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Cover story] 소녀도 엄마도 네팔의 희망을 읽습니다

네팔 ‘서비스포피스 여성文解학교’
“돈만 주면 나눔? 그건 진짜 나눔이 아니다”
수도 카트만두서 12시간 14년 내전의 땅 ‘살라히 ‘아동센터·문해학교 건립
작은 도서관에선 아이부터 노인까지 공부 희망을 밝히는 건 ‘교육’

문해학교에 나오는 여성들은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쥐고 교실을 향해 뛰어왔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엔 네팔의 초등학교 교과서와 공책, 그 리고 연필이 있었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문해학교에 나오는 여성들은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쥐고 교실을 향해 뛰어왔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엔 네팔의 초등학교 교과서와 공책, 그 리고 연필이 있었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UN이 설정한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힘을 써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7월 4일 오전 11시 30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혼 람 하리 조시(Hon. Ram Hari Joshi)씨를 만나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84세의 나이에 하얗게 센 머리의 하리씨는 어렸을 때 간디를 만나 사회활동에 눈을 떴다. 네팔의 교육부 장관과 관광부 장관을 역임했고 지금은 국제 봉사NGO인 서비스포피스(Service For Peace) 네팔의 회장을 맡고 있다. 기자가 네팔에서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라는 얘기에 하리씨는 부드럽게 웃으며 한 단어로 답했다.

“그야 교육(Education)이지.”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 법이거든.”

순간 기자가 일주일간 네팔에서 만났던 여성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모우따리의 서비스포피스 여성문해학교(Women’s Literacy School)에서 만난 강가 마야(46)씨는 46초를 들여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쓰곤 활짝 웃었다. 종이에 꾹꾹 눌러쓴 글씨는 마치 종이에 새긴 듯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자나끼나가리 2구역 문해학교의 최연장자 드로나 쿠마리(62)씨는 4주 전에 문해학교를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과 딸 네 명을 기르고 모두 가르치고 결혼을 시킬 때까지” 60평생을 부엌과 밭, 외양간을 오갔던 드로나씨는 지금 네팔어 알파벳의 기초를 배우고 있다. 우리 말로 치면 ‘ㄱ·ㄴ·ㄷ’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두 여성은 모두 같은 얘기를 했었다. “버스를 탈 때, 낯선 곳에서 표지판을 볼 때, 물건을 살 때, 아이가 아파 약을 먹일 때, 매 순간” 글을 몰라 당황했고 낯선 이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핀잔을 들을 땐 속도 상했고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구하지 못해 곤란을 겪기도 했었다.

이들에게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열악한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우따리의 문해학교엔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푸른색 비닐천막을 시멘트 바닥에 깔고 앉아 책을 펼쳤다. 회색 빛 벽돌로 지은 집엔 나무 창문과 벽에 솟아 나온 검은색 시멘트 칠판뿐이다. 칠판 반대편 벽에 아라비아 숫자를 1부터 99까지 분필로 써놓지 않았다면 교실이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런 교실을 향해 뛰어온다. 네팔에선 정오와 두 시 사이엔 일을 쉰다. 너무 덥기 때문에 이 시간엔 집에서 낮잠을 자거나 시원한 곳에서 쉰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이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네팔어 교실까지 흙길을 뛰어온다. 비가 와도 뛰어 오고 흙먼지가 날려도 뛰어온다.

수업 시간이 되면 이들의 표정은 진지해진다. 선생님이 읽는 것을 따라 읽기도 하고 눈을 감은 채 방금 읽은 것을 외워보기도 한다. 빗소리가 너무 커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 되면 자습을 한다.

