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골칫덩이’에서 진정한 축구 선수가 된 아이들… “우승으로 보답할게요”

기아대책 희망월드컵 D-22
베트남 대표 선수단 진출 확정 후
격주 합숙 돌입… 응원 이어져

“한국 후원자에게 꼭 우승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골키퍼 타잉(13)군은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말했다. 타잉군을 만난 건 지난달 27일, 베트남. 전 세계 10개국 기아대책 결연아동이 참가하는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 참여를 앞두고 맹연습 중이었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연습경기 훈련은 그야말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일 대 일 수비를 하다 잽싸게 공을 가로채기도 하고, 과감한 장거리 슈팅도 이어졌다. 그때마다 순간 속도 100㎞ 이상인 공을 백발백중 막아낸 타잉군. 손바닥은 이미 벌겋게 부어 있었다.

타잉군이 축구를 시작한 건 외로움 때문이라고 했다. 집 나간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어린 타잉군을 홀로 두고 일을 나갔고, 그의 유일한 친구는 ‘축구공’이었다. 하지만 희망월드컵 대표팀에 뽑힌 후 전문 코치도 생기고, 한국후원자들 덕분에 ‘데뷔 무대’까지 갖는다는 생각에 타잉군은 요즘 하루하루가 설렘의 연속이다.

“몇 달 전부터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어요. 한국 후원자를 만나면 고마운 마음을 직접 전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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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방문한 베트남 ‘한베협력센터’에서 만난 희망 FC 11명의 선수들. 다음 달 한국에서 열리는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을 앞두고 모두 설렘이 가득했다./기아대책

 ◇후원으로 새 삶 찾은 아이들… 희망월드컵으로 협력 배워가

타잉군을 포함해 베트남 대표단, 희망 FC의 선수 11명은 한국 후원자들과 일 대 일 결연을 맺은 게 ‘행운’같다고 한다. 팀에서 가장 빠른 여자선수인 리(14)양은 2009년 후원받기 시작해 2년 전 심장병을 고치고 올해 대표 선수단에 뽑혔다. 공격수 쭝(14)군도 7년 전부터 후원을 받으며, 집안에선 월남전 이후 처음으로 정규 교육을 받고 있다. 쭝군의 아버지 히오우(39)씨는 “하노이에 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부터 피난을 다니며 형편이 계속 어려워졌다”며 “다행히 아이는 후원 덕분에 매년 상도 타고 운동도 잘해 집안의 ‘희망'”이라고 뿌듯해했다.

결연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이번 월드컵으로 한 팀을 이뤄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달려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최길호(33) 기아대책봉사단(이하 기대봉사단)은 “베트남 팀은 출전국 가운데 유일하게 서로 다른 지역 아이들로 구성된 연합팀”이라며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격주로 일주일간 합숙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유소년 축구단 전문 코치로 활동했던 이권능(29) 희망 FC 감독도 베트남 아이들에게 축구 기술은 물론 소양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기 위해 1년간 현지에 머물고 있다. 이 감독은 “아이들이 처음엔 억양도 다르고 처음 보는 다른 마을 친구이다 보니 서먹해하더니, 이젠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수신호를 보내며 함께 경기를 이끌어간다”고 흐뭇해했다. 팀에서 가장 왜소한 팝(13)군도 “축구는 단합해서 훈련할 때가 가장 즐겁다”며 웃었다. 그는 합숙 때면 왕복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온다. 비가 많이 와 길에 허리까지 물이 차는 웅덩이가 생겨도 스스로 건너오는 등 훈련에 빠지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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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연습이 한창인 베트남 기아대책희망월드컵 대표팀 선수들/ 기아대책 제공

◇응원 이어지며 자신감 커지는 아이들…마을 골칫덩이에서 ‘롤모델’로

희망월드컵을 향한 아이들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응원과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기아대책 CDP(Child Development Program·어린이개발사업) 사업장이 있는 지자체들은 유니폼, 선수용 양말 등을 지원했다.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은 팀의 한국행 소식을 듣고 훈련장인 ‘한베 협력센터’에 80여평의 인조잔디구장을 설치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모래밭에서 연습하며 넘어질 때마다 상처투성이가 됐던 아이들은 이제 마음 놓고 연습에 몰입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달 27일엔 한국에서 특별 선물이 왔다. 베트남 최초 K-리그에 진출,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뛰는 ‘차세대 축구 영웅’ 쯔엉(21) 선수가 희망 FC를 위해 특별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내라, 꼬렌(파이팅)!” 쯔엉 선수의 기합에 아이들은 함께 파이팅을 외쳤고, 쯔엉 선수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적어 사인한 볼을 받을 땐 웃음과 환호성이 계속 이어졌다.

최길호 기대봉사단은 “월드컵을 준비한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 아이들 표정이 정말 밝아졌다”며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예전에 ‘골칫덩어리’로 꼽히던 대표팀 남학생들의 변화가 가장 크다고 한다. “사춘기 가난한 환경 속에서 방황하게 되면 담배와 마약에도 쉽게 손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아이들이 축구에 에너지를 쏟고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니 매사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대표적인 주인공이 바로 희망FC의 주장 떰(14)군이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슬퍼하던 아이는 축구로 마음을 잡았고, 눈에 띄지 않는 수비수 역할도 자처해 몸을 사리지 않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떰군의 어머니 르엉(38)씨는 “축구를 시작한 후 키도 크고 항상 귀한 대접을 받더니, 이젠 자기도 먹을 것이 생기면 챙겨서 친구들에게 주는 등 나눔을 따라 하더라”며 “늠름한 청년이 다 됐다”고 기특해했다.

“희망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곳곳을 나는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어요. ‘불씨’가 마음속에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월드컵은 제겐 특별해요. 한국에 가서 우승하면 더 기쁠 것 같아요. 응원해주세요.”(떰)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개막식은 9월 6일 서울시 송파구 SK 핸드볼경기장에서 개최된다. 개막식 관람을 비롯해 보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hopeworldcup.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에 후원과 응원을 보내주세요.후원계좌: KEB하나은행 353-933047-45937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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