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더나은미래와 함께 저도 많이 변했더군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선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살면서 종종 생깁니다. 서른 살에 아기를 낳고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가 그랬고, 원고지 1000장에 달하는 첫 책을 탈고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요즘 또다시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CEO를 인터뷰해왔고 유명 CEO가 쓴 경제경영서들을 읽었건만, 역시 경험만 한 스승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침대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1~2분 만에 잠드는 저는 ‘잠이 오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더나은미래’를 잘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한숨이 나왔다가, 미래에 대한 설계와 기대감으로 부풀어올랐다가, ‘글쟁이로 평생 살고픈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현실 부정까지 하룻밤에도 여러 번 혼자서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더나은미래는 지난달 성수동 생활을 마감하고 광화문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광화문빌딩 9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습니다. 기자들과 함께 ‘으쌰 으쌰’ 하면서, 많은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공익 섹션을 만드는 자부심을 갖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좋은 콘텐츠와 프로젝트를 하나씩 선보일 것입니다.

올 초 거인병 앓는 전 농구 국가대표 김영희씨의 기사를 보고, 독자 한 분이 하얀 봉투에 1만원을 넣어서 보내왔습니다. 더나은미래를 만들면서 제 삶은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습니다. 뭔지 정확하게 설명할 길은 없는데, 예전의 저처럼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 내가 변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희 지면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 또한 마음속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와 ‘가슴’이라고 하지요. 머리와 가슴 사이를 좀 더 가깝게 하고, 명사보다 동사로 살도록 응원하는 게 저희들의 일입니다. 언론사, NGO, 컨설팅연구소 등의 역할이 섞여있어 우리를 어느 장르라고 딱 정의하지 못해서 때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지난 6년 동안 더나은미래를 지지해주신 독자와 팬 덕분에 힘을 냈듯이,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계속 응원해주실 거죠?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