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비영리 숲을 만드는 미국의 중간지원기관들

‘오버헤드 미스(Overhead Myth)’라는 캠페인을 아는가. 비영리단체 운영비를 둘러싼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2013년 벌인 대대적인 캠페인이다. 미국의 대표 비영리 중간지원기관인 가이드스타, BBB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 채리티 네비게이터 3곳이 함께 뭉쳤다. 이들은 편지를 썼고, 이를 퍼나르도록 했다. 내용은 이렇다. “오버헤드(overhead)라고 불리는 운영비와 모금비만으로 비영리를 평가하지 말자. 그 결과 비영리단체는 운영비를 쓰지 못해 빈곤의 악순환에 빠졌다. 비영리는 오버헤드에 돈을 더 써야 한다. 그 돈은 비영리단체가 원래 목적을 잘 달성하도록 돕는다.”

비영리단체 숫자만 160만개가 넘는 미국에선 이처럼 비영리를 대표해 목소리를 내는 중간기관이 많다. 정책에 대한 개선 의견도 내고, 시민들에게 비영리를 알리거나 오해를 바로잡는 캠페인도 한다. 비영리를 평가하고 인증하기도 하며, 비영리단체 직원을 위한 교육과 콘퍼런스도 대대적으로 연다. 비영리 숲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때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공통의 목적 앞에선 한목소리를 낸다. 우리가 배울 점은 없을까.

더나은미래는 최근 한국 NPO 공동회의 ‘미국 NPO 해외연수’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BBB 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 인디펜던트 섹터, 가이드스타 3곳의 리더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왼)아트 테일러 대표, BBB 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 사무실
 
 

BBB 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 아트 테일러(Art Taylor) 대표

총지출의 65% 이상 사업비로… 20가지 평가 기준

“원래 BBB는 1912년 설립된 기업평가기관이다. 소비자들이 기업에 대한 불만 사항을 홈페이지에 올린 걸 토대로 평가 정보를 구축했는데, 1920년대에 비영리 자선단체도 평가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자선단체는 기업처럼 소비자가 있는 게 아니어서, 다른 평가 기준이 필요했다.”(아트 테일러 대표)

BBB 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BBB wisegiving alliance)는 홈페이지(Give.org)를 통해 한 해 1만2000개가량의 비영리 평가 리포트를 낸다. 테일러 대표는 “우리의 평가 기준은 20가지인데, (채리티 내비게이터와 같은) 별점 평가는 하지 않는다”며 “대신 각각의 기준별로 통과 유무에 따라 초록, 노랑, 빨강 등으로 표기해 기부자들이 단체의 상태를 알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평가 기준은 4가지로, ▲거버넌스 ▲효율성 ▲재정 ▲모금과 정보 공개다. 우선 거버넌스는 비영리단체 이사진에 관한 모든 걸 본다. 의결권을 가진 이사진이 5명 이상 되어야 하고, 이사진들이 단체의 CEO 평가·예산의결·모금활동 등을 잘 감독하는지, 또 이사진이 해당 비영리단체와 재무적인 이해관계 상충이 있는지 등을 본다. 테일러 대표는 “국세청 양식(IRS 990)을 통해 비영리단체와 이사진의 거래관계를 확인하고, 이상한 게 있으면 질의나 감사보고서 등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테일러 대표는 14년 전 시작한 효율성 부문이 가장 어려운 평가 지점이라고 말했다. 최소 2년에 1회 이상 사업 효율성을 논하는 회의를 갖는지, 효율성에 대한 결과물을 이사회에 제출하는지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테일러 대표는 “빈곤층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단체가 있을 때, 몇 명에게 식량을 제공했는지가 기준이 될지 아니면 더 이상 식량 지원이 필요 없을 만큼 빈곤층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기준이 될지 제각각 다르다”며 “효율성 평가를 의무화하면 비영리단체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오히려 개선 의지가 더 떨어진다”고 했다.

