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소방관 제복은 壽衣… 일하다 다쳐도 국가 지원은 하늘의 별 따기

부산 해운대소방서 중동 119 안전센터 노재훈 소방관 인원 모자라 3교대도 어려워 7~10월엔 종종 24시간 근무

부산 해운대소방서 중동 119 안전센터 노재훈 소방관
부산 해운대소방서 중동 119 안전센터 노재훈 소방관

부산의 한 색소 회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은 참담했다. 인화성 물질인 색소 가루에 불이 옮아 붙으면서 화마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렸지만 오히려 색소 가루가 떠오르면서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화재 진압용 물줄기가 일으킨 바람에 날린 색소 가루가 소방관의 장화와 옷, 얼굴을 뒤덮었다. 눈·코·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독한 색소에 숨을 쉬는 게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호스를 놓을 수는 없었다. 고성능 화학차가 도착해 소화 거품을 쏟아낸 지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불은 꺼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퇴직을 고민했던 소방관은 결국 방화복을 벗지 못했다. 올해로 23년째 화재 현장을 뛰고 있는 노재훈(47·사진) 부산 해운대소방서 중동119 안전센터 소방관의 이야기다.

“1993년 9월 경북 문경소방서에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산 사하소방서에 있을때는 사고가 워낙 많이 나서 2시간 이상 진압해야 하는 화재 현장을 하루에 7차례 이상 뛰기도 했어요. 요새는 건물에 소방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안전 의식도 높아져서 화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대신 안전사고나 구급 현장에 많이 출동하는 편이죠. 24시간 센터를 운영해야 하는데, 중동은 인원이 많지 않아서 8명씩 구성된 3개조가 맞교대를 서고 있어요. 원래대로라면 3교대를 해야 하지만 근무자 중 누군가가 휴가나 교육을 가게 되면 인원에 공백이 너무 크니까 맞교대를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인근 해수욕장에 인명 구조요원으로 차출 근무를 나가야 하는 7~10월에는 특히 일손이 부족해서 하루 24시간 근무도 자주 하죠.”

생명을 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소방직 공무원은 누구보다 죽음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다. 신체 건강보다 더 심각한 건 정신 건강이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살한 소방관은 모두 35명. 순직한 소방관(33명)보다도 많은 수치다.(박남춘 의원 자료) 일하다 다쳐도 국가 지원으로 치료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공상(업무 중에 입은 부상) 입증에 필요한 11종의 서류를 모두 소방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데다 훈련 중 당한 부상이나 후유증 등은 업무와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어려워 소송에 이르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노 소방관과 금정소방서에서 2년 반 동안 함께 뛴 김덕곤 소방관은 2001년 인회빌딩 화재 진압 당시 백드레프트(Backdraft·실내 화재 등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을 때 불길이 역류하는 현상)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지만,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앞날이 창창한 소방관 후배가 고드름을 따다가 사망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자살한 소방관 동료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무척 허무했어요. 현장에 출동하기 전 소방관들이 센터에 벗어놓고 간 신발이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게 될까 봐 늘 가슴을 졸이곤 합니다.”

노 소방관에게 소방 공무원으로서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사고와 재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소방 예산과 인원에 대한 결정권만이라도 더 이상 휘둘리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

“소방관의 제복은 수의입니다. 모든 소방관이 그렇듯 저 역시 어떤 재난 상황이 닥치더라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겠죠. 다만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소방차 한 대조차 예비로 쓸 것이 없을까 봐, 더 이상 출동할 인력이 없을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각 시·도지사들에게 소방공무원에 대한 정책과 예산 지휘 체계가 뿔뿔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지요. 앞서 언론이 수도 없이 소방공무원 근로 환경과 구조 개혁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결국 바뀌는 것이 없었네요.”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일선의 현장 목소리는 언제쯤 위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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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보람 더나은미래 기자
고선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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