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기후 망치는 회사에서 일 못해”… 美·英서 번지는 ‘기후퇴사’

엑손모빌, 사상 최대 순익에도
2년새 직원 1만명 대거 이탈
온라인에 퇴사 후기 남기기도

최근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드인(LinkedIn)에는 퇴사자들의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독일에 사는 스테판 크루치나는 퇴사자들 중 하나다. 글로벌 석유 기업 셸(shell)에 재직 중이던 크루치나는 지난 6월 셸이 석유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2035년까지 석유·가스 생산에 400억달러(약 54조13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을 때 사직서를 냈다. 이직 준비를 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링크드인에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셸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사회·환경적 책임보다도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것 같다”며 “이런 회사에서 더는 자랑스럽게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글을 올렸다.

셸에서 11년간 근무한 캐롤라인 데넷도 링크드인에 사직 후기를 동영상을 올렸다. 데넷은 “회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있다”며 “화석연료 생산을 줄이지 않는 모습에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올린 영상은 1800회 이상 공유됐고, 약 1만70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영상에는 응원 댓글도 1600여 개 달렸다.

글로벌 석유·가스 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는 '기후퇴사' 현상이 번지고 있다. 사진은 석유 기업 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화하는 모습. /셸
글로벌 석유·가스 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는 ‘기후퇴사’ 현상이 번지고 있다. 사진은 석유 기업 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화하는 모습. /셸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는 이른바 ‘기후퇴사(Climate Quitting)’ 현상이 글로벌 석유·가스 산업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BBC는 23일(현지 시각) 여론조사기관 슈퍼크리티클(SuperCritical)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설문에 참여한 영국 직장인 2000명 중 62%는 “기후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회사로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71%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기업의 전망이 훨씬 더 밝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BBC는 “현재 직장을 다니는 이들, 특히 MZ세대는 공동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고 지속가능성이 높은 산업에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투자하고 싶어한다”며 “기업의 환경 정책·기조가 개인의 가치와 상충되면 그 회사를 가차없이 떠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글로벌 석유 대기업 엑손모빌의 근로자 수는 2년새 1만명 줄었다. 엑손모빌의 2022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상시근로자는 2020년 7만2000명에서 2021년 6만3000명, 2022년 6만2000명으로 매년 감소했다. 셸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2020년 8만2000명에서 2021년 7만7000명으로 약 5000명 줄었다. 지난해 정보·디지털 부문을 강화하면서 7만9000명으로 소폭 늘었지만, 작년 한해에만 직원 3500명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석유기업의 매출과 영업 이익은 늘고 있지만, 직원들의 이탈은 잡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 엑손모빌은 사상 최대 순이익 557억달러(약 74조6937억원)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치인 2008년의 452억2000만달러(약 60조6400억원)를 훌쩍 넘어선 규모다. 셸 역시 창사 이래 최대 순이익인 399억달러(약 48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퇴사한 석유 기업 종사자들은 어디로 이직하려고 할까. 글로벌 에너지 업계 동향을 분석하는 GETI(Global Energy Talent Index)가 지난해 149개국 에너지업 종사자 1만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 대상자의 49%가 재생에너지 업계로 이직하길 원했다. 석유화학(31%), 전력공급(16%), 원자력(4%) 등이 뒤를 이었다. GETI는 “ESG경영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지면서 석유화학 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재생에너지 분야의 일자리를 얻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회계·경영컨설팅 회사인 KPMG 영국지부의 존 맥켈라 레시 ESG 담당자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는 파리기후협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결국 젊은 세대이기 때문에 직장을 선택할 때 ESG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까지 노동 인구의 75%는 밀레니엄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능력 있고 젊은 인재를 원한다면 기업들도 명확한 ESG 방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KPMG 영국지부가 국제 회계·경영컨설팅 회사인 KPMG 영국지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사이 고등교육을 이수한 6000명의 근로자·학생의 46%는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가 ESG경영에 대한 방침을 밝히기를 원했다. 특히 기업에 지원할 때 해당 기업의 ‘ESG 비전’ 등을 찾아본 이들은 30%에 달했다. 또 응답자의 20%는 불충분한 ESG 경영 방침을 제시한 기업의 입사 제안은 거부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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