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2018 新 복지 사각지대] “거리에서도 숨어 살아야 하는 이들” ① 여성노숙인 편

지난달 9일 서울 영등포역, 역사 화장실에서 까만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 노숙인을 만났다. 땀 냄새로 범벅된 악취가 코를 자극했고, 수레에는 신문지, 박스, 옷가지로 보이는 천들과 술병이 가득 담겨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는 우산을 펴고 역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에서 왜 우산을 펴고 있는지 묻자, 그는 “사람들이 무서워 몸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기자가 다가가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재빨리 떠났다. 우리 사회의 여성 노숙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pixabay

전체 노숙인(1만1340명, 거리 및 시설 노숙인 포함) 중 남성 노숙인은 8335명(73.5%), 여성 노숙인은 2929명(25.8%)으로 추정된다(보건복지부, 2016년도 노숙인 실태조사). 여성 노숙인이 남성에 비해 한참 수는 적지만, 노숙인 4명 중 1명 꼴이다. 전문가들은 “여성 노숙인 실태 조사가 과소 추정돼 적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 지적한다. 

2016년 당시 국내 최초로 실시한 전국 노숙인 실태조사를 총괄했던 이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원, 광장, 역 부근 등 공개된 장소에 머무는 남성 노숙인과 달리 여성 노숙인은 성적 및 신체적 위협을 피해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공중화장실 및 장애인 화장실, 교회 예배장소, 기도원, 패스트푸드점, PC방 등 공개된 장소가 아닌 곳을 선호한다는 것. 이태진 연구위원은 “여성 노숙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없이 실태조사를 실시해 실제 숫자보다 적게 집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폭력, 성폭행… 위험에 노출된 여성 노숙인들의 힘겨운 거리 생활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보다 폭력과 성폭행, 금품갈취, 협박 등 각종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지난해에도 40대 남성이 여성 노숙인을 살해한 뒤 가방에 담아 버리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특히 성범죄 위험에도 노출돼있다. 대부분 거리 여성 노숙인들은 성범죄를 당해도,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18살 때 거리로 나간 한수미(34·가명)씨. 그녀는 10년 넘게 일용직 일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잤다. 한씨는 “아버지가 수시로 찾아와 돈을 뺏어서 늘 누군가가 해하지 않을까 불안했다”면서 “영양실조로 이가 다 빠졌지만 도움을 청할 곳을 몰라 거리를 전전했다”고 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여성 노숙인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위협이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력이 상실돼 있거나, 위험을 인지하더라도 공권력 등에 도움을 청할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여성 노숙인 지원 사업을 20여년간 해온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센터장은 “여성 노숙인은 물리적 힘도 약하고, 도와줄 사람이 주위에 없는 경우가 많아,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일어난다”고 했다. ‘오늘 우리집에서 머물게 해주겠다’ ‘저녁을 사주겠다’고 현혹해 성폭행을 하거나 대놓고 성매매를 제안한 뒤 돈을 주지 않고 폭력을 가하는 사건들도 종종 일어난다. 

부인과 질환도 우려되는 문제다. 생리용품을 구하기 힘든 거리 노숙인들은 휴지를 덧대거나 더러운 천 등으로 생리대를 대신하곤 한다. 어쩌다 얻은 생리대 하나로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영등포 역 부근에서 2년째 지내는 여성 노숙인 B씨는 “이 마저도 없으면 피를 흘린 채로 지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여성 노숙인의 거리 생활 이유를 살펴보면, 남성과 비슷하지만 그 면면은 훨씬 복잡하다‘서울시 노숙인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보고서(2010)’를 살펴보면 남성노숙자의 60% 이상은 실직 및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어려움’이 노숙의 주요 원인이다. 이와 달리 여성 노숙인은 경제적 어려움(46.7%)과 함께 가정폭력과 친족 성폭력, 정신질환에 의한 갈등 등의 가족문제(43.3%)가 주요 이유로 집계됐다.

또 여성 노숙인의 경우, 89~90%가 심각한 우울증, 조현증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노숙인 요양시설에 입소한 여성 노숙인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요양 및 재활시설에서 생활하는 남성 노숙인은 각각 18.6%, 32.8%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노숙인 수가 무려 약 3~4배 높은 것이다.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센터장은 “여성 노숙인 문제는 남성 노숙인과 달리 복합적인 면모를 보인다”면서 “단순 실직이나 가족해체가 아닌 가정폭력이나, 성폭행 등을 피해 거리로 나가거나 어떤 이유로 정신질환이 발병해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공익섹터 전문가가 선정한 나눔 사각지대는 무엇?

ⓒpixabay

 

◇전용 시설 전국에 단 12곳… 여성 노숙인 고려한 정책 미비해

현장에서는 “국내 노숙인 지원 서비스는 남성 중심적”이라는 지적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여성 노숙인이 머물 수 있는 시설이 전국에 단 12곳뿐인데, 이 중 9곳이 서울에 몰려 있어, 지방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노숙인 시설은 130여개(2016년 기준). 대부분의 노숙인 시설이 수면 공간만 남녀가 분리돼 있을뿐, 생활공간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전국에 분포한 여성 노숙인 시설. 전국 12개 중에서 서울 지역에 9곳이 위치하고 있다. ⓒ더나은미래

서울시는 지난 2012년 ‘노숙인 자립지원 법률’이 시행된 후 총 9곳의 여성 노숙인 지원 시설을 설치했다(경기 용인시 시설 포함). 여성노숙인 재활시설 한 곳, 자활 시설과 여성 모자 가족을 위한 주거 시설이 각각 두 곳, 노숙인 부부 및 가족을 위한 주거 시설과, 긴급한 위험에 처한 여성 노숙인을 보호하는 일시 보호소도 각각 한 곳씩 있다. 이외에는 인천은 2곳, 대구, 광주 지역에서 각각 1개씩 자활 및 재활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녀간 생활공간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노숙인 대다수가 정신질환이 있거나 가정폭력, 성폭력 등으로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혼성 시설에서 생활할 경우 남성 입소자가 여성 노숙인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현장 활동가 B씨는 “약 7년 전에도 광주의 한 혼성 노숙인 시설에서 남성 노숙인이 함께 생활하는 여성 입소자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남녀 노숙인이 함께 생활하는 시설에서 여성 노숙인을 폭행하거나 성폭행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발생한다”고 했다.

