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키가 자라서 슬픈 아이, 알제이를 소개합니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였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당시를 떠올리던 엄마는 잠시 눈물을 보였다. 2015년 9월, 아들 알제이(8)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고모에게 놀러갔다가 뜨거운 기름을 뒤집어썼다. 필리핀 마닐라 안티폴로시장엔 튀겨 파는 길거리음식이 흔하다. 날벌레를 피하려다 기름 솥을 건드린 것이었다. 알제이의 오른쪽 뺨과 가슴, 등 뒤쪽으로 온통 기름이 번졌다.

한국에서라면 응급처치를 통해 깨끗한 피부를 이식했겠지만, 알제이가 살고 있는 필리핀에선 화상전문병원이 없다. 스테로이드주사와 연고만 바른 채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키는 한 뼘 이상 자랐다. 알제이의 온 몸엔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피부조직이 내려앉았다. 1년 사이 화상을 입은 부위는 그대로인 반면, 그렇지 않은 부위는 성장하면서 자세가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오른뺨과 목으로 연결된 화상부위가 주변 조직을 잡아당기면서, 알제이의 목은 점점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좌측) 2016년 도움 요청 당시 사진 (우측) 2017년 현재 모습 ⓒ한림화상재단

1년 만인 지난 5월 11일, 키가 자라 슬픈 아이인 ‘알제이’가 한국 땅을 밟았다. 매달 20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알제이 부모님 대신, ‘키다리 아저씨’로 나선 건 한림화상재단이다. 지난해 “재건수술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팔을 들어올리기도 힘들다”는 알제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현지 관계자로부터 들은 한림화상재단은 1년 동안 초청계획을 세웠다.

“알제이는 온 몸의 10%나 화상을 입어서, 최소 3번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바탕으로, 화상 전문 의료진을 모아 수술계획을 세우고 입원 일정을 잡았다. 모금프로젝트도 시작해 개인과 기업 등으로부터 1500만원의 정성이 모였다.

드디어 5월 16일, 알제이는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가장 시급한 오른쪽 뺨의 딱딱한 조직을 떼어내는 장장 5시간의 대수술을 끝냈다. 일주일 뒤인 23일, 오른쪽 가슴의 화상조직을 떼어내고 피부 재건수술까지 받았다. 2주 후엔 등쪽의 피부 재건수술이 잡혀있다. 수술과 안정에만 무려 2개월 넘게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다.

입원 당일 알제이, 엄마, 교사의 모습 ⓒ한림화상재단

힘든 수술 과정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알제이. 큰 눈망울로 매일 드레싱 치료를 꿋꿋이 받는 알제이는 9병동의 스타다. “비행기를 처음 타봤어요. 병원에 학교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해요. 이곳에 있는 게 꿈만 같아요.” 귀엽고, 의젓한 알제이를 격려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같은 병동 환자들은 십시일반 정을 나눈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알제이를 위해 빵이나 음료수 같은 간식을 나누기도 하고, 한림화상재단을 통해 알제이를 위한 결연기부를 신청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화상 발생의 92%는 아시아 저소득국가에서 발생하고, 이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알제이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환아들을 위해 한림화상재단은 2009년부터 아시아 저소득국가 화상환아지원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 현재까지 9년간 7개국 800여명을 현지에서 무료로 진료하고, 그 중 현지 수술이 불가능한 환아 45명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수술을 지원한 바 있다. 알제이와 같은 환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네이버 해피빈을 통한 모금이 진행 중이다.

아시아 저소득국가 화상환아지원사업, 46번째 주인공 프린세스의 이야기 자세히 보기: https://goo.gl/5YPJW8

 

※이 기사는 황세희 한림화상재단 사무과장이 더나은미래와 동그라미재단이 함께 진행하는 ‘비영리 리더 스쿨 4기’ 과정을 통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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