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희귀 난치성 질환 아이들, 철학적 사고 통해 희망 품어요

희망 네트워크의 인문학 교실
전신마비 환자 34명 호흡하기도 힘들지만 밤새 인터넷서 시 찾아 활동 자체에 보람 느껴

“여러분은 어떤 꽃일까요?”

박남희 희망인문학교실 교수가 묻자, 한 학생이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꽃이요”라고 대답한다. 박남희 교수는 “더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지”라며 “남에게 의미를 주는 꽃은 어때요?”라고 독려한다. “정신은 자유로운 꽃”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너무 완벽한 꽃”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학생도 있다. 박남희 교수가 학생들의 말을 받아 설명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꽃이 있어요. 어떤 꽃이 더 예쁜가, 훌륭한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역경을 딛고 꽃을 피워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자신의 꽃은 자신만이 피워낼 수 있어요. 우리가 8주 동안 배웠던 ‘사유’의 힘을 자양분 삼아 스스로 인생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봐요.”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를 위한 인문학 교실’은 철학적 주제를 토론 형식으로 풀어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를 위한 인문학 교실’은 철학적 주제를 토론 형식으로 풀어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강당에서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를 위한 인문학 교실이 열렸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학생 17명은 모두 퇴행성 근육병을 앓고 있는 전신마비환자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 소장은 “몸은 물론이고, 호흡도 힘들어 매일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들”이라며 “무언가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를 위한 인문학교실은 신체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수업이다. 삼성이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희망 네트워크’가 진행했다. 올해 5월부터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 6월에는 교재도 발간했다. 수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7월 중순. 모두 34명이 청소년(서울대병원)과 성인(강남세브란스병원) 등 2개 반으로 나뉘어 교육에 참가했다. 매주 자아 정체성, 이상 같은 철학적 주제를 토론형식으로 진행했다. 영화나 사진같은 시각자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박남희 교수는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이나 고민이 더 깊고, 교육을 받아들이는 흡수력도 뛰어난 것 같았다”고 했다.

송하경 희망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을 진행했었는데, 신체적으로 어려움 겪는 아이들도 똑같은 고민을 할 것 같았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그는 이어 “유전으로 인한 병이기 때문에 가족 간의 관계를 푸는 것도 중요해 학부모와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덧붙였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한정훈(23)씨는 여덟 살 때 처음 근육병 진단을 받은 후 지금까지 병마와 싸우고 있다. 정훈군은 현재 약 2800명 정도가 활동하는 ‘근육장애인과 함께하는 행복카페’라는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e비즈니스를 전공한 정훈씨는 인문학교실에 참여한 소감을 묻자, “사람마다 다른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업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혼자 걸을 수 없어 항상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고, 호흡기 없이는 숨쉬기 힘든 허정석(29)씨는 수업 참여 학생 중 몸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음에도 누구보다 수업에 적극 참여했다. 마음에 드는 시를 하나 찾아오라는 교수님의 과제를 위해 밤새 인터넷을 뒤져 시를 찾았다고 한다. 대학에서 게임 개발을 전공하며 한때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를 꿈꿨지만 손의 근육마저 마비돼 꿈을 포기한 허씨는 “졸업 후 항상 집에 홀로 있어야 하는 저에게 인문학 수업은 새로운 자극이 됐다”고 했다. 허씨의 어머니 류영희(55)씨는 “자식을 위해 살아오느라 내 삶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삶을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한편 이날 교육이 끝난 후 지난 8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수료식도 이어졌다. 그동안의 교육 현장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며 여정을 되새기고 교육 수료증과 기념품도 받았다.

이번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를 위한 인문학 교실을 후원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정봉은 상무는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의 의료비와 재활보조기기를 지원하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도 필요했다”며 “철학을 통해 자아와 자존감이 향상되면 나중에 이들이 사회에 나가 어려운 일을 만나도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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