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장애인에게 불편 없는 사회가 곧 비장애인을 위한 겁니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소리 찾아준 사회적기업 ‘터치스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장애를 봅니다. 눈에 불편함이 보이지 않는 청각장애는 ‘그나마 낫다’고도 생각하고, 장애 1급으로 인정하지도 않죠. 그만큼 지원 속도도 더딥니다.”

장애인재활보조공학기기를 개발‧제작하는 사회적기업 ‘터치스톤’의 조영근 대표가 지난 5년 간 청각장애인을 돕는 기계 발명에 매달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청각장애인의 6%만 전혀 듣지 못해 수화가 필요할 뿐, 나머진 소음 등 주위 환경을 개선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찾은 해결책은 바로 ‘텥레코일 존’이었다.

◇소음 제거하고 필요한 소리만 키워주는 ‘텔레코일 존’ 국내 최초 도입

“전 세계적으로 청각장애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조 대표가 들려주는 청각 장애 세계는 낯설고, 놀라웠다. 그는 “모든 보청기 및 인공 와우(보청기와 같은 원리로 인체에 삽입하는 장치)가 이 주파수만을 받아들이는 ‘텔레코일’을 넣도록 규격화 돼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모두 상업용 등 여러 주파수들에 방해받지 않고, 장애인들이 소음 없이 보다 깨끗한 소리를 듣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일반 소리를 이 청각장애인용 주파수로 바꿔줘야 하는데, 해외에선 이 역할을 하는 기계가 공공장소에 설치 의무화 돼있기도 하고 법원‧극장은 물론 약국‧마트 계산대 등까지 일상적으로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전무했던 거죠.” 이 때문에 국내에선 값비싼 보청기나 인공 와우 속 텔레코일 장치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조 대표는 이 문제점에 착안, 국내 최초로 청각장애인용 주파수를 제공하는 시스템(일명 텔레코일 존)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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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톤이 개발한 소리를 청각장애인용 주파수로 바꿔주는 앰프./터치스톤 제공

10여 년 전 IT 관련 벤처 회사를 창업‧운영하며 쌓았던 기술 실력을 바탕으로 홀로 외국 제품들을 분석한지 반년. 마침내 조 대표는 사용 공간의 크기별로 시스템을 개발했다. 개발 전후 차이는 확연했다. 기자가 처음 껴본 보청기는 예상 외로 주변 소음까지도 크게 증폭돼 정작 듣고자 하는 소리는 정확히 들리지 않고 피로감만 컸다. 그런데 시스템을 스피커와 연결하니, 오롯 들어야 할 말만 특정 주파수로 바뀌어 또렷이 들리고 주변 잡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소리 찾은 청각 장애인들 반응 뜨거워…그럼에도 개발을 거듭하는 이유는?

조 대표는 개발 이후 직접 전국 장애인 학교, 복지시설 대부분을 찾아다니며, 이 시스템을 알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는 “특히 그 동안 듣기평가 때마다 애먹었던 학생들이 좋아하더라”고 웃었다. 현재 ‘터치스톤’의 시스템은 전국 20여 곳 학교에 설치됐다. 장애인들의 요청으로 특수교육지원센터와 장애인고용공단에 장애인보조공학기구로 등록되면서, 학교와 사업장에서는 기계 이용을 지원받을 수도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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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톤 시스템의 국내 적용 사례./터치스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애인들을 만날 때마다 미처 몰랐던 고충들을 하나둘 알게 됐기 때문이다. “휴대폰에 음악도 하나 없고, 전화 통화도 못하더라고요. 이전 개발모델은 고정 장치가 필요했는데, 이것이 없으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도 사용할 수 있겠다 싶어 모바일용 버전 개발에 돌입했죠.” 세계 최초 시도였던 탓에 훨씬 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고 카이스트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은 물론 전기통신 분야에 30년간 몸담았던 전문가까지 섭외,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00번도 넘는 실험 끝에, 마침내 올 해 휴대폰 이어폰 단자에 꽂기만 하면 텔레코일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발에 성공했다. 조 대표는 “장애인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다른 사정을 듣고 개발하다보니, 2011년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5년 동안 벌써 7개의 제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터치스톤_사진_사회적기업_터치스톤_20161010조 대표의 노력은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을 가져다줬다. 그는 “우리 제품을 쓰던 한 학생이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원래 수화통역과에 가려던 친구였죠. 보통 장애인은 장애인 관련 학과나 직업만 택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계를 통해 ‘장애에 한계가 없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고, 전자공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데요. 자기도 기술로 장애인에게 보탬이 되는 공학도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터치스톤의 시스템은 내년 ‘대전예술의전당’에 도입을 앞두고 있다. 조 대표는 ”앞으로 국내 많은 공연장과 공항들에도 시스템이 도입돼 청각장애인들도 공평한 정보 접근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어 “청각장애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고령화는 물론 전자기기 사용이 많아지면서 연령에 관계없이 난청인이 지난 5년 간 30% 이상 증가했다. “장애에 대비해야 합니다. 또 장애인에게 불편 없는 사회가 곧 비장애인에게도 편하죠.”

대전=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이 콘텐츠는 더나은미래와 열린책장의 ‘대전 사회적기업 현장 탐방기’ 프로젝트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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