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기숙사 무료 입주… 국가 장학금 사각지대 지원해야

늘어난 국가 장학금, 기업 장학재단이 나아갈 방향은
해외교환 장학생 선발-글로벌 교육사업 제공 등… 기업의 특성 살린 지원
국가 등록금 혜택과 기업 장학금 중복 수혜 등… 지원 조건 다양화해야

“국가 장학금이 너무 많아졌는데, 저희 기업재단에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때문에 장학재단 담당자들은 요즘 삼삼오오 만나면 동향을 묻는 경우가 많다. “학생 뽑는 데 어렵지는 않으냐” “학생들 뽑아놓으면 조건이 좋은 데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 등을 물으며 정보를 교환한다.

◀베트남 하노이의 대학생들에게 ‘환은장학금’을 주고 있는 외환은행나눔재단. /외환은행나눔재단 제공
◀베트남 하노이의 대학생들에게 ‘환은장학금’을 주고 있는 외환은행나눔재단. /외환은행나눔재단 제공

◇’국가장학금’ 도입에 기업장학사업 담당자들은 고민 중

현재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등록된 국내의 장학금 종류는 270여가지에 달한다. 이 중 든든학자금대출, 일반학자금대출, 미래드림장학금, 희망드림장학금, 국가근로장학금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자금과 장학금은 12가지다. 각 정부부처에서 국가보훈처, 근로복지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을 통해 지원하는 학자금과 장학금은 16가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장학금은 155가지다. 민간기업의 장학재단 장학금은 49가지, 개인이나 종친, 해외에서 주는 장학금은 43가지다.

업종을 살려 해외 경영, 금융 관련 학·석사, MBA진학 예정자에게‘글로벌투자전문가 장학생’을 뽑는 미래에셋박현주재단.
업종을 살려 해외 경영, 금융 관련 학·석사, MBA진학 예정자에게‘글로벌투자전문가 장학생’을 뽑는 미래에셋박현주재단.

한 기업장학재단 관계자는 “과거에 국가나 공공영역에서 복지를 다 감당할 수 없었을 때는 기업이 장학재단을 통해 어려운 학생을 돕는 게 큰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 국가에서 장학금을 확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업장학재단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재단에서는 국가장학금 확대 이후 제도 일부를 바꾸기도 했다. 국내 보육시설, 그룹홈 또는 저소득 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해온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송헌석 과장은 “예전에는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아이가 생기면 안 된다’는 취지로 1학년생은 등록금 전액을, 2학년생은 90%를 지원했는데, 국가 혜택이 나오면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등록금이 0원’이라서 등록금 대신 장학금 지원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국가장학금과 중복 수혜가 가능하도록 해, 저소득 학생들이 생활비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업종 살린 기업재단 장학사업 눈길 끌어

업종을 살려 해외 경영, 금융 관련 학·석사, MBA진학 예정자에게‘글로벌투자전문가 장학생’을 뽑는 미래에셋박현주재단.
업종을 살려 해외 경영, 금융 관련 학·석사, MBA진학 예정자에게‘글로벌투자전문가 장학생’을 뽑는 미래에셋박현주재단.

종근당고촌재단은 기업재단으로는 최초로 기숙사 시설을 마련해, 생활이 어려운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전·월세난을 해결해 주목받고 있다.

1973년 설립된 종근당고촌재단은 작년부터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종근당 고촌학사’를 마련해, 지난해 31명의 지방출신 대학생을 무료로 입주시켰다. 고촌재단은 이를 위해 방 16개의 4층 원룸빌딩을 16억5000만원에 사들인 후 2억6000만원을 들여 기숙사로 리모델링했다. 올 상반기 중 ‘제2호 고촌학사’ 개관도 추진하고 있다. 종근당고촌재단 관계자는 “고촌학사가 마련됐다는 소식에 각 지자체와 기업재단 관계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종의 특성을 살려 해외로 눈길을 돌린 기업도 있다. 해외 점포가 많은 외환은행나눔재단은 2006년부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의 우수 대학생에게 ‘환은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외환은행나눔재단 권택명 이사는 “인도네시아의 장학금 수여식에서 최고 명문대 3학년생이 ‘시골에서 올라와 3년 동안 고생하며 힘들게 버텨오다 도저히 4학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 장학금 덕분에 인생이 바뀌게 됐다’는 소감을 발표하더라”며 “베트남 하노이에선 국영TV가 취재해 가는 등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삼성꿈장학재단 또한 중국 조선족이나 연해주 고려인 등 한인 후손, 네팔과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 최빈국 저소득층 학생에게 장학금과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개발 협력분야 사업을 하는 비영리기관들로부터 장학생을 추천받는데, 오는 17일(화)에는 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도 연다.

종근당 고촌재단의 기숙사인 ‘종근당 고촌학사’
종근당 고촌재단의 기숙사인 ‘종근당 고촌학사’

2000년부터 국내장학금을 지원해 오던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2006년 ‘글로벌 투자전문가 장학생’, 2007년 ‘해외교환 장학생’을 신설해, 장학생 선발을 세 종류로 확대했다. 사회공헌실 강상신 팀장은 “해외장학금의 경우 학생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며 “글로벌 자본시장을 배워 한국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이기 때문에 졸업 후 미래에셋에 입사해야 하는 별도 조건도 없다”고 말했다.

◇국가장학금 사각지대 찾고, 지원조건 다양화해야

이제 기업재단의 장학사업은 장학금 지원 편중을 없애고, 국가장학금의 사각지대를 찾아 지원하는 등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장학담당 서울소재 A대학 장학담당 관계자는 최근 몇몇 기업재단 관계자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정부가 올해부터 국가장학금을 1조5000억원 규모로 대폭 늘리면서 장학금 수혜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소득이 낮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3~4개 원서를 내놓고 저울질하는 반면, 국가장학금에 해당되지 않는 소득 8~10분위의 학생 중에는 억울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국가장학금은 소득과 과세로만 책정돼 소득 7분위까지만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소값 파동 때문에 소를 모두 팔고 빈 외양간만 있는데도 농장이 소득에 잡혀 장학금 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집안에 암환자나 중병환자가 있어도 사정이 감안되지 않는다고 한다.

성적을 너무 높게 책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강대의 장학담당 관계자는 “사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애들이고,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렵다. 진정 가정형편 어려운 학생을 도울 목적이라면 성적을 크게 보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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