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공간이 혁신을 만든다

온드림소사이어티 1년, 명동을 바꾸다

공익목적 행사 무료 대관
1년새 6만2004명 다녀가

명동에 문 연 공간플랫폼
‘한국판 벨라지오센터’ 노린다

이탈리아 북부 벨라지오. 알프스 빙하가 녹으며 만들어진 코모(Como) 호수와 맞닿은 인구 3800명의 소도시다.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이곳에는 사회 혁신가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

록펠러재단은 지은 지 300년 된 낡은 빌라를 ‘벨라지오센터(Bellagio Center)’라고 이름 짓고 1959년부터 전 세계 경제학자, 화가, 시인, 물리학자, 정책 입안자, 현장 실무자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입주해 기후·보건·국제개발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나누고, 재단은 이들의 활동을 무료로 지원한다. 약 70년간 130국 5000명이 넘는 사람이 센터를 거쳐 갔고 이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만 100명에 이른다. 재무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2007년 벨라지오센터에서 열린 콘퍼런스였다.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 따르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시장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해 1조1640억달러(약 1555조원)로 추산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서울 중구 명동에 조성한 공간플랫폼 ‘온드림소사이어티’가 개관 1주년을 맞았다./현대차정몽구재단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서울 중구 명동에 조성한 공간플랫폼 ‘온드림소사이어티’가 개관 1주년을 맞았다./현대차정몽구재단

이처럼 특별한 공간은 사회 혁신 DNA를 깨운다. 국내에도 사회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있다. 한국판 벨라지오센터를 꿈꾸는 ‘온드림 소사이어티’다. 지난해 4월 서울 중구 명동에 개관한 이후 1년 만에 6만2004명이 찾을 정도로 명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한국판 벨라지오센터’ 첫발을 떼다

온드림소사이어티에는 문턱이 없다. 물리적으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불편 없이 출입하게 만들었지만 공익 목적의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라면 무료 대관할 수 있게 개방했다. 건물 1층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 ‘온소스퀘어’에서 열린 공익 행사는 총 256회. 월평균 21.3회다. 법정공휴일과 대체휴일, 주말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공간을 활용한 셈이다. 행사 주제도 다양하다. 현대차정몽구재단에 따르면, 온소스퀘어에서 열린 행사를 분야로 구분하면 교육 관련 42%, 문화 예술 18%, 스타트업 관련 15%, 사회 혁신 관련 9% 등이다.

다양한 주제로 여러 분야 사람들이 참여하다 보니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도 매일 달라진다. 어느 날은 대학교수들과 대중이 만나 전문 지식을 쉽게 풀어내고, 다음 날엔 환경 분야 전문가들이 기후위기 대응 설루션을 논의하는 식이다.

이지영 현대차정몽구재단 과장은 “건물 1층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방하고, 6층은 임팩트 스타트업들이 모여 협업하도록 기획 방향을 잡으면서 록펠러재단, 링컨센터, 구글캠퍼스 등 해외 공간 플랫폼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재단에서 정한 대관 기준은 공익성이다. 재단의 목적 사업인 ▲인재양성 ▲문화예술 ▲보건의료 ▲사회복지 ▲환경보전 등과 관련된 행사면 된다. 그렇다 보니 비영리단체와 협동조합,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대관 문의가 잇따른다. 예약도 치열하다. 이미 5월 예약은 마감됐고, 6월 예약률도 76% 수준이다. 이지영 과장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단체가 대관할 수 있는 횟수를 연간 4회로 제한했다”며 “전시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여성 사회 혁신 창업가를 대상으로 성장 지원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열린다”고 설명했다.

