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일)

흙수저에서 수십억 매출 내는 대표로… “회사 규모 커질수록 나눔도 커지네요”

장백관 ㈜유로자전거나라 대표

유럽 전문 가이드로 1인 창업… 15년 만에 유럽 8개국 법인 설립
매년 수녀회에 수천만원 기부…보육원 퇴소 청년들 정규직 채용

장백관 (주)유로자전거나라 대표는 "다음 세대에선 가난해서 배우기 어렵고 배우지 못해 다시 가난해지는 빈곤의 순환 고리가 없어지길 바란다"며 지속적인 나눔을 약속했다.
장백관 (주)유로자전거나라 대표는 “다음 세대에선 가난해서 배우기 어렵고 배우지 못해 다시 가난해지는 빈곤의 순환 고리가 없어지길 바란다”며 지속적인 나눔을 약속했다.

 

보육원에서 자라 혈혈단신으로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 35세 청년은 어릴적 동경하던 여행을 직업으로 삼았다. 유럽 각국에서 주요 유적지·박물관·미술관을 돌며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깊이있게 들려주는 ‘유럽 전문 지식가이드’ 1인 여행사를 창업했다. 15년만에 유럽 8개국에 법인을 설립, 직원 110명과 연매출 수십억원의 글로벌 강소기업 대표로 우뚝 섰다. 한 편의 영화같은 이야기. 그 주인공은 바로 장백관(51) ㈜유로자전거나라투어 대표다. 지난 3일,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마주앉은 그는 성공신화만큼 ‘맛깔나는’ 나눔 스토리를 쉼없이 풀어냈다.

◇20만 누적 고객 돌파···비결은 열정이 빚은 입소문

“첫 기부요? 이탈리아 로마 ‘거지’에게 건넨 50센트요. 저도 어릴때 거리에서 동냥하며 살았거든요. 껌 팔고, 신문 팔고, 시장바닥에서 노숙하고, 안해본 일이 없었죠. 그러던 제게 가이드를 해달라는 예약 전화가 쏟아졌고, 통장에 조금씩 돈이 쌓여갔어요. 그때부터 매일같이 신께 약속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만큼 정직한 대가를 주신다면, 저도 당신이 좋아하는 일(나눔)을 평생하겠다고요.”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재혼으로 방임되던 장 대표는 7살때부터 길거리를 전전했다.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시작한 것도 11살 무렵. 미국 알로이시오 슈워츠 신부가 개원한 ‘서울 소년의집(현 서울시 꿈나무마을)’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꿈나무마을을 나온 그의 삶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부산 동아대에 입학해 농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이내 포기했다. 이후 이태원 클럽 DJ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 셋엔 금융회사에 입사해 카드영업을 했다. 1등 판매원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매번 승진에선 제외됐다. ‘소년의 집’ 출신이란 꼬리표 때문이었다. 사표를 던진 그는 배낭을 메고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잖아요. 로마 유적지에 널린 돌무더기 앞에서 가이드의 이야기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들이 신기했어요. 1년 넘게 사전을 놓고 일일이 번역하면서 유럽 역사, 미술사, 종교사를 독학하기 시작했죠. 35세에 1인 창업을 한 비결요? 유럽사 속에서 카이사르의 용기, 줄리어스 시저의 도전정신을 배운 덕분입니다.”

장 대표의 타깃은 유럽 여행을 온 한국인. 1인당 1만5000원씩만 받고 하루 종일 로마를 안내했다. 미술관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역사적 배경과 인물사들을 설명하려면 반나절도 부족했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고객이 원하는 만큼 로마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가이드를 했다. 가이드비용을 제외한 숙박료·입장권 등 별도 모든 비용은 고객들이 현지에 직접 지불하도록 했다. 불필요한 쇼핑 및 옵션 상품으로 여행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하기 위함이다. 돈이 없는 학생들에겐 무료로 가이드를 했다. 투어가 끝난 후엔 밥을 사주면서 자신의 가이드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기존의 ‘수박 겉핥기’식 가이드, 옵션·쇼핑 등 ‘바가지’ 상품에 질려있던 여행객들은 그의 가이드에 열광했다. 한국에 돌아간 여행객들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며 매일같이 감사 메일을 보내왔다. 창업 1년차엔 장 대표의 가이드를 접한 800여명이 자발적으로 온라인 다음(Daum) 카페 ‘로마 사랑’을 만들고, ㈜유로자전거나라투어의 자칭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입소문을 타자 신청이 폭주했다. 약 2만~8만원선의 저렴하고도 전문적인 ‘지식가이드’ 덕분이었다. 장 대표는 유럽 주요 도시에서 유학을 마친 전문 가이드를 모집·교육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영국·프랑스 등 해외 법인이 하나 둘 설립됐고, 50억원에 회사를 인수하겠단 곳도 나타났다. 대형 여행사 대표들은 ㈜유로자전거나라투어와 제휴를 맺기 위해 한국에서 로마까지 앞다퉈 장 대표를 만나러왔다. 누적 고객 수만 20만명. 그 인기는 한국인을 넘어 유럽 시민들에게까지 확산됐다.

