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오늘도 자란다] 물을 판다

장서정 자란다 대표
장서정 자란다 대표

우리가 언제부터 물을 사서 마시게 되었을까. 매일 페트병에 담긴 물을 소비하고 있지만,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온다. 단지 어느 시점부터 돈을 주고 사는 ‘마시는 물’과 수도관으로 공급되는 ‘수돗물’을 구분 짓게 된 것이다. 요즘은 생수에 ‘천연암반수’ ‘해양심층수’라는 명칭을 붙이고 파란색이나 분홍색 라벨과 캡을 씌워 각각의 존재감까지 드러내는 시대가 됐다.

국내 생수 산업의 시작을 되짚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94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생수의 판매가 수돗물의 안전성을 부정하고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당시 사람들은 수돗물을 신뢰하지 못해 커다란 물통을 들고 약수터로 향했다. 깨끗한 마실 물에 대한 요구는 커졌지만, 생수를 사서 마시는 건 엄연한 불법이었다. 생수 판매금지가 풀리된 건 국민의 ‘행복추구권’, 즉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서다. 국내에서 생수가 상품화된 지 20년 만에, TV 토론까지 열리는 치열한 사회적 공방을 거치고 나서야 생수 판매는 합법이 되었다.

생수의 판매는 규제 대상이었고, 소비자들은 “물을 사서 마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던 1976년, 국내에 생수를 처음으로 상품화했던 업체는 무슨 확신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던 걸까. 물에 값이 매겨지고,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전 국민이 외치게 될 날이 올 거라 믿었던 걸까? 마실 물의 가치를 유독 다르게 보았던 걸까? 소비자가 아닌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입장이 된 지금, 이 사례를 달리 보게 된다.

지난 2017년, 아이가 보내는 모든 시간이 배움의 시간이고 아이의 시간이 좀 더 가치 있게 채워져야 한다는 비전으로 자란다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마주했던 시장에서 아이가 알아서 잘 노는 것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고,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사업 초기에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에 부모님들이 돈을 쓴다고?”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지금은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한 시간인지, 어떻게 아이의 시간을 가치 있게 채워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한때 교육·놀이 시장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깨워줘야 한다’라거나 ‘중요한 것은 논리력’이라는 일방적 캐치프레이즈로 가득했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 ‘아이 성향에 맞는 놀이법’이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TV를 보며 하염없이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이 가지는 가치, 자신에게 맞춰진 환경을 제공받아야 할 아이의 행복추구권의 가치가 몇 년 사이 극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몸소 느낀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창립 이래 경험해보지 못했을 ‘뷰카(VUCA)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VUCA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스타트업 업계를 관통하던 인식과 공식이 무너지고, 성장의 기준과 전략이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성장 가능성과 문제 해결의 임팩트에서 시장성, 수익성으로 스타트업의 가치가 옮겨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문제 해결을 위해 태어났고, 그 문제 해결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한 시기가 찾아왔지만, 사회의 문제를 푸는 것의 가치는 크고 반드시 빛을 본다는 확신을 더 강하게 되새기는 스타트업 업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스타트업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행복추구권’에 가장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장서정 자란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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