재정과 관련, 기준점을 통과하기 위해선 총지출의 65% 이상이 사업비에 쓰여야 하고, 모금 비용은 관련 기부금의 35% 이하여야 한다. 테일러 대표는 “우리는 최소 기준점을 충족했는지만 볼 뿐, 사업비 규모를 70% 쓰는 단체와 85% 쓰는 단체를 비교해 어느 단체가 더 나은지 평가하지 않는다”며 “기부자들에게 자꾸 간접비용에 대한 평가 기준만 강조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비영리단체에서 기부금을 쓰지 않고 쌓아두는 걸 막기 위해, 축적된 기부금이 해당 연도의 예산보다 3배 이상 되면 안 되는 기준도 있다.

특히 모금과 정보 공개 항목도 주요 기준이다. 연차보고서, 웹사이트 정보 공개, 기부자 개인정보 보호, 불만 사항 해결 등이다. 특히 비영리단체가 상품을 판매할 경우, 일명 코즈마케팅을 한 이후 실제 물건 가격 중 얼마만큼이 비영리단체로 돌아갔는지 등에 대한 세부 정보까지 공개하도록 했다.

BBB 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는 기준을 통과한 단체에 대해 인증을 해준다. 정보를 주는 비영리단체 중 35% 정도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데, 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게 특징이다. 억울한 비영리단체가 있으면 온라인에 직접 해명 코멘트를 달도록 했다. 아예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가장 나쁜 평가를 받는다. 테일러 대표는 “‘BBB 스캠 트래커(Scam Tracker)’라는 툴을 통해 2015년 이후 6만곳 이상 기업 사기 행각이 보고됐는데, 이 중 421곳이 자선기관과 연계돼있다”며 “앞으로 가짜 재난 모금이나 개인정보를 빼내기 위한 피싱 사기 등을 막고, 신뢰성 있는 기업사회공헌 파트너 단체를 찾기 위해 이 같은 평가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왼)다니엘 카디날리 대표, 인디펜던트 섹터 로고

 

인디펜던트 섹터 다니엘 카디날리(Daniel Cardinali) 대표

미국 비영리는 지금 ‘임팩트’가 화두

인디펜던트 섹터(Independent Sector)는 1985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단체 연대 조직체다.

영국에선 ‘제3섹터청’이나 ‘채리티 커미션’과 같은 정부 조직이 있지만, 미국에선 국세청(IRS)이 면세 혜택만 담당할 뿐 비영리를 담당하는 정부 조직이 없다.

이 때문에 인디펜던트 섹터는 연방정부와 의회에 비영리 분야를 이해시키는 어드보커시(Advocacy) 역할을 주도적으로 맡고 있다. 현재 520여 개의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돼있다.

다니엘 카디날리 대표는 “트럼프 정부 이후 겪는 변화와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지 대응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미국 비영리의 최대 화두는 ‘임팩트’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30년 넘게 미국에선 성과(아웃풋)에 대해서만 신경 써왔다. 빈곤층 몇 명에게, 얼마만큼의 서비스를 줬는지만 얘기했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었다. 사람들은 비영리단체가 간접비를 얼마나 쓰는 게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다. 그게 ‘임팩트’다. 재무적인 이야기가 우선순위에 놓여서는 안 된다.”

교육, 보건의료, 환경, 문화예술 등 다양한 비영리단체에선 지금 임팩트 측정 시도가 불붙었다고 한다. 교육의 경우, 빈곤층 아동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얼마인지, SAT 점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해, 실제 빈곤 아동의 자립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지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인디펜던트 섹터는 돈을 배분하는 자선재단과 사업을 맡은 풀뿌리 비영리단체 간에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의 결론은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 제프 모어 책임자는 “비영리단체는 받은 기부금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정확히 소통해 기대치를 너무 올리지 말아야 하고, 자선재단은 적당한 기대치를 갖고 큰 변화를 위해 얼마만큼의 비용이 드는지 이해해야 한다”며 “다만 아이가 갑자기 박사가 될 수 없듯이 임팩트 측정까지 가기 위해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디펜던트 섹터의 또 다른 중요 역할은 비영리 내부 생태계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40대 미만 리더를 키우는 펠로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1년에 한 명씩 상을 준다. 창립자인 존 가드너씨의 이름을 딴 ‘존 가드너 리더십 어워드’라는 상은, 매년 모범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비영리 리더에게 시상한다.

