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민들레공동체_내 것 지키기보다 나누는 그들 “우린 행복합니다”

의식주는 스스로 해결하고 대체에너지·비료도 만들어
돈 최소화한 ‘대안자립마을’
욕심과 경쟁… 이곳엔 없다

미상_그래픽_대안공동체_민들레_2011지난달 25일, 서울에서 세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또 한참 택시를 타고 들어가서야 도착한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마을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좀 단디(단단히, 조심해서) 하면 안 될까?”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민들레공동체’ 김인수(52) 대표의 목소리가 산골마을에 울려 퍼졌다. 평상복을 입고 김 대표와 함께 망치질을 하는 사람들은 전문 인부가 아닌 민들레공동체 사람들이었다. 김 대표는 “빵 공장을 지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가난한 독거노인들에게는 무료로 빵을 나누어 줄 생각”이라며 “뼈 빠지게 일해서 가난한 사람 먹여 살리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경남 산청군 민들레공동체 사람들은 먹을거리부터 에너지까지 스스로 만들어 쓰면서 대안적인 삶을 실험하고 있다. 공동체생활을 통해 터득한 자립의 기술은 제3세계에 전수해 빈곤을 퇴치하는 데 쓰인다.
경남 산청군 민들레공동체 사람들은 먹을거리부터 에너지까지 스스로 만들어 쓰면서 대안적인 삶을 실험하고 있다. 공동체생활을 통해 터득한 자립의 기술은 제3세계에 전수해 빈곤을 퇴치하는 데 쓰인다.

대안자립공동체인 민들레공동체에는 어린이 11명을 포함한 36명의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공동체는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대안재생에너지 설비를 개발하고 만드는 ‘대안기술센터’, 친환경 천으로 수공예품을 만드는 ‘민들레공방’을 함께 운영한다.
15년 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도시로 떠나 텅 빈 갈전마을에 김인수 대표 내외가 터를 잡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선포한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들면서 공동체가 생겨났다. 김 대표는 “한국사회는 경쟁도 많고 욕심도 많은데, 우리는 민들레처럼 단순, 소박하면서도 뿌리 깊은 삶을 살려고 한다”며 “의식주를 자립하고 돈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서 가난한 사람들도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민들레공동체는 검소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옷은 대부분 마을 밖에서 기부를 받거나 돌려 입고, 쌀·밀 등 기본적인 작물은 직접 농사를 지어 먹는다. 볏단과 나무, 흙으로 집도 직접 짓고 풍력·태양력을 이용해 에너지도 만든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온 공동체 사람들의 배설물까지 쌀겨를 섞어 비료로 활용한다.
대안기술센터 이동근(42) 소장은 “아직 우리가 쓰는 전기 중에 대안에너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10%가 채 안 되고, 시장에서 사야 하는 물건도 많지만, 장기적으로는 휴지나 쓰레기도 줄이고 냉장고같이 전기를 많이 쓰는 제품도 없앨 생각”이라며 “에너지의 대안보다는 삶의 방식의 대안을 찾자는 생각으로 각자의 삶의 규모를 줄이려 함께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민들레공동체 사람들은 매일 아침 회의를 통해 각자가 할 일을 분배하고 점심 저녁을 다 같이 모여서 먹는 진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농사짓고 살림 사는 각자의 노동을 하지만, 민들레학교 교사와 대안기술센터 직원 외에는 급여도 없다. 공동체 전체의 몫인 농산물 일부를 판매한 수익과 대안공동체의 삶을 견학하고 기술을 배워가는 사람들이 낸 후원금을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

민들레공동체는 대안자립공동체를 넘어서 제3세계까지 돕고 있다. 태양열조리기, 풍력발전기 등 재생에너지 기술을 해외에 전파하고, 캄보디아 사람들이 베틀로 짠 천으로 수공예품을 만든다. 민들레공방 이은실(38) 실장은 “돈으로 도울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기술을 줘서 우리의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목표”라고 말했다.

류정화기자_사진_대안공동체_민들레공동체2_2011민들레공동체에서의 삶이 쉽지는 않다. 일단 몸이 힘들다. 남편이 민들레학교 선생님이 되면서 1년 전부터 공동체의 일원이 된 이진순(38)씨는 “학기 중에는 민들레학교 아이들 식사까지 준비해야 해서 100인분의 식사준비를 한 적도 있는데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내 것을 지키기보다 나누고 공유하는 공동체생활도 생소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장난감이나 간식을 나눠야 하는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 하루는 큰딸 예경(6)이가 ‘엄마, 착한 사람 되는 것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더라”며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들레공동체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1년 전 대학졸업 후 민들레학교 선생님이 된 윤소리(25)씨는 “처음에 힘들던 몸 쓰는 일도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니 쉬워졌다”며 “학교 앞에 옷가게가 많아 소비문화에 파묻혀 살면서 그게 행복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꼭 필요한 것들만 채우고 사니까 유혹 없는 삶이 건강하게 느껴진다”며 웃었다. 네 자녀 중 어린 둘을 제외한 12세, 9세 자녀 둘을 집에서 가르치며 키우고 있는 전봉선(47)씨는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학교시스템을 떠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자기의 고유함을 찾아가고 발휘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엄마로서 기대되고 신난다”고 했다.

1년 전부터 민들레학교 선생님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된 도기성(28)씨는 “어느 날은 제일 친한 친구가 전화해서 ‘돈 없이는 아무래도 못살 것 같은데…’라고 걱정하더라”며 “도시 사람들은 정해진 방법과 룰을 벗어나면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안기술센터의 이영완 사무국장은 “요즘 유가가 올라 물가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사교육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농사를 짓고 에너지를 만들고 대안 교육을 하는 우리 공동체는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민들레공동체와 대안기술센터를 경험하고 싶으신 분은 홈페이지(www.atcenter.org)나 전화(055-973-5804)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견학 참가비 수익금은 제3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됩니다.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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