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마음에 예술이 오자 ‘변화’가 시작됐다

GS칼텍스 ‘마음톡톡’ 4년 분석
캠프부터 16주 프로그램까지 4년간 아이들 8400여 명 참여

엄마뻘 되는 여자들은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걱정하는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지난해 가을, 김하정(31) 무용·동작치료사가 만난 이재혁(가명·12)군 이야기다. 우울증을 앓던 재혁군 엄마는 지난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는 담쌓은 지 오래였다. 아무도 없는 낚시터에 혼자 앉아있는 시간만이 재혁군의 유일한 낙이었다.

김하정 무용치료사가 재혁군을 만난 건, GS칼텍스의 아동·청소년을 위한 심리 정서 지원 프로그램 ‘마음톡톡’을 통해서였다. 학교 내 마음이 아픈 10명의 친구와 함께 3개월간, 12번에 걸친 ‘진한 만남’이 시작됐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기도 하고,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도 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던 재혁군을 비롯해 뻣뻣하게 굴던 아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부드러워졌다. 무용 치료가 진행된 12회기 마지막 시간, 자기를 표현하는 물건을 가져와 소개하는 자리에서 재혁군이 가져온 건 낚싯대.

“자기가 가장 아끼는 거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너희를 내 낚시터로 초대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 친구한테는 그동안 낚시가 사람들을 피해서 숨는 동굴 같은 것이었는데, 이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했구나 싶었죠. 3개월 동안 매주 1시간 반씩 만나면서 정말 많이 변한 친구예요. 가장 스트레스받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하고요.”(김하정)

김하정 무용·동작치료사는 “‘마음톡톡’ 치료사로 함께한 지 4년째인데,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가 눈에 보이다 보니 학교 선생님들도 만족도가 높고 치료사들도 보람이 크다”고 했다.

GS칼텍스 제공_사진_탈북 남북하나재단
‘마음톡톡’은 올해 3월부터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탈북 아동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지난 3월,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열린 ‘마음톡톡’ 예술치유 현장_GS칼텍스 제공

◇긴 호흡으로 어루만지면 아이들은 변화합니다

‘마음이 힘든 아이들을 예술을 통해 어루만지자.’

아이들을 위한 심리 정서 예술치유 프로그램 ‘마음톡톡’이 시작된 취지다. ‘마음톡톡’은 GS칼텍스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 2013년 시작된 프로그램이 올해 4년째다. 그간 마음톡톡을 거쳐 간 아이들만도 8400여 명. 짧게는 2박 3일 ‘치유캠프’부터 길게는 16주에 이르는 프로그램까지, 아이들과 함께 깊고 느린 호흡을 이어왔다.

gs그래픽
지난해 1학기 ‘마음톡톡’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올해 다시 마음톡톡 프로그램을 신청한 유근영(28) 삼정중학교 전문상담교사는 “지난해엔 학교 적응위기 친구들만 ‘마음톡톡’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정규 수업시간을 조정해 학년 전체가 참여한다”며 “한 학기에 90분씩 12회, 총 24교시의 정규수업시간을 조정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닌데 교장선생님부터 담임선생님까지 아이들의 변화를 목격하다 보니 모든 학생이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전주소년원 수감자 세 명과 함께 ‘마음톡톡’ 프로그램 치료자로 활동한 홍선미(52) 청의(청소년의안전을생각하는의사들의모임) 소장은 “‘마음톡톡’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아이는 조기 출소했고 다른 아이도 모범생으로 꼽혀 야외 활동에도 다녀왔다”며 “전주소년원 관계자들이 심리 치료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고 했다.

◇민·관 전달체계 협력해 깊고 넓게

시작은 소외계층 아동이었다. 굿네이버스 산하 심리·정서 지원기관인 ‘좋은마음센터’ 13곳과 협력해 지역사회 내 소외된 아이들을 만났다. 2015년, ‘마음톡톡’은 교육부와 협약을 맺었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교로 들어가기로 한 것. 기존 교육부의 위기학생 예방체계 ‘위(Wee)’ 전달체계를 활용해 위클래스, 위센터, 위스쿨에서 ‘마음톡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교실힐링’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공교육 전달체계가 만나 시너지가 만들어진 것. 신주식 교육부 장학관은 “기업에서 먼저 나서서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교와 손잡고 학생들을 변화시켜간다는 점에서 정말 의미 있는 사업”이라며 “학교 선생님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이 사업이 잘 ‘모델화’되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부터는 남북하나재단,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등 여러 새로운 파트너들과 협력해 탈북아동, 보호관찰이나 조건부 기소유예 청소년 등 더 많은 아이들에게 ‘마음톡톡’이 찾아갔다.

◇’사람’을 키우려 ‘사람’을 키우는 사업

“예술치료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해요. 치료자 능력에 따라 결과 차이가 큽니다. ‘마음톡톡’의 강점이 거기 있다고 봐요. ‘마음톡톡’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예술치료로 석사 학위 이상을 지닌 예술치료사 분들에게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하거든요. 치료사들은 전문성을 쌓고, 그게 다시 아이들에게 치유 효과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 입니다.”

지난 2014년 10월에 열린 마음톡톡 예술치유 캠프 현장/ GS칼텍스
지난 2014년 10월에 열린 마음톡톡 예술치유 캠프 현장/ GS칼텍스

김나영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2013년 ‘마음톡톡’이 시작할 때부터 GS칼텍스에서는 ‘전문 예술치료사 인력 양성’에 힘을 쏟았다. 선발한 치료사들을 대상으로 이론과 임상 교육을 진행하고, 교수진의 치료사 수퍼비전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김하정(31) 무용·동작치료사는 “이 분야에서 유명하신 대가(大家) 분들과 다른 치료사들이 함께 모여 사례회의나 종결회의, 워크숍 등을 할 때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다”면서 “전문가로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 데서 얻는 만족감도 크다”고도 했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교육과정 개발에도 나섰다. 2개 이상의 예술매체를 활용하는 ‘매체통합형 치료사’를 양성하기 위한 50시간짜리 전문교육과정을 개발 중인 것. GS칼텍스 내 매체통합 교육개발을 담당하는 이현상 CSR추진팀 대리는 “지금까지 미술치료는 미술만, 음악치료는 음악만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해외에서는 여러 매체를 통합해 오감을 자극할 때 예술치유 효과가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많고 매체통합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교육이 없다 보니, 교수님 세 분과 함께 맨땅에 부딪치며 과정을 개발해가는 중”이라고 했다.

올해로 4년. ‘마음톡톡’은 훨씬 더 긴 그림을 그린다. “2013년 시작했을 때부터 3년까지는 모델을 개발하는 단계였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예술치유의 효과성 연구에 힘을 쏟고, 치유 대상을 넓히는 노력을 해나갈 겁니다. 이후엔 2021년을 목표로 ‘마음톡톡’ 사업 자료를 공유하고 사회 캠페인화하려고 해요. 기업이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이후엔 정부와 사회가 같이 협력해 아이들의 심리 정서 문제만큼은 확실히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박필규 GS칼텍스 CSR추진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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