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에너지 빈곤층의 凍破 막아주는 ‘사랑의 난방비’

굿네이버스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 13년째

경기도 시흥시 빌라 주택가. 반지하에 위치한 김영희(67·가명)씨의 집엔 화장실 문이 없었다. 현관문을 열자 세면대와 변기가 한눈에 보였다. “어떻게 화장실을 사용하시냐”고 묻자 “새벽에 교회에 가서 사용하고, 집에 와서는 5분 거리에 있는 병원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애초에 정화조가 잘못 설치돼 변기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자 온수가 10초가량 쫄쫄쫄 떨어지다 멈췄다. 배수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반지하라 곳곳에 곰팡이가 퍼져 있었다. 김씨는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데 보일러가 낡고 외부에 있어 실내 온도를 13도로 맞춰도 월 10만원 이상 난방비로 지출된다”고 말했다.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에 선정된 김영희(가명)씨의 집 내부 모습. 화장실 문이 없이 개방돼있고, 정화조 문제로 변기를 사용할 수 없다. ⓒ굿네이버스

20년가량 건너편 판자촌에서 생활했던 김씨. 평생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을 대신해 자식 둘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식당 일, 중노동 등을 하면서 자식을 키웠건만, 남은 건 허리협착증과 관절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판자촌이 개발되며 3년 전 이곳 반지하 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여름 길에서 넘어져 오른팔 골절상을 당한 이후 요양보호사 보조 일을 하던 것도 그만둬야 했다. 한 달 수입은 노인기초연금(20만원)이 전부. 이 돈에서 매월 저소득층 전세 자금 대출 원금을 6만5000원씩 갚고 나면, 생활비는 10만원 남짓이다. 3년째 전세 1000만원 반지하에 살고 있는 김씨는 집 안에 있는 의류, 가구들을 가리키며 “건너 아파트에서 주워온 건데 쓸 만하다”고 했다.

부양자가 있어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원받을 수도 없다. 김씨는 “자식들도 학자금, 전세 자금 대출 등 생활이 빠듯해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올겨울은 유독 춥지만 마음은 든든해졌다. 김씨의 딱한 사연을 눈여겨본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굿네이버스와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에 신청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것. 김씨는 “다음 달에 손주도 태어나는데 근심을 한몫 덜었다”고 좋아했다.

◇소외된 이웃에게 겨울철 온정을 전하는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

굿네이버스는 지난 2006년부터 한국지역난방공사의 후원으로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씨와 같은 에너지 빈곤층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에 난방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매년 11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를 통해 사연을 신청받고, 굿네이버스에서 사회복지 시설이나 개별 가구에 현장 실사를 나간다. 사연 신청 건수는 평균 600~700건가량. 그중 절반 정도가 최종 선정돼 난방비를 지원받는다.

 

개인에게는 약 3개월분의 난방비 80만원과, 사회복지 시설에는 200만원가량이 지원된다. 올해로 벌써 13년 차다. 현대중 굿네이버스 사회공헌협력팀 팀장은 “겨울철이면 저소득층엔 난방비가 큰 부담이 된다”면서 “정부에서 도움을 주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외 차상위 계층까지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이맘때쯤 지원받았던 난방비는 그 금액 이상의 가치가 있는 소중함이었습니다…. 독거 장애인이면서 루게릭병으로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타의 반 자의 반 세상과 단절하고 고립무원으로 지내온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정영수씨가 MBC ‘여성시대’에 보낸 사연 일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정영수(59)씨는 2016년 겨울에 이어 지난해에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 사연을 보냈다. 종이 글씨판을 앞에 두고, 눈동자 움직임으로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정씨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A4 1장 분량의 사연을 빼곡히 보낸 것. 장애연금으로 매월 20만원을 받고 있지만, 한 달 지출되는 의료비만 50만원 선인 정씨에게 난방비 지원은 큰 힘이 됐다. 정씨는 “더 많은 사람이 지원 사업을 알게 돼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눈으로 소감을 전했다.

 
10년 넘게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정영수씨의 자택 창문. 의료기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창문을 꽉 닫을 수 없다. ⓒ굿네이버스

◇지역 복지 사각지대 찾아 자원 연결까지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의 핵심은 지역의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를 찾는 것.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 빈곤층은 10가구 중 1가구인 178만 가구(2013년 기준, 빈곤·비빈곤 포함)에 이른다. 굿네이버스는 매년 현장 실사를 위해 사무국을 별도로 조성하고, 겨울철 3개월 동안 현장 모니터링과 사업을 담당할 인력도 충원한다. 올해도 2017~2018년 겨울철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기 위해 사무국 직원 6명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 때문에 위험군에 속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발굴해 필요한 자원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인천광역시 서구에 거주하던 안지혜(40·가명)씨도 지난해 12월 가정 방문을 통해 난방비 지원뿐만 아니라 6개월치 전기요금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8년 전 가정 폭력으로 집을 나와 자녀 둘, 조카 두 명과 함께 LH 임대주택에 생활하던 안씨. 가정 폭력 후유증으로 외출을 두려워해 생활이 어렵고, 심각한 우울증 또한 앓고 있었다. 사무국 직원이 방문했을 당시엔 전기세, 수도세를 6개월 동안 납부하지 못해 3일 이내에 수도와 전기가 끊길 위기였으나 긴급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현대중 굿네이버스 사회공헌협력팀 팀장은 “사랑의 난방비 지원 사업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지역화 사업에 해당한다”면서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지역에서 지원이 되는 형태로 지원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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