모우따리 문해학교의 네팔어 강사인 파빌라 데브코타씨는 “여성들이 문해교육을 받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족을 위해 영양 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데에도, 집안 살림을 위해 간단한 계산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데에도, 아이들에게 약을 먹일 때에도 글과 숫자를 알아야”한다 라며 문해교육이 이 지역의 건강 문제 해결과 지역민들의 미래 설계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그 효과가 가정 전체로 파급된다”고 한다. 여성들이 각 가정으로 돌아가 자식들과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하고 해당 지역의 남성들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네팔은 2010년 기준으로 인간개발지수가 0.428, 169개국 중 138위다. 인간개발지수는 국민소득·교육수준·평균수명·유아사망률 등을 종합 평가해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수다. 네팔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10개 국가 중 하나다. 네팔의 지역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씨앗인 여성문해학교와 같은 활동들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현장에서 주도하고 있는 28세 한국인 청년이 있다. 재단법인 서비스포피스의 프로젝트매니저로 ‘살라히(Sarlahi)’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건동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건동씨(오른쪽)가 현지 디렉터인 사르지씨(왼쪽)와 웃고 있다. 이 공간은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홀로 사용될 예정이다. 서비스포피스 재단은 자원봉사가 지구촌 지역사회 문제 해결의 창조적 대안이라는 문제의식하에 설립되었으며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이건동씨(오른쪽)가 현지 디렉터인 사르지씨(왼쪽)와 웃고 있다. 이 공간은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홀로 사용될 예정이다. 서비스포피스 재단은 자원봉사가 지구촌 지역사회 문제 해결의 창조적 대안이라는 문제의식하에 설립되었으며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살라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12시간, 산길을 타면 7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처럼 보이는 이 지역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네팔에서는 1994년 이후로 14년간 사람들이 마오이스트와 마오이스트가 아닌 사람으로 나뉘어 일종의 내전을 치렀다. 마오이스트가 정부 사람들을 죽이고 경찰이 마오이스트를 죽이는 과정에서 50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래서 이 지역에도 이른바 ‘전쟁고아’가 있다. 어떤 아이는 마오이스트인 부모를 잃었고, 어떤 아이는 경찰이었던 부모를 잃었다.

이건동씨는 이곳 살라히에서 재단법인 서비스포피스가 설립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전쟁을 통해 부모나 부모 중 한 쪽을 잃은 아이들을 포함해 보호가 필요한 아동 30명을 보호하고 있다. 아이들은 건동씨를 ‘아빠’라고 부른다. 또렷한 한국어 발음이다. 자리를 잡은 것 같지만 28살 건동씨는 아동센터와 여성문해학교 등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이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처음에 현지에서 일하는 스태프들과 사이가 원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네팔의 사정을 잘 몰라서 생긴 문제들도 있었고, 네팔 스태프들이 보기엔 언젠가 떠날 제가 너무 많은 간섭을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현장에서 해야 할 일들은 많다. 아동센터를 위해 공동모금회가, 여성문해학교와 지역 도서관사업을 위해 코이카(KOICA)가 사업비를 지원하지만 마른 강바닥 같은 현지 상황에 비하면 작은 우물 정도의 수준이다.

현장 스태프과 건동씨는 이 돈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지속가능한지’를 두고 토론을 벌인다. 지렁이를 사서 마을에 보급해 퇴비를 만드는 것과 아동센터에 공부방을 하나 더 만드는 것 중 무엇이 더 현지에 유용한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건동씨는 ‘나눔’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막연하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관심을 갖고 조사를 해야 할 겁니다.”

특히 건동씨는 “‘일방적으로 돈을 주면 되겠지, 돈 줬으니까 난 도와줬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보다 내가 주는 도움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돈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이 돈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잘 쓰이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것도 보인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문서로만 보아왔던 것들과 현장에서의 경험을 결합시킨 결과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컴퓨터 교실을 운영했었습니다. 당시 디젤발전기로 도서관의 전력을 충당해왔는데 이게 저전류에다 전압이 불안정하다 보니 컴퓨터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부팅을 하다 꺼지고 부팅을 하다 꺼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했습니다.”

현지에 태양열 발전기에 대한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물어 물어 발전기를 설치해 전압문제를 해결했더니 처음엔 컴퓨터 교실에 컴퓨터를 배우러 찾아오던 사람들뿐이었는데 갑자기 핸드폰 충전을 위해 젊은 사람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던 사람들이 휴대폰 충전을 해도 되느냐며 하나 둘 찾아오더니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이들 중심이던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얘기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이 지역엔 전기 공급이 부족하다. 6월 29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여덟 번 전기가 끊겼다. 전력 상황이 안 좋으니 거꾸로 말하면 ‘전기’가 마을 공동체를 모을 수 있는 힌트가 될 수 있다. 건동씨는 봉사자로 살라히에 찾아왔지만 이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건동씨를 따라나섰던 길에서 만난 네팔인들은 모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자나키나가르 3지역에 있는 도서관(Dream Catch ier Library)에서는 6000여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모인 아이들과 대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은 신문을 보기도 했다. 도서관에 찾아오기 힘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 뒤에 책 100권을 담을 수 있는 상자를 싣고 책을 배달하는 이동 도서관(Mobile Library)은 이 지역의 명물이다.

살라히의 아동센터에서는 아이들 30명이 외양간을 개조한 공부방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불이 나가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공부를 했다.

지금 살라히는 옥수수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는 때이다. 머리에 커다란 나뭇짐을 지고 가는 어린 아이들이나 넓은 논에서 혼자 모내기를 하는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에 바를 흙을 머리에 이고 마른 강바닥을 건너던 가족도 있었다. 이들의 일상에 책과 공부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가 지금 진행 중이다.

살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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