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이효리 결혼식 만든 환경디자이너…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에코웨딩으로 하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왔어요. 저희는 꽃이든 음식이든 답례품이든 결혼식이 열리는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식이 열리는 장소가 제주도라 번거로운 일이 많을 텐데도 꼭 취지를 지키면서 결혼식을 진행하고 싶다기에, 신랑신부가 환경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인가 보다 했죠. 유선 상담을 끝내고 얼마 뒤 정식으로 상담을 신청하는 카드가 날아왔는데 신부 이름에 ‘이효리’, 신랑 이름에 ‘이상순’이라고 적혀있더군요. 처음엔 누가 장난을 친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전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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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인 이효리와, 천재 기타리스트 이상순의 결혼식. 모두가 주목하는 ‘세기의 커플’답게 암암리에 드레스를 비롯한 온갖 협찬 제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친환경 결혼식’을 선택했다. 합성섬유 대신 옥수수 원사로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호텔 뷔페 대신 동네 맛집 음식으로 하객을 대접하는 조그만 사회적기업의 대표가 결혼식 기획을 맡았다. 국내 ‘에코웨딩’의 선두주자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37) 대표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하객 의자와 화분 하나까지 모두 제주도 현지에서 공수한 제품으로 꾸며졌다. 파파라치를 피하기 위해 결혼식이 치러질 야외공간은 리넨과 면으로 벽을 만들어 둘렀다. 이 가림막 천은 결혼식이 끝나고 난 후 ‘커튼을 만들고 싶다’는 하객에게 선물로 줬다. 남은 천으로는 에코백을 제작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환경과 마을을 생각하는 기획에 신랑과 신부 모두 적극 동참해주셨어요. 이효리, 이상순씨가 결혼식을 부탁할 때 내건 조건은 ‘비공개로 진행할 것’과 ‘상업적이지 않을 것’ 딱 두 가지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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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대표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까르띠에가 선정한 ‘세계의 여성 창업가 15인(WOMEN’S INITIATIVE AWARD)’에 뽑히기도 했다. /대지를위한바느질 제공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2008년 설립된 친환경 웨딩 전문 업체다. 2009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경재 대표가 처음부터 ‘친환경디자인’을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유명 청바지 브랜드 MD와 방송국 의상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여느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예쁘고, 유행에 맞고, 잘 팔리는 옷’을 만드는데 전념했었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의 기준이 매출로 대체되는 회사생활은 그에게 디자인의 즐거움을 빼앗아 갔다. 결국 이 대표는 2년 만에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로 귀농을 결심했다.

“주말에는 빨래를 하고, 주중에는 마을 소일거리를 도우면서 지냈어요. 신기한 게 시골에 살다 보니 쓰레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타는 쓰레기는 불쏘시개로 쓰고, 과일 껍질은 오리 먹이로 주고, 유리병 같은 재활용품은 모아서 팔고……. 1년을 강원도에서 지내며, 남의 이야기 같았던 ‘자연친화적 삶’이 완전 생활이 됐죠.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윤호섭 교수님이 ‘환경디자인’에 대해 강연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다시는 패션을 안 할 줄 알았는데,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환경과 디자인이라니. ‘저걸 꼭 배워야겠다’ 싶어서 2005년 국민대 그린디자인대학원에 등록했죠.”

다시금 디자인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 대표가 에코웨딩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일주일 내내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랭킹을 도배한 호화 결혼식을 보며, 이 대표는 환경을 생각하는 결혼식을 고민하게 됐다.

“웨딩드레스는 대부분 합성섬유로 만들어져요. 천연 실크로 드레스를 만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든요. 대여를 한다고 해도 백색이다 보니 3~4번만 입으면 금방 망가지고요. 몇 시간 입지도 못할 옷인데 끝은 매립하면 안 썩고, 태우면 유해한 환경오염물질인 거죠. 짧은 순간을 위해 너무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한 번 입고 말 옷이라면, 아예 일회용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 이 대표는 대학원 수업시간에 받은 생분해 비닐을 활용해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입고 나면 그대로 땅에 묻어 분해할 수 있는 최초의 친환경 드레스였다. 이 대표의 도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의 한 박람회에서 옥수수로 만든 실을 발견한 이 대표는 옷감을 공수해 반년 동안 혼자 14벌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2005년 열린 그녀의 첫 친환경 웨딩드레스 개인 전시회,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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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결혼식은 일반 웨딩과 다르게 화분으로 꽃 장식을 대신한다. 화분은 하객 선물용으로 나눠줄 수 있다. /대지를위한바느질 제공

