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교육 인력은 부족하고 운영체계는 안 잡히고

건강장애아 늘면서 병원학교 중요해지는데…
정부 지원 점점 줄기 때문에 각 시·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교육의 질과 교사역량 개선 필요

서울성모병원 본관 22층에 위치한 소아혈액종양병동. 병동을 들어서자마자, 환자복을 입고 팔에는 링거, 얼굴에는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슬프고 속상할 것만 같은데, 정작 아이들의 눈은 반짝거린다. 병동 입구에 마련된 ‘병원학교(교장 김학기 교수)’ 때문이다. 소아암 환아들을 위해 교과목 수업, 특별 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교실 안을 들여다보니 호기심 많은 민정이(가명)가 일대일 수업을 받고 있다. 두 살 무렵 ‘악성 빈혈’ 진단을 받은 민정이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병원생활 탓에 열 살이 되도록 학교는 구경도 못해봤다. 민정이에게는 뭔가를 배우는 것도, 선생님과 친구라는 존재도, 칭찬받는 기쁨도 다 병원학교가 처음이다.

어머니 박미희(가명)씨는 여전히 밝고 활달한 아이가 대견하다. 아이에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 병원학교도 고맙다.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힘든 투병생활 중인 한 아이는 “병원학교가 고통스러운 치료와 지루한 병실생활 속 비타민”이라 고백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총 4431명의 아이에게 ‘비타민’이 되어 준 병원학교.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의 ‘비타민’이 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 교육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서울성모병원 병원학교 제공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힘든 투병생활 중인 한 아이는 “병원학교가 고통스러운 치료와 지루한 병실생활 속 비타민”이라 고백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총 4431명의 아이에게 ‘비타민’이 되어 준 병원학교.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의 ‘비타민’이 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 교육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서울성모병원 병원학교 제공

“병원학교를 다니면서 짜증내거나 징징대는 게 줄었어요. 어른도 힘든 게 투병생활인데 아이는 오죽하겠어요. 몸은 아프고 치료는 힘들어서 소아암 아이들이 보통 예민해요. 그러니 아이 옆에서 24시간, 그 짜증과 투정을 받아줘야 하는 엄마도 보통 힘든 게 아니죠. 엄마 잘못인 것만 같아서 죄책감도 들고,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불안하고 무섭기도 하고요. 그런데 병원학교 덕분에 아이가 밝아져서 참 감사하죠.”

민정이와 같은 건강장애아동은 지난해 2174명. 집계를 시작한 2006년부터 계속 증가 추세다〈그래픽〉. 건강장애아동은 심장장애·신장장애·백혈병·소아암 등 만성질환으로 3개월 이상의 장기입원이나 통원치료로 인해 학교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선정된 아동을 말한다. 이러한 건강장애학생들을 위해 병원 내 설치된 학교로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시설이 바로 병원학교다. 소아암 등 건강장애아동의 완치율이 높아지면서 치료 후 학교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병원학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1999년 서울대병원에서 최초로 시작한 병원학교는 어느덧 전국 32개로 늘어났다. 건강장애학생 및 단기입원환아 등 작년 한 해 총 4431명이 병원학교 수업에 참여했다.

미상_그래픽_건강장애아_병원학교_2011인제대학교 간호학과 오진아 교수는 “이제는 건강장애아동의 치료뿐 아니라 학습 및 사회정서적 발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의 발달로 완치되어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건강장애아동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소아암의 경우도, 1930년대 1~3%에 불과하던 완치율이 오늘날엔 70~80%에 달하거든요. 이 아이들이 건강해져서 학교로 돌아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병원학교가 너무나 중요하죠.”

병원학교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노력도 시급하다. 이에 더나은미래팀은 전국 병원학교 29곳을 전화 인터뷰해 병원학교의 개선 사항을 물었다.

인터뷰 결과, 가장 많은 교사들(62.1%)이 병원학교 설립 및 운영의 기준과 체계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오 교수는 “교실 면적이나 채광, 소아병동과의 거리, 간호사 상주 등 응급상황 예방 및 대응책 등 하나하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교사는 “업무 매뉴얼이나 문서양식조차 하나 없이, 모든 게 교사 개인의 역량과 열정에만 의존하고 있어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 외 지역 병원학교는 협약을 맺은 인근 학교의 특수교사 파견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데, 불완전한 ‘파견’ 제도에서 오는 어려움도 크다. 전산화된 업무시스템 접근은 교내에서만 가능하기에, 작은 업무 하나를 위해서도 본교와 병원을 오가야 한다. 보고할 때도 병원과 학교, 두 곳을 거쳐야 한다.

