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과다 업무·열악한 처우’… 비영리단체에 소통의 바람 분다

조직 문화 개선에 나선 비영리단체

 

BBB코리아, 올해부터 주 1회 재택 근무제 시행
사랑의연탄나눔, 한 달 안식년 제도 도입
녹색연합, 신입·임원간 역할 바꾸기 워크숍도

 

 

통역 봉사 단체인 BBB코리아는 올해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주 1회 재택근무제’를 시행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한 3일 가운데 하루를 선택해 집에서 업무를 본다. 2004년 설립돼 15년 차를 맞이하는 중견 NGO에서 파격적인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미혜 BBB코리아 사무국장은 “밤낮 구분없는 근무가 계속되니 직원들 건강 문제에 적신호가 켜지더라”며 “건강 악화는 근속 문제로 이어져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했기 때문에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 19개 언어를 365일 24시간 무료로 통역해 준다. 월드컵·아시안게임 등 국제회의, 경찰서·병원·공항·다문화 가정 등 연간 8만건의 통역 봉사를 담당하는 직원 수는 단 8명뿐. 이들은 자원봉사자 4000명을 관리하고, 통역 봉사 연결을 돕고, 캠페인까지 벌인다. 남을 돕는 일이지만, 직원들의 소진 또한 만만치 않은 법.

최미혜 국장은 “수신 전환 시스템(착신)을 이용해 어디서든 휴대 전화만 있으면 근무할 수 있다”며 “출퇴근으로 인한 체력 소모도 없고 시간도 절약돼 업무 효율과 직원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이하 사랑의연탄나눔)는 2011년부터 ‘한 달 안식년 제도’를 시행 중이다. 원기준 사랑의연탄나눔 사무총장은 “업무 과다, 열악한 처우 때문에 5년 이상 근속하는 직원들이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돼 안식년제를 시행했다”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는 2011년부터 ‘한 달 안식년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원들은 연탄 나눔 비수기인 5~8월 중 한 달을 쉴 수 있다./ⓒ사랑의연탄나눔
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는 2011년부터 ‘한 달 안식년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원들은 연탄 나눔 비수기인 5~8월 중 한 달을 쉴 수 있다./ⓒ사랑의연탄나눔
 

사랑의연탄나눔은 매년 자원봉사자 4만~6만여명과 함께 1만여 에너지 취약 계층에 연탄 300만장을 지원한다. 2004년부터 2016년 2월까지 기부한 연탄은 총 3000만장. 겨울이면 매일 자원봉사자 수십 명과 함께 7㎏짜리 연탄(연탄 1개의 무게는 3.6㎏)을 1000장 넘게 나르기도 한다. 원 사무총장은 “연말인 11~12월에 전체 연탄의 80%가 전달돼, 직원들이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반복한다”며 “비수기인 5~8월 중 한 달 안식년을 실시해 직원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조직문화개선부터 유연근무제, 안식년제도까지. 떠나려는 비영리 종사자를 붙잡기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조직 변신을 시작하고 있다. 과거 비영리 단체들이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조직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는 것. ‘조직’은 물론 ‘사람’도 함께 성장하도록 변혁을 꾀하는 비영리 단체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역할극부터 이해관계자 대화까지

 

우리나라 대표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지난해 조직 내 세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워크숍을 시도했다. 젊은 활동가들이 자신이 리더가 되면 가장 바꾸고 싶은 조직 문화를 적어보게 한 역할극이 큰 호응을 얻었다. ‘점심시간을 업무에 포함하자’, ‘자기 계발비를 인상하자’,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자’ 등 역할극에서 논의된 안건들이 실제 제도에 도입됐기 때문. 비영리단체가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돕는 ‘알트랩’의 박정호 대표는 “조직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작게라도 그것이 반영되는 변화들이 계속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중고 물품을 기증·판매하는 아름다운가게는 오는 3월 이해관계자 900여명이 참여한 지속가능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다. 임직원, 자원봉사자, 기증자, 구매자, 파트너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직원들 업무 환경부터 조직의 사업 평가, 재정 투명성까지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조사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조직원뿐 아니라 아름다운가게 후원자들도 사업 효과만큼 조직의 건강성과 투명성에 관심이 높았다.

아름다운가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900여명이 참가한 지속가능보고서를 오는 3월 출간할 예정이다./ⓒ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가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900여명이 참가한 지속가능보고서를 오는 3월 출간할 예정이다./ⓒ아름다운가게

이상건 아름다운가게 정책기획팀장은 “처음엔 후원자들에게 아름다운가게의 사업 효과를 명확하고 쉽게 보여주기 위해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었다”면서 “하지만 설문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사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제구호단체인 지구촌나눔운동본부는 2015년, 활동가들이 계속해서 조직을 나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과의 대화’를 구성했다. 사무처장 및 직원, 후원자 그룹, 사업 파트너는 물론 퇴사했던 직원들도 참여했다. 활동가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히 오고 갔다.

한지혜 지구촌나눔운동본부 해외사업팀장은 “조직 운영 규정을 직원들에게 모두 공개했고 급여도 상승되는 등 대화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고 밝혔다.

 

◇금요일 1시 퇴근ㆍ어학 스터디 지원으로 업무 역량 강화

 

아시아 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 비영리단체 ‘프렌드아시아’의 ‘금요일 오후 1시 퇴근’ 제도는 도입된 지 벌써 3년째다. 직원들은 매주 금요일, 책을 읽거나 강의를 수강하며 자기 계발 시간을 가진다. 박용선 프렌드 아시아 사무총장은 “무엇을 배우고 싶어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 포기하는 직원들이 안타까워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고 도입 계기를 밝혔다. 박 사무총장은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자기 계발할 시간이 많아지면 업무 역량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진이 일상화되면 아무리 좋은 인력도 오래가지 못한다”면서 “일에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오는 4월부터 밀알복지재단은 직원들을 위한 맞춤별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도입된다. 예컨대 ‘어학 교실’은 해외 프로젝트를 맡은 직원들을 위해 운영된다. 직원들은 프랑스어, 영어, 아프리카어 등 자신이 고른 현지 언어를 3개월 동안 주 2~3회 배울 수 있다. 사내에서 강사를 초빙해 직급·직무별 교육도 이뤄진다. 회계팀은 재무 관련 교육을, 국제협력팀과 모금팀은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등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교육받을 수 있다.

어학 교실 시범 수업을 듣고 있는 밀알복지재단 직원들. 밀알재단의 어학교실은 오는 4월 문을 열 예정이다./ⓒ밀알복지재단
어학교실 시범 수업을 듣고 있는 밀알복지재단 직원들. 어학교실은 오는 4월 문을 열 예정이다. /ⓒ밀알복지재단

김미란 밀알복지재단 홍보팀 대리는 “해외 프로젝트를 하는 직원들이 어학 교육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직원들의 역량 강화와 업무 능력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할 것 같아 내부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박정호 알트랩 대표는 “소통 부족 등으로 인한 내부 갈등과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는 비영리업계에서 화두”라면서 “조직이 건강해지려면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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