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글로벌 식량 위기와 영양실조 대응 정책 포럼] 에이즈보다 무서운 영양실조… 1분에 5명 사망

영양실조로 면역력 저하 빈곤국 질병 숨겨진 원인
비용 대비 효과 높은 질병 중심 프로그램에 영양개선은 외면받아
농업 개선·식량 지원과 지역주민 보건 훈련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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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선 영양실조는‘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말라리아나 홍역, 폐렴 등으로 인한 사망도 영양실조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월드비전 제공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데도, 과테말라에선 발육부진 아동 비율이 48%나 되는 데 반해 몽골에서는 16%에 불과하다. 과연 빈곤국의 경제성장만 달성하면, 영양실조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가.”

지난달 31일 유엔영양상임위원회(UNSCN)에서 시민사회위원회 의장을 맡고있는 테드 그레이너 교수가 던진 질문이다. 그는 오히려 거꾸로 볼 것을 주문했다. “영양실조 개선에 초점을 두면, 아동의 학업성취가 높아지고, 성인기에 소득을 높여 빈곤층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지렛대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오는 18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번 행사는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이하 코피드)과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이 공동주최한 정책포럼으로, ‘글로벌 식량 위기와 영양실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이뤄졌다.

◇글로벌 식량 위기와 영양실조는 무슨 관계?

그레이너 교수는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와 곡물가격 급등으로 인해, 곡물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높게 유지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굶주림을 겪는 인구가 1억명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식량값이 높아져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계층은 빈곤국의 아동들이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저개발국 빈곤가정은 보통 소득의 60~80%를 식료품 구입에 쓰는데, 곡물값이 비싸져 소득 전부를 식량구입에만 써도 가족들이 끼니를 잇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실조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그레이너 교수는 “급성 영양실조는 언론의 관심이라도 끌지만, 만성적인 영양실조는 점점 늘어도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만성 영양실조는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월드비전 통계에 따르면,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하는 5세 미만 아동은 1분에 5명이나 된다. 발달지체 상태에 처한 아동은 전 세계에서 1억7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의 팔뚝. /월드비전 제공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의 팔뚝. /월드비전 제공

◇외면받은 ‘영양실조’ 문제

하지만 영양실조 문제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주요 이슈가 되지 못했다. 2012년 영양 관련사업에 쓰이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전체의 10%에 머물고, 식량긴급구호와 농업·농촌개발 등을 제외한 영양사업은 3%에 불과하다. 그레이너 교수는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이유로 에이즈 예방접종 백신 보급이나 말라리아 퇴치 같은 질병중심적 프로그램이 많은 반면, 영양개선처럼 복합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은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양실조 문제야말로 빈곤국에서 발생하는 많은 질병의 ‘숨겨진’ 진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수경 인하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전 세계 5세 미만 아동 사망의 3분의 1이 저영양으로 인해 발생하며, 영양상태가 나쁘면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에 걸리고, 자연히 생존력도 떨어진다”며 “특히 태어난 지 1000일 동안에 적절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도 당뇨병, 심장병, 비만 등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영양실조’ 해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이날 포럼에선 직접 개도국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참석, 영양실조 해결에 나선 사례를 설명했다. 시프리언 오마(Cyprian Ouma) 월드비전 동아프리카지역 아동영양사업 자문관은 통합적 보건영양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오마 자문관은 “임산부를 대상으로 영양보충제를 보급하고, 여성 소농지원프로젝트를 통해 자급자족으로 식량생산을 가능케 하고, 상태가 심각한 긴급 영양실조 대상자에게 치료영양센터를 운영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말라위 정부와 함께 진행한 ‘농업개선프로젝트’의 경우, 농민들에게 비료보조금과 양질의 모종을 지급해 옥수수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키는 등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니라 샤르마(Neera Sharma) 세이브더칠드런 네팔 영양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영양실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식량 직접지원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라고 했다. 네팔 반케와 루쿰지역의 경우, 한 지역당 30개 내외의 마을개발위원회를 중심으로 농부그룹과 여성그룹 등을 만들어 자체 영양개선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샤르마씨는 “네팔에서 노인들만 섭취하던 호박을 이용해 단호박죽 메뉴를 개발하고, 텃밭에서 난 야채를 이용한 영양수프를 개발해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미상_그래픽_글로벌식량위기_발육지체아동비율_2012◇G20,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포럼을 주최한 단체들은 이날 논의 결과를 토대로, G20을 앞둔 한국대표단에게 ▲아동 영양상태 개선 ▲소농, 특히 여성의 역량 강화 ▲사회적 보호 프로그램 확충 ▲식량 안보와 영양상태 개선을 위한 국제적 투자 ▲공공 부문의 역할 강화 등 5개 항에 기여해달라는 제안서를 보냈다.

이들은 제안서를 통해 “지난 2009년 G8 회담에서 글로벌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년 동안 2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라퀼라 이니셔티브)한 시한이 올해로 끝나는데, 오는 멕시코 G20 정상회의는 과거 약속한 선언 이행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이행방법을 찾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원조받는 나라(수원국)에서 원조하는 나라(공여국)으로 발전한 한국이 공동조정국으로서 국제적 공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이에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재정 지원 약속을 제외한’비상식량비축제’를 통한 비상시 식량 공급, 소농의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안, 여성의 영양강화, 사회보호 분야에서도 ‘사회보호 지식공유플랫폼’을 만들어 지식을 공유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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