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2010 사회공헌 결산] ① 아시아나항공_ 동전 모금 16년

‘티끌 모아 50억’… 구름 위 온정, 가장 낮은 곳의 삶을 보듬다

기자가 취재를 하다 보면 사회 공헌이 기업의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인을 여전히 만나게 된다. 이런 기업은 무지막지한 금액을 텔레비전 광고에 쏟아 부으면서도 그 금액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사회 공헌에 사용하는 것에는 유난히 조심스럽다. 반면 기업의 총수부터 직원까지 진심으로 나눔을 즐기는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고객에 대한 믿음’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994년부터 유니세프와 함께 항공기 기내에서 사랑의 동전 모으기를 진행했다. 해외 체류를 마치고 돌아오는 승객들이 미처 환전을 하지 못하고 잔돈을 소지한 채 항공기에 탑승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환전이 힘들거나 환전을 해도 큰 의미가 없는 소액들을 기부받아 유니세프에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좋은 취지였지만 유니세프로부터 처음 동전 모으기를 제안받았을 때 쉽게 나설 수만은 없었다.

7월 21일 ‘사랑의 동전 모으기’ 기내 모금액 50억원 돌파 기념행사에서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왼쪽 네 번째)과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 및 안성기 유니세프 친선대사(왼쪽 세 번째)가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과 함께 기내에서 모금된 각국 동전 및 화폐를 아프리카 식수 지원사업에 쓰일 ‘사랑의 우물’ 모금함에 채우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7월 21일 ‘사랑의 동전 모으기’ 기내 모금액 50억원 돌파 기념행사에서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왼쪽 네 번째)과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 및 안성기 유니세프 친선대사(왼쪽 세 번째)가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과 함께 기내에서 모금된 각국 동전 및 화폐를 아프리카 식수 지원사업에 쓰일 ‘사랑의 우물’ 모금함에 채우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항공사의 입장에서 보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야 할 승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만은 없었습니다.” 기내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승희 과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항공사도 같은 이유로 모금을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박삼구(65) 회장은 아동 구호를 위해 기부금이 쓰인다는 얘기를 듣고 기내 동전 모으기를 흔쾌히 허락했다. 오히려 잘하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16년간 지속되는 장수 모금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놀라운 일들이 하나씩 벌어졌다.

1994년 1억6000만원이 1년 만에 모이더니 해마다 모금액이 전년도 대비 10%가 넘게 증가했다. 2007년과 2008년 사이에는 기존의 모금액보다 50% 이상 모금액이 증가했고, 신종플루와 세계 금융위기로 여객수요가 급감한 2009년에도 모금액은 오히려 연간 최고액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 7월 누적 모금액이 50억원을 돌파했다.

전 세계의 동전들이 모이고 모여 이끌어낸 변화는 놀라웠다. 이 돈으로 유니세프는 2600만명의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했고 2억명의 어린이들에게 시력 상실과 질병 예방을 위한 비타민 캡슐을 공급했다. 영양 실조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 비스켓 500만개, 탈수증 치료제 7500만 봉지, 2380만명의 어린이를 위한 홍역 예방 접종, 5ℓ의 물을 정화해 식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질정화제 3억4000만개가 이 돈으로 마련됐다.

“정작 이 모금을 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한 건 우리 승무원들이었습니다.” 이 과장은 익명의 기부자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자주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시는 승객이신데, 모금을 할 때마다 100만원씩을 기부하셨어요. 벌써 20번이 넘었습니다.” 어느 날 매니저가 이 승객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는 이유를 묻자 그 고객은 “비즈니스석을 탈 돈으로 이코노미석을 타고 나머지를 기부하는 겁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승무원들은 다시 이 모금과 고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동전 대신 쌍가락지를 기부한 노(老)부부도 있었고, 아이들의 이름을 적은 돼지저금통을 기부한 가족도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우리가 모시는 고객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승무원만 고객들에게 자랑스러움을 느꼈을까. 고객들 역시 자신들을 품격 있는 고객으로 만들어준 승무원들과 아시아나항공에 응원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는 저희 승무원팀에 유니세프 봉사 동아리가 생겼습니다.” 이 동아리는 승무원의 업무 특성상 해외에 체류하는 날이 많다는 특성을 활용하고 있다. 항공 업무 규정상 승무원들은 도착지에서 3일은 체류를 해야 하는데 이 동아리 사람들은 베트남에 갈 경우 3일 중 하루를 베트남의 번째성에서 자비를 들여 집짓기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이 직원들이 집을 지으면 아시아나항공은 그 근처의 학교에 시설 지원을 해준다. 100명으로 구성된 이 동아리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사랑의 집 30호를 지었고 사랑의 학교 2호를 완공했다.

“나눔이란 게 이상해요. 한 번 참여하면 자꾸 하고 싶고, 다른 사람도 함께하자고 설득하게 되고 그러던데요.” 3000명으로 구성된 승무원팀에서는 요즘 자꾸 새로운 봉사 아이디어가 나오고 팀이 짜인다. 유니세프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재능을 기부하는 사내 바자를 열고, 공항 근처의 분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고민한다. 삼삼오오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함께할 사람을 모은다. 이런 자발적인 나눔이 일어나게 된 비결은 뭘까?

“저희가 무엇을 하건 그게 봉사면 회사에서 도와줍니다. 봉사를 하다 힘든 점이 있으면 회사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거든요. 그리고 봉사를 접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줍니다.”

착한 기업이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증명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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