“수업 진행뿐 아니라, 부모님 상담, 행정 업무, 행사 진행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 하니 너무 힘들죠. 보고도 병원과 학교 양쪽에 해야 하는데 의사선생님은 바쁘지, 학교는 자주 오가기 쉽지 않지, 힘들어요.”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한 병원교사는 “아이들만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보고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혀를 찼다.

예산이 제때 지급되지 않는 것도 큰 어려움의 하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6억3200만원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건강장애학생은 매년 늘어나는데 예산은 오히려 매년 줄어, 5년 전보다 3억4800만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이조차도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개별 병원학교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 특수교육과 박성우 교육연구사는 “지난 2월 특별교부금을 각 시·도 교육청으로 내려보냈고, 각 교육청에서도 검토가 마무리되어 곧 전달될 것”이라 설명하면서 “재정 지원이 보다 원활히 되기 위해서라도, 정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각 시·도에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병원학교 개선의 중요한 과제로 교육의 질적 향상(62.1%)도 강조했다. 병원학교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교사역량 강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학령 분포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나이도, 수준도 다르고 질환의 정도도 다르니, 다양한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짜기가 쉽지 않다.

“병원학교가 사실 일반교육과정으로 진행하기도, 특수교육과정으로 진행하기도 쉽지가 않아요. 아이들이 투병 중이다 보니 체력도 약하고 집중력도 약하죠. 갑자기 치료 스케줄이 생기거나 몸 상태가 나빠질 때도 많고요. 수업의 연속성이 자꾸 깨지니, 아이들이 일반교육과정을 따라가기란 버겁죠. 그렇다고, 또 퇴원 후 돌아가서 받을 교육과정도 일반교육과정인 아이들에게 특수교육과정을 진행할 수도 없고요.”

교사들은 교사 인력의 확충(62.1%)도 시급하다고 했다. 현재 한 병원학교당 전담인력 수는 평균 1.14명. 다양한 학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과목 지도, 특별활동 진행 등을 교사 한 명이 모두 해 나가기란 쉽지 않다. 초등교사인데 중·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국어 전공인데 영어나 수학을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어려움을 덜고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소위 ‘빅 5’로 불리는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의 경우, 병원학교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실습대학생은 병원학교당 평균 69명이다. 반대로 서울 외 지역의 경우, 보조원·인턴교사·순회교사·자원봉사자를 모두 합쳐도 평균 2.4명에 불과하다. 월평균 이용 환아 수 1인 대비 0.1명으로 ‘Big 5’ 병원의 0.98명의 약 10%에 불과하다.

교육과학기술부_그래픽_건강장애아_병원학교현황_2011실정이 이러하니, 어머니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은 사치다. 어머니를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 마련한 곳은 서울대병원학교·울산대병원학교·화순전남대병원학교 단 3곳뿐이다. 비즈공예·퀼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화순전남대병원학교의 박규영 교사는 “엄마들의 정서·심리 부분을 돌보지 않으면, 아이들을 보듬기 어려워 작년부터 시작했다”면서 어머니 프로그램의 의의를 강조했다.

병원학교에 대한 인식과 협력 제고(31.0%)도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뽑혔다. “아이들이 투병생활을 잘 이겨내 학교로 돌아가 적응하려면, 원래 있었던 학교와의 소통·협력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건강장애등록, 출석인정 등의 처리를 위해 담임 선생님들과 연락을 해 보면, 병원학교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죠.” (병원학교 교사 정OO)

병원학교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니, 퇴원 후 적응을 잘하도록 돕는 협력 체계는 더욱 부족하다. “항상 집과 병원에만 있다가 처음 밖으로 나가는 거라 아이들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간혹 관심 많은 담임선생님들도 계세요. 반 아이들에게 투병 중인 친구를 위해 번갈아 편지를 쓰거나 문자를 보내도록 지도하는 선생님도 계시고, 아이 퇴원을 앞두고 미리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선생님도 계세요. 그러나 이런 부분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으니,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퇴원 후에 대한 협력 체계가 빨리 마련되면 좋겠어요.” (병원학교 교사 유OO)

취재 기간 내내, 병원학교 교사들은 “무엇보다도 환아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나씩 개선되고 해결되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행정적 편의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 우리 아이들을 숫자나 비율로만 따지지 말고 소중한 한 명 한 명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게 제일 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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