콘퍼런스 담당인 엘리자베스 컬킨씨는 “매년 1200~1500명이 모이는 대규모 비영리 콘퍼런스를 개최하는데, 비영리 CEO만 참여하는 클로징 세션에서는 전략과 관련한 밀도 있는 얘기가 오간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25~27일 미시간주에서 리더십 콘퍼런스가 개최된다.

카디날리 대표는 “2000년대 초반 미국 비영리 부문은 투명성·윤리성 부족으로 미국 상원 재정위원회에서 심한 감사를 받았고, 당시 비영리 규제 강화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며 “하지만 인디펜던트섹터는 외부 규제가 아니라 비영리섹터 내부가 자발적으로 모여 ‘대원칙(Principle) 33가지’라는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2015년 이를 재수정해서 제출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진행 중인 세금제도 개혁에서도 비영리 부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의견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영리 평가에 대해 카디날리 대표는 “미국은 다양한 평가기관과 평가도구가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영리 스스로가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왼)데버러 스나이너 부대표, 앤드리안 부대표 ⓒ박란희

 

가이드스타 데버러 스나이너&앤드리안 부대표

240만개 비영리단체 정보 공개

“가이드스타가 만들어지자 언론은 비영리단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했다. 포브스가 매년 연락 와서 ‘톱10 비영리단체’를 달라고 했다. 어떤 매거진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이런 단체가 나쁜 일을 했다’며 부정적인 보도를 대서특필했다. 반면 비영리단체에선 좋아하지 않았다. 비영리단체 CEO의 연봉을 공개하고, 경쟁 비영리단체 정보를 볼 수 있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언론사 기자와 비영리단체 모두를 교육시켜야 했다.”(데버러 스나이더 부대표)

20년 넘은 역사를 지닌 가이드스타의 초창기 모습이다. 가이드스타는 미국 비영리단체 정보의 보고(寶庫)다. 등록된 비영리기관 수만 240만곳. 축적된 데이터양만 25억개다. 미국 국세청 공시양식(Form 990)을 포함, 비영리단체의 DB를 기부자들에게 공개한다. 스나이더 부대표는 “국세청 정보뿐 아니라, 해당 비영리단체에서 받은 정보까지 각종 데이터를 디지털화한 후 기부자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로 재가공한다”며 “대부분의 정보는 무료로 제공되고, 기업이나 재단에 가공 정보를 판매하기도 한다”고 했다.

“미디어에서 비영리 재무정보를 긍정적으로 선순환시키도록 끊임없이 교육했다. 비영리단체에도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혜택을 얘기했다. 숫자만 알려주고 숫자에 담긴 의미와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는 비영리단체는 수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채리티 내비게이터나 BBB 평가시스템은 어려운 질문에 쉬운 답을 주는 것이다. 가이드스타는 이 같은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가이드스타는 비영리단체들이 정보 공개를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 투명성 관련 인증을 한다. 기본 정보(법인식별번호, 주소, 이메일, 미션, 대표자 이름, 프로그램 등)만 제공하면 브론즈(Bronze), 기본 정보 외에 외부감사 자료 또는 재무 정보가 있으면 실버1(Silver), 여기에 임팩트와 효율성 관련 정보(목표, 전략, 측정 지표, 성과 등)까지 있으면 골드(Gold) 등급을 받는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가이드스타 사무실

“1년에 각종 재무 정보를 DB화하는 데만 100만달러가 쓰인다. 국세청은 인력이 부족해서 비영리 정보를 DB화할 수가 없다. 22년 전, 기부하려는 단체가 괜찮은지 알기 위해선 국세청에 일일이 요청해서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한곳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앤드리안 부대표는 “비영리단체의 임팩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재무 정보도 일관성이 부족한데 프로그램의 임팩트나 성과는 더욱 일관성 있는 기준을 찾기 힘들다”며 “그럼에도 가이드스타는 비영리단체 부문별로 800가지 측정 지표에 따라 임팩트 성과를 측정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이뿐 아니다. 가이드스타는 국세청과 비영리단체 간에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대화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 테이블이 있다. 국세청 공시 양식에 따른 문제가 있으면 이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소통과 대화 채널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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