한 성범죄만큼 재발 방지 교육과 치료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만은 학대 부모가 최소 8시간에서 최대 50시간 미만 부모 교육과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만약 이를 거부하거나 교육·상담 시간을 이수하지 못하면 3000달러에서 1만5000달러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는 아동 학대 행위자가 아동·청소년 교육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5년 동안 금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강제 조항이 없다. 아동 학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서 학대(36.2%)나 방임(31.9%)의 경우, 상담과 치료를 통해 부모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만 이 부분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 학대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정이 회복되어야 한다”면서 “무조건적인 형사처벌보다는 대만처럼 상담 수강 명령, 치료 위탁 등의 보호처분을 시행하고, 의무를 위반할 때 이를 제재하는 강제 조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 기관들, ‘협력’으로 변화 이끌어

지난 2011년 2월,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재학대 신고가 들어왔다. 5명의 자녀 중 3명의 보육료를 100% 지원받는데도, 엄마는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식사는커녕 예방접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는 정신장애 3급으로 일자리가 없었다. 이에 지역 내 아동보호전문기관, 구청 주민생활지원과, 종합사회복지관, 정신건강증진센터, 중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유치원, 어린이집 실무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족 치료를, 구청은 취업성공패키지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교육지원청은 아동 건강검진 및 물품 지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가족치료캠프를 준비했다. 역할 분담 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사례를 공유했다. 엄마와의 소통은 복지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담당해, 기관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 1년 뒤 ‘방임이 학대’라는 것을 깨달은 엄마는 기관의 치료와 상담 교육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부모는 일자리를 구했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가게 됐다. 집단상담과 치료를 통해 가족 관계도 원만해졌다. 해당 기관 상담사는 “아동 학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대 행위자의 변화지만, 이는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아동 보호 관련 기관들이 서로 협력해 장기 플랜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지역 기관들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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