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토)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커피와 민주주의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당신은 왜 커피를 마시나요?” 커피업에 몸담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질문은 늘 어렵다. 마치, 물은 왜 마시나요? 밥은 왜 먹나요? 이런 질문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커피는 각성제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한두 모금이라도 마셔야 무엇인가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진정한 하루는 이때 출발하지 싶다. 집에서 휴식하는 주말 아침에도 눈뜨면 일단 커피를 내린다. 그 따듯한 기운에 다시 이부자리로 파고들어 간다 하더라도 커피는 출발이다.

먹을 거 다 먹고도, 당 떨어지는 느낌이 심하게 들 때는 커피믹스가 제격이다. 커피믹스 한잔의 칼로리는 40~50㎉다. 밥 한 그릇이 300㎉인 데 비하면 식사를 대신하기는 어렵지만, 달콤한 그 맛은 식간 급한 불 끄기엔 제격이다. 커피는 리프레시다.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커피는 빠질 수 없다. 어려운 미팅일수록 약간의 긴장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주는 음료는 아마도 커피뿐일 것이다. 정신을 맑게 하면서도 차 한잔을 두고 커피 고르는 취향부터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커피는 중재자이기도 하다.

왜 커피를 마시냐는 질문이 무색하게도, 커피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커피는 수도승들이 밤새 기도하고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처음 마셨다. 그러나 높은 사람이 마시면 아랫사람도 마시고 싶고, 그 옆 사람도 마셔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계급과 돈으로 막혀 있어도 문화란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의 범선들이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무역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497년 바스쿠다가마에 이어 콜럼버스도 항로 개척에 성공한다. 더 적극적인 공급을 위해 아프리카 노예를 신대륙으로 납치하고, 그들로 하여금 넓은 농장을 개간하여 본격적인 커피와 사탕수수 재배에 나서기 시작한다. 커피는 ‘상업적 작물’로서 그 면모를 서서히 드러냈다.

커피 공급량이 늘어났지만, 누가 마실지 걱정할 필요 없다. 기술 발전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방적기를 지켜 줄 성실한 노동자가 필요한 부르주아들은 노동자에게 빵과 커피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설탕까지 넣어주면 식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더 많은 시간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이 빵과 맥주를 마시는 통에 툭하면 취해서 싸우거나 늘어져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 그들에게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맥주 대신 피곤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커피는 부르주아들이 볼 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음료였다.

커피가 세계사에 끼친 공헌이라면 나는 단연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의 탄생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실수록 취하는 술이 아니라 마실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는 커피 덕에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토론하고, 정보를 교류하고, 투자를 연계하여 초기 자본주의를 잉태했다.

커피하우스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던 진보성은 절대왕정과 신성주의를 부인하며, 구체제의 개혁을 일구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커피 값 1페니만 내면 이런 사상을 흡수할 수 있다 하여 ‘1페니 대학’이라 불렀다.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이 커피하우스에서 태동했다 할 정도로 사람들은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커피는 생각을 키우는 음료다.

나라의 고위 공무원을 채용하는 면접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토론회 한번 성사시키기 위해 실무 협상이 몇 번이고 번복되는 모습을 보자니 이 땅의 민주주의가 위태하다. 채점표 들기도 전에 피곤한가?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리자. 선호하는 후보들을 놓고 자꾸 주변과 싸우게 되는가? 커피 한잔 놓고 토론하자. 그 옛날 커피가 우리의 정신을 깨웠듯이, 어려운 채용 면접이 예견되는 이때, 남다른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귀찮고 힘들다고 알코올에 의존해 술 마시고 뻗을 수는 없지 않은가. 커피는 민주주의다.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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