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미등록 이주 아동들도 꿈 키울 수 있는 나라로

다문화 아이들의교육 기회
2020년 다문화 가족 20%로 확대될 것 불법체류 아동은 학교 진학조차 버거워

혜진이는 몽골 국적을 가진 소녀다. 그러나 어느 한국 아이 못지않게 한국어를 잘한다. 7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째. 공부도 곧잘 해서 지금 실업계 고등학교 수능 대비반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끝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이 좋아요. 옛날에 드라마에서 ‘모모’라는 작품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미하엘 엔데의 작품을 읽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이만큼 두꺼워요.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혜진이는 그동안 읽었던 책의 목록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책 이름도 여러 권 등장했다. 한국 생활에서의 어려움은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한국말을 금방 배웠나보구나.” 넌지시 던진 말에 혜진이가 정색을 했다.

“아니에요.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국어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한국 온 지 3년이나 지나서예요. 1~2학년 때는 수업 시간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혜진이의 한국어 실력은 4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 덕에 많이 늘었다.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셨는데, 삐뚤빼뚤 쓰는 글에 밑줄을 긋고 댓글을 달아주셨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썼어요.”

중국·베트남·몽골 등 국적이 다른 3개국 아이들이 모였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아이들의 웃음에는 국경이 없었다. 사진 찍는 내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 다녔다. 놀 때는 함께였지만‘미등록 이주 아동’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아이들은 사진 속에 등장하지 못했다. 혹여 신분 노출로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해서다. /박자연 객원기자

중국·베트남·몽골 등 국적이 다른 3개국 아이들이 모였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아이들의 웃음에는 국경이 없었다. 사진 찍는 내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 다녔다. 놀 때는 함께였지만‘미등록 이주 아동’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아이들은 사진 속에 등장하지 못했다. 혹여 신분 노출로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해서다. /박자연 객원기자

혜진이의 국어 공부 역사에서 최고 사건은 중학교 2학년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던 일이다.

“그때 엄마를 소재로 시를 썼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게 썼어요. 하하.”

밝고 명랑하기만 한 혜진이. 그런데 요즘은 공부를 계속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고 했다. 바로 ‘대학’ 때문이다. 수능 대비반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지만, 혜진이가 국내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혜진이는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혜진이의 부모님은 한국에 들어오실 때 가족 동반 입국이 금지된 외국인 근로자 신분이었다. 부모님은 입국 후 자리를 잡고 나서 혜진이를 불렀다. 혜진이의 예처럼 한국에서 일할 결심을 한 부모가 먼저 들어오고 나중에 자녀를 입국시켜 가족 재회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혜진이와 같은 아이들은 머물 수 있는 시한을 넘겨 불법 체류자가 된다.

“불법 체류라고 하더라도 교육은 받을 수 있어요. 거주지 확인이 되면 학교장 재량 하에 진학이 가능하거든요. 물론 이해심이 넓은 교장 선생님을 만나야 하긴 하지만.”

혜진이가 방과 후에 찾는 기관의 선생님은 이런 제도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혜진이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데에는 이런 선생님들과 기관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여전히 적지 않은 학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미등록 이주아동의 입학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계속 공부를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대학 문턱에서 좌절하게 되었으니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안타까워요. 참 아까운 아이거든요.”

미등록 이주 아동과 청소년에게 허락된 한국의 교육과정은 고등학교까지이다. 대학은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혜진이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몽골로 돌아가야 해요. 거기에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받은 후 재입국해서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을 시도해봐야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칠 경우 한국에서의 불법체류 사실이 확인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재입국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다. 설혹 통과가 되더라도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대학에 진학해 공부할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대학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는 한국의 친구들과는 다른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혜진이는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계속한다.

“배우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쨌든 길은 열리게 되어 있는 거 아닐까요?”

또래의 한국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혜진이의 꿈은 무역업을 하거나 통번역사가 되는 것이다. 몽골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고, 영어까지 배우면 3개 국어가 가능하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국에 혜진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중앙대학교 김성천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6월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20세 이하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의 수는 8259명이다. 이 수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도자료를 통해 여러 언론에서 한국 사회의 학령기 미등록 이주 아동 전체 수인 것처럼 인용되었는데, 수치 측정 과정에서의 한계를 감안하면 그 정확성은 장담하기 힘들다. 법무부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료를 통계로 재구성한 수치이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수치는 조사 과정의 한계로 인해 부모가 불법체류 신분인 상태에서 낳은 아이는 아예 빠진 숫자이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완 사무국장은 “기본적인 수치 파악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적절한 정책 수립과 예산 배정이 가능하겠느냐”며 “이 상태가 계속되면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한국사회에 정착시킬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혜진이는 그나마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은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한 후 공장이나 건설 현장 등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며 산다. 이조차 견디기 힘든 아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강제 출국된다. 하지만 이미 한국 생활과 한국말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은, 본국에 돌아가서도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신혜영 선생님은 “이 아이들이 본국에 간다고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한국에 건너왔기 때문에 본국에서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며 “인도적인 조치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5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10만 명이 넘는다. 이는 한국의 인구수 대비 2.2%에 해당하는 수치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말을 기점으로 노동 송출국에서 노동 수입국이 되었다. 이주 노동과 함께 국제결혼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외국인 근로자는 58만 명, 결혼 이민자는 13만 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2020년 5가구 중 1가구가 다문화 가족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추세와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외국인 주민에 대한 지원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2009년 5월 현재 외국인 주민에 대한 지원단체는 전국적으로 743개가 있다. 이 중 352개가 민간단체로 304개인 공공기관보다 그 수가 더 많다. 여기에 여러 기업들이나 종교단체도 참여해 외국인 주민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관한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정부 부처만도 8개에 이른다. 분명 양적으로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대비가 착실히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 뒤편에는 미등록 이주아동처럼 또 소외된 아이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지개 청소년센터 김재우 팀장은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은 문화 다양성을 강화하고 포용력을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 시혜성 지원 정책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공급자 중심의 지원정책을 버리고, 수혜자 입장에서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일까 라는 진지한 성찰을 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주 아동 문제가 발생했던 미국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이주 아동을 위한 ‘페어 스타트(Fair Start)’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플로리다의 HPIP라는 프로그램은 아이티 출신의 불법 입국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록 부모는 미등록이지만, 자녀들에게는 아동발달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아동의 교육에 있어서는 법보다는 보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의무교육을 실시해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인 자녀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 자녀가 의무교육을 받을 연령이 되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동적으로 취학통지서가 나오고, 이때 취학을 바란다는 의사를 표현하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본에서는 불법이나 합법 등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외국인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정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류특별허가’이다. 이는 일본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어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 오히려 적응이 어려울 것이 확실한 소수 미등록 이주아동의 경우 그 부모의 체류 자격을 합법화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혜진이에게 적용된다면 혜진이가 한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조금은 더 열리게 된다. 물론 일본에서는 까다로운 요건을 적용하고 있다. 아동의 경우 국내 출생 후 10년간 체류, 그 부모가 기타 범죄를 범한 경력이 없을 때 가능하다.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성동외국인근로자 센터 벽에는 ‘No man is illegal(사람이 불법은 아니다)’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혜진이처럼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이유들로 ‘미등록 이주아동’딱지가 붙은 아이들도 국가 시스템 안에서 공부하고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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