온드림소사이어티 창밖으로 보이는 명동성당. /현대차정몽구재단
온드림소사이어티 창밖으로 보이는 명동성당. /현대차정몽구재단

침체된 명동거리를 혁신의 공간으로

재단에서 공간 마련을 기획하기 시작한 건 2019년 7월이다. 장학사업인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중심으로 인재 플랫폼을 구축했지만, 펠로들과 혁신가들이 모일 공간 플랫폼이 없다는 의견이 재단 내부에서 나오면서다. 먼저 후보를 물색했다. 경복궁 돌담 옆 꼬마빌딩, 보신각 맞은편의 종로타워, 명동성당과 마주 보는 한국YWCA회관 등이 후보군에 올랐다. 재단은 입지 선정 기준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고, 오래된 공간을 보수하는 걸로 결론 내렸고, 그렇게 명동으로 결정됐다.

근현대사 혁신의 중심인 명동은 일제시대 모던보이의 놀이터, 1960~1970년대에는 금융의 중심이었다. 이후 1980~1990년대 문화 예술, 2000년대 이후 쇼핑의 상징이 됐다. 특히 명동 지역은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 노동인권운동까지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의 배경이라는 점도 입지 선정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온드림소사이어티 1년, 명동을 바꾸다

문제는 코로나19 장기화였다. 주변에서도 ‘위험하다’는 우려가 컸다. 명동 상권이 매출 부진으로 상점들은 줄폐업했고, 2021년 1분기 공실률이 38.4%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은 “당시만 해도 코로나 시대에 큰돈을 들여 명동에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며 “다만 위기 때마다 과감한 도전을 실천해온 재단 설립자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비대면 시대에 공간 기획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4월21일, 총 2년 9개월이 걸린 작업 끝에 문을 열었다. 시작부터 쾌조였다. 개관 일주일 전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전면 해제했고, 행사나 집회에 인원 제한을 두던 것도 모두 풀렸다.

개관 1년 온드림소사이어티가 명동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정보시스템을 통해 온드림소사이어티 반경 200m의 하루 평균 유동 인구를 살펴본 결과, 개관 전인 지난해 2월 기준 2만2834명에서 올해 2월 4만6724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명동 상권의 일평균 유동 인구는 4만3913명에서 7만4557명으로 약 69.7% 늘었다. 코로나19 완화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온드림소사이어티 개관이 유동 인구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온드림소사이어티 1년, 명동을 바꾸다

친환경에 디자인을 입히다

공간의 핵심 테마는 친환경이다. 1967년 준공된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부터가 환경적인 접근이다. 설계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소재다. 바닥은 테라조를 활용해 대리석 느낌을 냈다. 테라조는 플라스틱이나 폐자재를 시멘트에 섞어 갈아 넣은 업사이클링 자재다. 오염물이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고, 비용도 더 들지만 친환경 테마에 맞춰 시공했다.

무대와 벽은 친환경 소재인 코르크와 소나무 원목을 섬유질 형태로 가공한 목모보드로 마감했다. 플라스틱 소재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공간 내부에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도 모두 재활용 소재로 만든 제품이다. 또 수경 식물로 벽면 전체를 채운 ‘플랜테리어월’도 별도로 마련했다.

‘친환경과 디자인은 불화(不和)한다’는 편견도 깼다. 온드림소사이어티는 지난해 10월 독일 ‘2022 레드닷 어워드’의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공간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최근에는 독일 국제포럼디자인이 주관하는 ‘2023 iF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상을 받았다.

건물 6층에 마련된 ‘임팩트 스페이스’는 친환경 임팩트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의 오피스 공간으로 꾸몄다. 이곳에는 친환경 사업을 벌이는 스타트업 ▲식스티헤르츠(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관리) ▲라잇루트(폐배터리로 기능성 원단 생산) ▲트레드앤그루브(폐타이어로 신발 제조) ▲리필리(종이팩 용기 제조) 등 4곳이 입주해 있다. 재단에 따르면, 입주 기업들은 지난 1년간 온실가스 1388tCO2eq를 줄였고 합성수지 2t을 절감했다.

권오규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온드림소사이어티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사회 혁신 공간이자 명동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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