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음악으로 배운 자신감, 音樂으로 나눌 거예요”

CJ문화재단 ‘튠업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음악’이에요. 친구들이랑 합주하는 게 제일 재밌죠.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후배들에게도 돌려줄 겁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다솜학교’ 음악실에서 만난 백영강(18·다솜학교 3년)군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 학교는 다문화가정 2세를 위한 대안학교다. 백군 역시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008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후로 한국어가 서툴러 말수도 줄고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다. 2년 전, 그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인디밴드 ‘뷰티핸섬’ 김지수(32)씨와의 만남이었다. 김씨는 학교를 찾아와 피아노를 가르쳐줬다.

지난 4일 ‘다솜학교’에서 ‘튠업’을 통해 인연 맺은 정원영 호서대 교수와 인디밴드 ‘뷰티핸섬’, 그리고 밴드에서 음악을 배우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지난 4일 ‘다솜학교’에서 ‘튠업’을 통해 인연 맺은 정원영 호서대 교수와 인디밴드 ‘뷰티핸섬’, 그리고 밴드에서 음악을 배우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처음엔 실수할까 봐 무서웠는데, 선생님이 옆에서 ‘틀려도 좋으니 마음껏 해봐’라고 응원해주셨어요.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제 어떤 음악이든 10초 안에 첫 줄을 외워 칠 정도로 실력도 늘었죠.”

백군의 멘토인 김씨에겐 또 다른 사연이 있다. 2014년 인디밴드 사정이 어려워 해체 위기까지 몰렸을 당시, CJ문화재단의 신인 음악가 지원 사업인 ‘튠업(Tune Up)’에 선정돼 터닝 포인트를 맞았던 것. 김씨는 “지원과정에서 배우고 받은 게 많아, 미래 세대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현재 뷰티핸섬 외에 마오가니킹 등 16명의 인디음악가가 매주 다솜학교에서 ‘튠업 음악교실’을 연다. 모두 튠업 사업의 지원을 받은 멤버들이다. 나눔이 나눔을 낳은 것이다.

‘신인 예술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류도 이어진다’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CJ문화재단은 2010년 ‘튠업’ 사업을 시작, 역량은 있지만 아직 앨범을 내지 못한 음악가들을 선정해 정규 음반 발매뿐 아니라 국내는 물론 일본·유럽 등 해외 공연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왔다. 이렇게 6년간 발굴·지원한 음악가는 100여명에 이른다.

특히 1년 지원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우리나라 밴드계의 대표인 김창완, 정원영, 크라잉넛 등 선배 뮤지션들과 네트워킹을 맺고 다양하게 협업할 수 있게 돕는다. 뷰티핸섬도 정원영 호서대 실용음악과 교수와 2년 넘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뷰티핸섬 김지수씨는 “정 교수님은 여전히 공연 때마다 와서 조언을 해주신다”며 “나이 어린 다솜학교 학생들을 존중하는 것도, 까마득한 후배인 우리의 스타일을 그대로 인정해주시는 정 교수님께 배웠다”고 했다.

재단은 음악 이외에 영화와 뮤지컬 및 연극 분야도 지원한다. 튠업 사업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내지 못한 영화, 뮤지컬, 연극 부분의 신인 창작자들을 위해 ‘프로젝트S’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CJ문화재단이 뮤지컬 및 연극 분야에서 신인 창작자를 지원하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의 선정 작품 예비(리딩) 공연 모습./CJ문화재단
CJ문화재단이 뮤지컬 및 연극 분야에서 신인 창작자를 지원하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의 선정 작품 예비(리딩) 공연 모습./CJ문화재단

완성 작품 전 상태(일명 트리트먼트)로도 심사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 선정 이후 6개월 동안 현직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거쳐 양질의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나의 PS 파트너’라는 영화를 상영해 관객 180만명을 동원한 신인 감독 변성현씨도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6년간 완성된 뮤지컬 34편 중 11개 작품도 외부 제작자와 계약 후 공연됐다. 뮤지컬 ‘풍월주’를 무대에 올린 후 세 번째 공연을 마친 작가 정민아씨는 “열정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창작자을 전문가들과 연결해주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게 일시 금액 지원보다 더 힘이 된다”며 “이 때문에 재단의 지원 사업 경쟁이 해마다 더 치열해진다”고 했다.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예술가들과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어오는 비결은 뭘까.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마다 젊은 창작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매년 튠업, 프로젝트 S, 크리에이티브마인즈 등 사업별로 지원자들을 모아 연간 계획을 발표하고, 이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참고해 사업을 수정·보완한다. 이상준 CJ 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지난해 튠업 음악가들이 발매한 ‘들국화 30주년 헌정 앨범’ 역시 음악가들이 직접 낸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재단에서는 음악가들 각자의 곡을 엮어 홍보 앨범을 내려고 했죠. 그런데 음악가들이 좀 더 의미 있는 앨범을 만들자며 자기 PR 대신, 들국화 1집 곡을 리메이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어요. 들국화 멤버들마다 저작권 동의를 받느라 고생은 됐어도 끝나고 모두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몰라요.”

이 과정에서 관련 종사자들의 의견까지도 사업 기획에 더한다. 이 국장은 “이번에 광흥창 CJ아지트의 개보수 방향을 찾을 때도 주변 기획사 대표들과 만나 상생방안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이채욱 CJ주식회사 부회장은 “그룹은 재단을 통해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문화 인재들을 계속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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