전시회가 끝난 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전시 사진을 보고 ‘드레스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달에 3~4벌 주문 제작하던 것이 다음 달에는 8벌, 그 다음 달에는 15벌로 늘어났다. 결국 2008년 전시회 이름을 딴 회사를 차리고, 2009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처음에는 드레스만 만들어드렸어요. 그런데 예비부부들과 상담을 하다 보니 결혼식의 다른 요소들도 친환경적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머리를 맞댄 끝에 가장 쉬운 청첩장부터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재생지와 콩기름을 사용해서 청첩장을 만들고, 꽃 장식은 살아있는 화분으로 바꿨죠. 음식은 유기농으로 키운 재철 식재료로 만들고요. 이렇게 하나씩 바꾸다 보니 2010년쯤에는 ‘에코웨딩’의 모습을 갖추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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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뿌리가 살아있는 부케. 결혼식이 끝난 후 화분에 심어 보관할 수 있다. /대지를위한바느질 제공

2013년에는 성북구를 중심으로 한 마을결혼식 상품도 나왔다. 동네 헤어숍과 맛집, 꽃집이 신랑신부를 위해 함께 결혼식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비용은 일반 웨딩홀에서 진행하는 상품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대형 웨딩홀만 이득을 보는 일반 결혼식과 다르게 매출의 80% 이상이 마을로 환원되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닭강정, 보쌈, 떡 등 음식 하나하나가 동네맛집의 대표 메뉴로 구성돼 고객 만족도도 높다. 남은 음식은 포장해갈 수도 있다. 하객은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게는 손님을 늘리고, 결혼식은 마을의 축제가 되는 일석삼조 행사인 셈이다. 지금까지 성북구에서만 진행되던 마을결혼식은 올해 8월부터 은평구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옥(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에서도 친환경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다. 오전에는 70~80명의 친지들과 함께 집 뒤 작은 정원에서 야외 결혼식을 치르고, 1층과 지하에서 식사를 대접한다.  오후부터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홈파티 형식의 2부 결혼식이 시작된다. 정원에서는 바비큐를 굽고 건물 안에서는 담소가 이어진다. 총 결혼식 시간은 약 5시간. 외국영화에서나 보던 ‘하우스웨딩’ 스타일이다. 1부와 2부로 나눠서 진행하는 이 결혼식 스타일은 이경재 대표가 2013년 이효리·이상순 커플의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기획한 아이디어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7쌍의 커플이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옥에서 친환경 결혼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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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옥에서 치러진 하우스웨딩. /대지를위한바느질 제공

“마을결혼식이나 하우스웨딩 모두 비용은 일반 결혼식과 거의 비슷해요. 하객 200명 규모에 1400만~1600만원 정도죠. ‘에코웨딩’은 저렴한 결혼식이 아니라,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결혼식이에요. 기왕 같은 돈을 쓸 거라면 더 친환경적으로, 이웃을 생각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은 예비부부를 위한 옵션인 셈이죠.”

지금까지 ‘대지를 위한 바느질’과 함께한 신랑신부는 약 300쌍에 이른다. 이경재 대표는 기억에 남는 신랑신부를 묻는 질문에 “어느 한 커플을 꼽을 수 없을 만큼 모두가 기억에 남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중 결혼식을 예로 들 때마다, 마치 자신의 결혼기념일인양 년도와 날짜를 정확하게 언급했다. 이 대표는 “단어도 생소한 ‘에코웨딩’에 뜻을 모아주고,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준 신랑신부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친환경 결혼식을 전파한 주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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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이 끝난 후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도록 수선해준다. /대지를위한바느질 제공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통해 친환경 결혼식을 하고 싶은 커플은 최소 3개월 전에 회사로 문의를 하면 된다. 웨딩드레스는 옥수수, 한지, 모시 등으로 제작해준다. 턱시도는 울 원단 또는 쐐기풀로 만들 수 있다. 예산에 따라 저렴하게 기 디자인 제품을 가공할 수도 있고 상담을 통해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제작할 수도 있다. 제작한 예복은 결혼식이 끝난 후, 피로연용 칵테일 드레스나 평상복으로 수선받을 수 있다. 천연재질로 만들었지만, 내구도가 일반 옷감 못지않아서 관리만 잘하면 기성복처럼 오래 입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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