“유럽에선 외국인의 관광 사업 진출을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영업 방해가 된다’며 다른 여행사들로부터 신고도 자주 당했어요. 경찰서만 33번 갔죠(웃음). ‘유럽의 멋진 역사 현장을 제대로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진정성이 통했는지, 바티칸 경찰서장이 ‘앞으로 당신 회사는 단속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유럽의 저명한 고고학자 친구까지 소개해줬어요. 바티칸 박물관은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식사 포함 모든 비용을 무료로 제공한답니다.”

◇전직원이 주주인 회사···모두가 함께하는 나눔

회사가 성장하면서 나눔의 크기도 커져갔다. 장 대표는 자신을 키워준 마리아수녀회를 통해 매년 수천만원씩 기부하며 시설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당장 보살핌이 필요한 아동의 교육비, 주거비는 물론 취업까지도 지원한다. 실제로 ㈜유로자전거나라투어엔 보육원 퇴소 청년 3명이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매달 전국의 보육원을 다니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나도 이 침대에서 자랐어’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집중도가 달라져요. 한번은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하는 필리핀 학교를 방문했어요. 빈만가에서 버려진 아동 수천명이 모여서 공부하고 있더군요. 1만 달러를 기부하고 돌아왔는데, 아이들로부터 수백통의 편지가 왔어요. 오히려 제가 1억원 이상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죠.” 이렇게 그가 기부한 돈만 수억원. 회사 차원에선 매년 매출액 변동과 관계없이 약 1억원씩 떼어 기부하고 있다.

국내 대표 유럽 지식가이드투어 전문여행사인 ㈜유로자전거나라는 2014년 동지중해 크루즈에서 전직원 세미나를 개최했다. 직원 모두가 한복을 챙겨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출품하는 이색이벤트를 진행했다. / ㈜유로자전거나라 제공
국내 대표 유럽 지식가이드투어 전문여행사인 ㈜유로자전거나라는 2014년 동지중해 크루즈에서 전직원 세미나를 개최했다. 직원 모두가 한복을 챙겨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출품하는 이색이벤트를 진행했다. / ㈜유로자전거나라 제공

 

장 대표를 곁에서 지켜본 직원들도 자연스레 나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필리핀에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온다. 지난달엔 태블릿 PC 100대를 기부하고 돌아왔다. 함께 가지 못하는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전해달라’며 한보따리씩 선물을 떠안긴다. 직원 대다수가 시설 아동과 월 3만원씩 일대일 결연 후원을 하고, 함께 돕고 싶은 NGO가 있으면 대표에게 달려와 기부를 제안한다. 매년 회사가 기부하는 1억원 역시 직원들과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그렇게 아름다운재단과도 최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1월 아름다운재단에 ‘유로자전거장학기금’을 설립한 장 대표는 매년 3000만원씩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직원들은 옥스팜 등 유럽의 유명 NGO들을 소개하는 스토리펀딩을 진행해, 해당 수익금을 청소년들의 여행지원사업에 전달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장 대표는 직원들을 ‘가족’으로 표현했다. “한 명 한 명이 보석같고 귀하다”고 했다. 실제로 ㈜유로자전거나라투어는 전 직원이 주주인 회사다. 2013년 전직원을 한 자리에 모은 장 대표는 주식회사로의 변환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 그 전부터 ‘대표직을 내려놓고 직원들에게 모든 걸 맡기겠다’고 이야기해왔어요. 많이 지치기도 했고 이젠 직원들이 10년 후 20년 후 회사를 직접 꾸려나가길 바랐거든요. 직원들이 ‘절대 안된다’며 극구 만류하길래 방법을 바꿨죠. 전 직원이 주주인 주식회사로 변신하기로요(웃음). 5000원짜리 주식 15만주를 발행할테니, 각자 일주일간 고민한 뒤 메일로 신청해달라고 했죠.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신청이 몇 배로 들어와서 조정이 불가피할 정도였거든요. 주주총회를 열고 3년 이상 근무자, 1인당 최대 4999주, 추천인 시스템 등 최소한의 제한을 마련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젊은 직원들에겐 그의 돈으로 최대 300주까지 무상으로 지급했다.

㈜유로자전거나라투어의 고참 가이드 연봉은 1억원에 달한다. 직원 교육비는 제한 없이 승인해준다. 결혼하는 직원에겐 상여금 1000만원을 지급한다. 그야말로 ‘사람’에 투자하는 기업이다. “그만큼 직원을 철저하게 뽑고, 치열하게 공부시킵니다. 입사 면접땐 2달간 과제가 나갑니다. 유럽 역사와 성경을 샅샅이 공부해오라고요. 면접때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입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끊임없이 공부하며 노력하는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

장 대표는 빈곤의 순환 고리를 끊고 싶다고 했다. “다음 세대에선 가난해서 배우기 어렵고, 배우지 못해 다시 가난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 저도 계속 평생 나누겠다는 약속을 지키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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