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Cover story] 기적의 두 오케스트라가 만나 세상을 울리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카라카스 유스 단원과 하트하트 단원이 만나 베토벤 운명 교향곡 협연
서로 말은 안 통하지만 음악으로 하모니 이뤄 “용기와 꿈 잃지 말고 연주하고 도전했으면”

무대 위로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트럼펫 멜로디 위로 절도 있는 경기병의 행진이 펼쳐진다. 호른의 팡파르가 울리자 악기를 든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던 손도, 굳게 경직됐던 얼굴도 활기찬 리듬에 맞춰 이내 자유로워졌다. 지난 10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꿈과 희망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지난 10월 25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운명교향곡을 협연한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와 발달장애 청소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모습. /크레디아 제공
지난 10월 25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운명교향곡을 협연한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와 발달장애 청소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모습. /크레디아 제공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예술의전당 무대 위에서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음악을 향한 아이들의 꿈이 세계에 우뚝 서길 바라봅니다.” 하트하트 재단 신인숙 이사장은 벅차오른 감동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딛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물한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발달장애 청소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라니. 모두가 만류했다. 악기를 손에 쥐고 악보를 익히고 연주를 하기까지, 그 모든 순간순간이 이들에겐 도전이었다. 창단 후 6년,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으로 시작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울렸다.

프란츠 본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 끝나자 검은 정장과 붉은 원피스를 차려입은 청년들이 무대 위로 줄지어 올라왔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El sistema,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의 뿌리,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였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설렘 가득한 얼굴로 이들에게 환영의 악수를 건넸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같은 비전을 가진 두 오케스트라의 특별한 만남이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객석을 감쌌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서정적인 음색과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선율이 웅장하고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이번 협연을 지휘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박성호 지휘자가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언어가 다른데도 카라카스 단원들에게 아이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더라고요. 카라카스 연주자들도 웃으면서 눈짓 손짓 대답을 해주고요. 막상 연주가 시작되니 걱정할 게 없었어요. 음악은 세계 공통의 언어거든요. 평상시보다 아이들이 긴장을 많이 하긴 했지만 연습한 대로 의젓하게 해냈어요. 같은 비전을 가진 두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통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협연이 끝나자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졌다. 연주를 마친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노랑, 파랑, 빨강으로 이뤄진 베네수엘라 국기를 상징하는 메달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목에 걸어준 것이다. 아이들은 메달 앞부분에 달린 금색 바이올린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활짝 웃었다. 협연의 악장(concert master)을 맡은 볼프강 안드레스 그레테롤(Wolfgang Andres Graterol)이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 선물한 메달의 의미를 전했다.

“바이올린 메달 뒷면에 ‘연주하고 싸워라(to play and to fight)’란 문구가 새겨져 있어요. 엘 시스테마의 모토죠. 음악을 연주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도전과 열망을 갖고 인내하라는 의미입니다. 장애를 딛고 즐겁게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음악적인 끈을 갖고 서로 오랫동안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꿈을 담은 연주를 계속 해나가길 응원합니다.” 무대 뒤편에서 두 손을 모으고 초조하게 아이들의 연주에 귀 기울이던 어머니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트하트재단 장진아 사무국장은 “협연을 통해 아이들의 자신감이 향상됐다. ‘더 잘하고 싶다’는 의지도 생겨났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도 한국형 엘 시스테마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