 

열린여성센터는 서울시의 지원주택 사업을 위탁받아 여성 노숙인 지원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원주택의 커뮤니티 공간. ⓒ열린여성센터

정신질환을 가진 여성 노숙인을 혼성 시설에서 통제하기 더 어렵다며 여성 전용 시설의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의곤 대전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소장은 “얼마 전 조현병 증상이 심한 여성 노숙인이 남녀가 함께 쓰는 공용공간에서 옷을 벗고 돌아다니면서 난동을 부렸는데 여성직원은 힘이 약해 제지를 못하고 남성직원은 몸에 손을 대기가 어려워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면서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노숙인이 직원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가 혹여나 시설에서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늘 걱정이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노숙인에게 정신과 의료 연계, 사회 적응 프로그램 등 종합적,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서울시 시설 9곳 중에서도 열린여성센터가 유일하다. 

위험노출에 취약한 정신질환을 가진 여성 노숙인을 설득하지 못해 다시 거리로 내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발생한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머물던 여성 노숙인 김현미(가명, 40대 초반 추정)씨도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지적장애가 있는 김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오빠와 살다가, 오빠가 사망한 뒤 새언니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다. 이에 집을 나가 대전역 근처에서 배회한 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입소했지만 입원치료를 권유하자 거부하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고 한다.

◇여성 노숙인 지원,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

‘맥긴리 벤토’을 설명하고 있는 미국 의회 홈페이지.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 congrass.gov 홈페이지

미국은 1980년대 홈리스 문제가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후, 연방정부, 주정부, 민간, 학계 등의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져왔다. 특히 각 지방정부는 1980년대부터 서비스 계획 및 예산 편성을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홈리스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 결과는 대중에게도 공개된다.

미국 연방정부는 2017년 약 2조2462억 정도의 규모로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데, 주정부가 예산을 지원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 지역의 홈리스 실태조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실태조사에서는 홈리스의 특성, 서비스 이용내역, 참여 프로그램, 현재 거주 지역, 서비스 공급자 등 미국 내 홈리스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노숙인 지원 법인 ‘the McKinney-Vento Hoemelss Assistance Act(이하 맥킨리 벤토법)’는 노숙인 범위에 가정폭력으로 주거 유지가 불가피한 사람, 홈리스 청소년, 가족, 아동, 장애인, 퇴역군인 등을 포함할 정도로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다양한 홈리스 인구집단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해 다양한 부처가 협력하기 위해서다. 반면 국내 노숙인 지원법은 노숙인의 범위를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홈리스 범주에 청소년을 포함한 것과 달리 한국은 성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은 노숙인의 세분화된 범위에 따라 지원정책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여성 노숙인을 타깃으로 한 지원도 이뤄지는데 2016년 미국 뉴욕 시의회는 공립학교와 노숙인 쉼터, 교정 시설 등에 있는 여학생,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무료로 제공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도입한 지원주택(Supportive housing) 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원주택은 노숙인,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 신체장애인 등 신체·정신적 문제로 독립적인 주거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주거비의 주택과 더불어 자립생활을 위한 복지서비스와 사례관리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주거 형태다.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인 브레이킹 그라운드(Breaking ground)와 지원주택협회 등이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하우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비영리단체인 브레이킹 그라운드(Breaking ground)와 지원주택협회 등 다수의 단체가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하우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을 누르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breaking ground 홈페이지

서울시도 2015년 이를 벤치마킹한 지원주택 시범 사업을 시작, 올해 사업 평가를 완료한 뒤 본격화한다. 현재 서울시가 마련한 지원주택은 총 46호. 이 중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여성 정신질환 노숙인(18호)과 알콜중독 노숙인(20호)에게 ‘지원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주거공간과 생활관리를 병행 지원했다. 입주 뿐만 아니라, 입주 후 사례관리까지 병행해 노숙 재발을 막고 안정적인 지역사회 정착, 자립을 돕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지원주택이 여성 노숙인 문제 해결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진산 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은 “여성노숙인의 경우 가정폭력과 성폭행 등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데, 지원주택은 타인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 노숙인 네트워크 ‘삭 몹(Sock Mob)’은 2008년부터 노숙인을 런던 관광 가이드로 채용하고 있다. 사진을 누르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sack mob 홈페이지

여성 노숙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도 개발돼야 한다. 영국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단체에서도 노숙인 일자리 발굴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숙인 가이드 사업’이다. 영국 노숙인 네트워크 ‘삭 몹(Sock Mob)’은 2008년부터 노숙인을 런던 관광 가이드로 채용하고 있다. 이들은 1시간 30분에 5파운드(약 8800원)를 받는다. 거리 뒷골목을 잘 아는 노숙인들만의 독특한 안내가 입소문 나면서 이제는 런던의 대표 관광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반면 국내 지자체나 시설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는 용접공, 건설 노동 등 여성이 하기 힘든 일이 대부분이다.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낙인효과를 강화하는 지원 방식이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건강한 자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다양한 부서와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통해 서비스를 다양화, 전문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익 섹터 전문가가 제안하는 사각지대 복지 시스템은 무엇?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