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일)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행동주의 기업과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8년 전 이맘때쯤, 글로벌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의 디젤차량에서 기준치 40배가 넘는 오염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임의로 조작된 프로그램에 의해 주행시험 중에만 오염 저감장치를 작동시켜 환경 기준을 충족하도록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처음에는 폭스바겐사 제품에서만 배기가스 조작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같은 그룹 산하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아우디에서도 동일한 방식의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큰 파장이 일었다. 배신감을 느끼게 했던 것은, 당시 폭스바겐은 자사의 ‘클린 디젤’ 차량이 가솔린 자동차보다 ‘더 깨끗하고 친환경적’이라며 거액을 들여 슈퍼볼 광고, 온라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 지면 광고 등을 포함한 세간의 이목을 끄는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석유·가스 회사인 BP도 유사한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BP는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워싱하는 기업으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뿐 아니라, 페이스북, 아마존 등도 여러 친환경 약속을 내놓았지만 이와는 상반된 행동을 보이며, 에너지 소비와 데이터 센터의 환경적 영향을 축소하지 않고 물류 및 창고 작업자들의 근로 조건과 환경 영향에 대한 개선을 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지속가능경영과 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워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명품의 경우 가품, 일명 짝퉁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가짜 ESG 경영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겉으로는 착한 척, 친환경적인 척, 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기업인 것처럼 홍보하는 기업을 걸러낼 수는 없을까? 일명 ‘워싱하는 기업’ 또는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을 분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각 나라들은 이를 감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EU(유럽연합)는 최근 ESG 투자처로 주목받는 생물다양성 펀드에 투자금이 크게 유입되자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을 통해 그린워싱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경우 2021년에 세계 최초로 ‘그린워싱 벌금’을 법으로 규제했고, 미국은 친환경 여부 등을 표시하는 자국내 기준인 그린가이드를 재검토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이란, 실질적인 사회문제 해결보다는 이미지 개선이나 단기적 이익을 목적으로 사회적 또는 환경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기업을 일컫는 용어다. 즉 이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ESG 경영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한 가치를 실천하지 않거나, 그런 가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깨어있는 기업으로 소비자와 대중에게 표현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 행동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사회의 기업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킨다. 소비자들은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으로 인해 더 이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력을 신뢰하지 않게 되며, 실제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기업에 대한 지지도 감소하게 된다. 둘째,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은 법적, 금융적, 그리고 평판 리스크를 증가시킨다. 즉, 기업의 잘못된 광고 또는 거짓 정보 제공으로 소비자 소송, 금융 제재, 평판 하락 등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악인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 등 주체 별로 그 역할을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정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 중 법적 준수영역은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기업의 공시에 대한 투명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특히 거짓 정보나 그린워싱을 근절하기 위한 법과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기업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실제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이행해야 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검증 및 감사를 수용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지속가능경영 노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는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고, 표면적 행동주의 기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이들의 폐해를 알려야 한다. 또한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로 기업에 압력을 가하고, 정직한 기업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시장에는 죄악주라고 불리는 무기, 주류, 담배, 게임산업 등의 업종이 있다. 이들은 ESG 경영차원에서 보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반전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이 연구에 의하면 죄악주를 구성하는 기업이 일반기업보다 더 나은 ESG 성과를 보인다. 죄악 기업이 사회로부터 그들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유익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자. 실제로 ESG 경영을 잘하는 죄악주 기업과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속임수와 거짓으로 포장된 기업이 있다고 치자. 이 중 우리에게 더 필요한 기업은 어디일까? 어쩌다 일반 기업이 죄악주 기업과 사회적 가치 측면의 우위를 비교당하는 상황까지 왔을까? 우리사회는 더 나은 사회, 더 옳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행동주의 기업’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비교불가’ 기업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참고 문헌
Linda Y.L. Du, Jianfei Sun, Washing away their stigma? The ESG of “Sin” firms, Finance Research Letters, Volume 55, Part B, July 2023 (https://doi.org/10.1016/j.frl.2023.103938)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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