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그룹홈 아이들에게 10년째 ‘엄마 손맛’ 전해

자원봉사모임 죽우회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의 한 그룹홈에서는 김미자씨를 비롯한 8명의 죽우회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줄 만두 1000개를 금세 빚어냈다. 조복순(49)씨는 “그룹홈에 김치가 많은데 놔두면 쉴 것 같아서 모조리 김치만두를 빚은 후 아이들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얼려두었다”며 어머니 특유의 잔반 처리 감각을 뽐냈다. 죽우회는 지난 10년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그룹홈에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챙겨주고 있는 자원봉사자 모임이다. 이 그룹홈은 주로 학대, 방임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가정에서 분리해 일시 보호하는 소규모 아동 보호시설이다.

/굿네이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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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우회는 2000년부터 그룹홈 식사 봉사를 시작했다. 동사무소 새마을문고 봉사부터 노인복지관, 중증 장애인 보조까지 다양한 자원봉사를 해온 어머니들은 그룹홈 아이들을 만난 후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운 아이들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따뜻한 밥 한 끼를 해주고 싶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을까를 고민하는 죽우회 어머니들에게서 아이들은 ‘엄마’의 향기를 느낀다. 김희자(47)씨는 “센터에 들어서면 엄마한테 안기듯 폭 안겨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 때 가장 흐뭇하다”고 말했다. 죽우회 김미자(55) 회장도 “어느 날 그룹홈의 한 아이가 다가와서 ‘(아줌마는)우리 엄마랑 닮았어요’라고 말하는데 울컥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룹홈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들은 눈이 반짝거렸다. 김미애(52)씨는 6년 전 부모의 방임 때문에 비쩍 마른 채로 그룹홈에 왔던 5살짜리 여자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김씨는 “몸에 힘이 없어 벽을 잡아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던 아이가 그룹홈에 와서 잘 먹고 통통해져서 나갈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미자 회장도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돼서 그룹홈에 들어온 아이에게 백일잔치를 해줬는데, 상을 차려놓고 엄마들이 마음이 아파서 뒤돌아 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회장은 또 “이제 우리 집에는 어린 아이들이 없으니까 우리 아이들보다 그룹홈 아이들이 더 예쁘다”며 “(그룹홈에 들어오는 아이들 가운데는) 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성실하고 착한 아이들이 많다”고 아이들을 감쌌다.

여러 해 동안 식사 봉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매번 같은 요일에 일정한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들의 지지 덕분에 가능했다. 5년째 그룹홈을 찾고 있는 최은식(51)씨는 “가족들이 목요일은 엄마가 바쁜 날이라고 이해해준다”면서 “몇 년 전 몸이 많이 아파서 집에만 있고 안으로 숨어드는 성격이 됐었는데 봉사를 하면서 마음을 열게 되니 가족들이 나보다 더 좋아하고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자 씨도 “엄마가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자랑스러워 하더라”며 “엄마가 작은 봉사를 하고 있는 걸 잘 기억했다가 우리 아이들이 커서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들은 꾸준히 봉사를 하니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나혜정(47)씨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날에도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린다”며 “봉사를 하면서 내가 오히려 많이 배우고 깨닫는다”고 말했다. 죽우회 초창기 멤버였다가 한 달 전부터 다시 봉사를 시작한 임성순(54)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목요일이 되면 죽우회 생각이 나서 마음에 걸렸다”며 “다시 시작할 때 조금 망설였지만 마음은 편안해졌다”며 웃었다. 박정심(44)씨는 “좋은 일인 줄 알지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이 일단 한 번이라도 해보면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홈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 경기남부지부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 김정미 관장은 “어머니들의 손맛이 좋아서 아이들이 목요일만 기다린다”며 “그룹홈이 채 생기기도 전부터 봉사를 해온 죽우회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며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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