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놀림 받고 자란 아이가 성장한 10년 후 사회 모습 그려봐야

다문화 정책… 지원금 크게 늘었지만 일부에만 혜택 몰려
다문화 지원 예산, 6년 동안 100배 늘고 지원센터도 10배 증가
시간 여유 있는 주부는 혜택 많은 기관 서로 비교해가며 다녀
농사짓거나 시댁 눈치로 혜택 전혀 못 받는 경우도
이주 노동자 자녀교육이 훨씬 심각한 상태지만 정부는 오히려 지원 배제
이벤트성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큰 그림 필요해

“보육료 거절합니다.”

파워블로거인 고마츠 사야카(31)씨는 올 1월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관한 이런 글을 올렸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우리 아기가 다문화 가정 아이라서 나를 엄청 부러워한다. ‘다문화 가정 보육료 100% 공짜’라서다. … 인터넷에 찾아보고 주민센터도 가봤더니 결혼식·여행·택배비 할인, 대입 다문화 가정 특별전형, 한국어 교육, 요리교실, 각종 취미교실, 육아도우미 무료, 영·유아 보육비 무료, 각종 체험 문화 탐방, 취업 지원 및 일자리 지원, 친정부모 초청행사, 바우처사업, 방문 자녀 교육, 방문 부모 교육, 놀이공원 가족초대권, 영화관람권, 무료건강검진권, 고향 방문 항공권, 토픽(TOPIK·한국어능력시험) 응시료, 어린이학습지, 장학금, 운전학원비 보조, 자조 모임 운영비, 국민임대주택 1순위 우선 배정, 분양시 우선 공급 대상, 전세자금 대출금리 할인까지 있더라. … 물고기를 계속 잡아주면 물고기 잡는 방법은 절대 못 배운다. 낚싯대를 어디서 사고 낚시를 어디서 하고 낚시를 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사야카씨는 이런 이유로 남편과 상의해, 39만원의 보육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블로그에 밝혔다.

이주 여성들은 전국 210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한글교실이나 다문화 방문 상담교사로부터 한글을 배울 수 있다.
이주 여성들은 전국 210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한글교실이나 다문화 방문 상담교사로부터 한글을 배울 수 있다.

◇다문화 지원도 양극화

다문화 지원과 관련된 예산은 2006년 12억원에서 2011년 1162억원으로 6년 만에 100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시기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21곳에서 201곳으로 10배 증가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하지만 다문화 지원 혜택이 ‘빈익빈 부익부’라는 지적이 높다. 조삼혁 아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형편이 괜찮은 다문화 가정주부들은 자조 모임이 있어서 카카오톡을 통해 ‘어떤 프로그램 한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오는 데 반해 농사를 짓거나 시댁 식구 눈치를 봐야 하는 분들은 아예 참석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문화 지원사업을 하는 한 NGO 관계자는 “다문화 혜택을 받아본 여성들이 기관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사은품을 하나라도 더 주는 데를 가는 걸 보면 회의감이 될 때도 많다”며 “누군가 한 명이 정보를 잘 알고 있으면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만 알려주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도 알려주자고 조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늘어나는 다문화 이혼 여성의 경우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조삼혁 센터장은 최근 충남 아산의 한 대기업 하도급업체 공장 기숙사에서 대낮에 혼자 놀고 있는 7세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이혼한 결혼 이주 여성의 아이였다. 이 쪽방 기숙사는 성인 남녀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큰일 났다”며 아이를 데려와 낮시간 동안 피아노 교육과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을 하도록 했다.

◇결혼 이주 여성에만 초점, 이주 노동자들은 지원 사각지대

다문화 지원 대상이 결혼 이주 여성과 그 자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전체 이주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50만명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빈약하다. 부천이주 노동자복지센터 관계자는 “작년에 부천시에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 해외 유학생 등과 공동체를 운영하는 사업제안서를 냈는데, 이주 노동자를 빼달라고 하더라”며 “NGO 입장에서는 똑같은 이주민들이니까 구분을 하지 않는데, 정부기관에서 오히려 굉장히 많은 구분을 하고 배제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완 사무국장은 “정부 통계에는 안 잡히지만, 이주 노동자의 자녀 교육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며 “최근에는 재혼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본국에서 함께 데려온 ‘중도입국 자녀’도 늘어나고 북한 이탈 청소년과 난민 자녀 등도 많은데, 이들에 대한 지원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교육센터를 운영하는 무지개청소년센터 김재우 다문화역량강화팀장은 “중도입국으로 한국에 들어온 22세 조선족 아이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초등학교 졸업 후 게임 중독에 빠져 폐인처럼 살고 있다”며 “이 아이들은 언어뿐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까지 겹쳐 적응하는 데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따뜻한 관심과 다양한 교육을 통해 이주 여성들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실현하고 있다. /부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따뜻한 관심과 다양한 교육을 통해 이주 여성들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실현하고 있다. /부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다문화 특화교육 아닌 통합교육 절실

현장에서 다문화 지원사업을 하는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다문화를 또 다른 인식표처럼 구분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완 사무국장은 “다문화 지원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색하다”며 “다문화 아이들만 따로 모여 특정 프로그램을 배우게 하는 등 분류되고 배제되는 지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다문화’라는 이유로 특정 혜택을 받게 되면 국내의 저소득 가정과의 갈등이 유발되거나 역차별이 나와서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천이주노동자복지센터 관계자는 “다문화를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 인식 변화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며 “소통 마당을 위해 행사를 하면, 한국인은 안 오고 외국인들의 잔치가 된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족이 있는 남편과 시부모 등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식 교육이나 일반 학생과 부모·교사를 위한 다문화 이해교육,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공익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엄마 이름 이상하다고 놀린다’고 해서 엄마들이 귀화하면 가장 먼저 우리나라 이름으로 개명을 한다”며 “다문화를 분리하고 왕따시키는 국민이 있는데, 이름만 바꾸면 뭘 하겠느냐”고 했다.

무지개청소년센터 김재우 팀장은 “2007년부터 3년 동안 다문화 아이와 비(非)다문화 아이가 함께 진행하는 통합 교육 프로그램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 다른 기관에서도 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도했다”며 “하지만 다문화 붐이 일어난 후 분위기가 달라져 통합교육을 하는 기관이 많지 않다”고 했다. 통합교육으로는 지원 예산을 받기 힘들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이벤트성 지원 대신 장기 밑그림 그려야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는 다문화 지원현장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한 NGO 관계자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는 다문화 아이들에게 건반을 사서 보내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이 엄마가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와서 직접 받아가더라”고 했다. 김재우 팀장은 “‘다문화’라는 대상만을 분류해 수혜 위주로만 정책이 집행되고 있다”며 “교육은 소득에 관계 없이 평등하게 받아야 하지만, 세금 혜택이나 직업 등에 대한 수혜는 자생력과 소득 수준을 고려해 보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정책 등 향후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한 장기적인 큰그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높았다. 양옥경 이화여대 교수는 “다문화가 굉장히 폭넓은 단어임에도우리나라에선 동남아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이란 제한적 의미로 이미지화돼 향후 10년을 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학교 다니던 내내 놀림받던 이 아이들이 무기를 들고 군대에 갔을 때 어떤 모습이 될까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란희 편집장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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